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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항응고제와 국립서울현충원은 관련이 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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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났을 때 피를 멈추게 하는 ‘지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리 과정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경우에 혈전(피떡)을 만든다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그리고 정맥혈전증(폐색전증/심부 정맥 혈전증) 등 심각한 질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병적인 혈전을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약제가 항응고제입니다. 

최근에는 새로 나온 항응고제를 주로 사용하지만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60여 년간은 와파린이 몸에 비정상적으로 생긴 혈전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항응고제였습니다. 와파린을 사용하여 목숨을 건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도 인공심장판막 수술을 한 경우나 새로운 항응고제를 사용하지 못할 때에는 와파린 사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 분야인 정맥혈전증 관련 강의를 할 때면 첫 슬라이드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학생들
학생들
튜브 열공
와파린의 원료 물질을 발견한 분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걸 아시나요?
학생들
학생들
그게 무슨...

‘항응고제인 와파린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의혹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청중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 질문은 2014년 호주 시드니에서 한 국제 연구자 미팅을 다녀온 후 시작하였습니다. 각 대륙에서 온 연구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토론했는데 주어진 주제에 대한 토론이 끝난 후 호주인으로 추정되는 한 연구자가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와파린 전구물질을 발견한
스코필드 박사라는 분은
왜 후속 연구를 하지 않으시고,
한국에서 생을 마감하셨나요?
최근에 어떤 논문에서 봤는데요. 혹시 아세요?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대답하지 못한 관련 내용을…….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논문을 검색해보니, 질문과 똑같은 내용이 정말로 있었습니다!

It remains a question for historians
why Schofield,
after these meticulous experiments, abandoned his research
and finally ended up in Korea,
working to organise veterinary studies there
(최초로) 항응고제를 발견한 엄청난 연구를 하고 난 이후에 왜, 스코필드가 추가 연구를 하지 않고, 한국이란 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는지는 아직 역사학자들에게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Hellenic Journal of Cardiology 2014;55:89-91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Frank Schofield, 1889-1970) 영국에서 태어난 캐나다인입니다. 1910년경 소아마비를 앓고 지팡이를 짚게 되었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여 농장 노동자 생활도 하였고,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와 세균학과 위생학을 강의했습니다. 한국어를 배워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강의를 하였고 1917년에는 ‘선교사 자격획득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어로 선교 활동을 한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직접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글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그는 자기 이름을 석호필(石好必, 좋은 호, 반드시 필)로 지었지만, 호랑이가 한국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름을 석호필(石虎弼)로 바꾸었습니다. 石은 굳건하게, 호랑이 虎는 한국을, 도와줄 弼을 사용하여 ‘한국을 굳건하게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일본인이 대화에 참여하였습니다.

최남선이 대화에 참여하였습니다.

일본인
일본인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일본인
일본인
한반도 모양조차 나약한 토끼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최남선
최남선
정색
최남선
최남선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가!!!!!
최남선
최남선
한반도는 우리 민족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호랑이 모양을 하고 있다!!!
어깨동무
옳소 옳소!!!!

당시 일제가 한국합병을 위하여 만든 <조선산악론 1903>이란 책자에 “한반도는 토끼의 형상으로 나약함을 연상케 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한국은 연약하므로 일제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입니다. 


이에 분개한 육당 최남선은 고대부터 한국은 용맹한 호랑이의 기상을 가진 민족임을 알리고자, 1908년 <청춘> 창간호 표지에 드넓은 만주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를 올렸습니다. 표지 그림은 한국인들에게 큰 호응과 사랑을 받았고, 한국은 바로 용맹한 호랑이라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스코필드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지었을 겁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에서 선교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던 중, 3.1운동에도 참여하고 당시 사진을 찍어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특히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함에도 자전거를 타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스코필드 자신의 표현대로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로)떨리는 손'으로 촬영을 하여 〈제암리/수촌리에서의 잔학 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당시 스코필드는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일과 함께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이후,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의 암살 위협과 캐나다를 떠나서 생긴 부인의 향수병을 치료하고자 1920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캐나다에서는 소나 양 같은 가축들이 피를 흘리며 죽는 괴질이 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원인을 모르는 출혈성 패혈증이라고 생각할 때, 스코필드 박사는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가축 성장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사료인 전동싸리(sweet clover)를 잘못 보관하여 곰팡이가 피었고 이렇게 곰팡이가 핀 사료를 먹은 가축에게만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추가연구를 진행한 후, 1924년에 논문 (J Am Veterinary Med Ass 1924;64:553-572)을 발표하였습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보관을 잘못하여 곰팡이가 핀 전동싸리에 포함된 ‘어떤 물질’에 의하여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물질이 바로 10여 년이 지난 후, 1940년에 위스콘신 대학의 독일학자인 칼 폰 링크가 발견한 와파린입니다. 만약, 한국을 위한 독립운동에 힘쓰지 않고 1924년 이후 후속 연구를 했다면 항응고물질 최초 발견의 공로는 칼 폰 링크가 아닌 스코필드 박사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정신적 조국인 한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개인적인 연구보다도 더 중요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스코필드 박사의 몸은 캐나다에 있었지만 마음만은 한국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일제 치하에 있는 한국이 독립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대한민국 정부 광복 13주년 및 정부 수립 10주년을 맞아 한국에 국빈으로 초청되었습니다. 부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기에, 스코필드 박사는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한국으로 옮겨 와 서울대 수의과대학 병리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남북미와 유럽에서 거주하던 친구들과 함께 ‘스코필드 기금’을 만들어 고학생들을 돕고 한국을 위한 봉사와 교육장려 활동을 계속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이때 도움을 받은 고학생 중 한 명이 정운찬 전 국무총리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국제적으로 알린 공헌과 해방 후 한국에서의 지속적인 봉사 및 교육 활동을 기린다는 의미로,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치하에서 자유를 얻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한 민족대표 33인에 스코필드 박사를 추가하여, 민족대표 34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임에도 그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석호필(石虎弼) 박사님의 생애는 최근 한국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자신의 안위나 연구보다는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인 한국의 독립과 한국인을 위하여 생을 바친 분이 최초의 경구항응고제(혈전병 치료제) 원료를 발견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더 잘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스코필드, 아니 석호필(石虎弼) 박사님이 남기신 말씀을 적으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 주세요.”
-애국지사 프랭크 스코필드, 석호필(石虎弼) 묘비석, 유언 중에서-
“강한 자에게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Frank Schofield (1889-1970) 캐나다 대사관 블로그-

*위 자료는 서울대학교병원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무단으로 사용시 저작권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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