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인 나를 재미있게 해 줄 영화를 찍는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

조회수 2019. 6. 24. 15: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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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개봉 당일, 봉준호 감독과 나눈 대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덕후인 나를 재미있게 해 줄 영화를 찍는다”

<기생충>의 올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여러모로 예외적인 상황에서 거머쥔 성과였다. 


작년 수상작이 아시아권에 가족을 다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이었던 점, 사전 심사위원 평가가 최상위였다는 것 모두 <기생충>의 수상을 낙관할 수 없는 요소였다. 


통상 최고평가를 받은 작품은 징크스처럼 황금종려상 수상에 실패했으며, 시상에 있어 지역과 주제를 적절하게 배분하기 때문이다. 


흔히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라 하면 철학적이고 심오한 한편으론 난해한 영화가 연상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생충>을 본 관객이라면 주제와 관점, 이야기 흐름에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작품성은 물론 대중성을 확보한 <기생충>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구분을 의미 없게 만들면서 ‘봉준호’라는 세 글자를 새삼 각인시켰다. 


정작 봉 감독에게 있어 작품성과 대중성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로 느껴진다고. 감독 이전에 영화광이었던, ‘봉준호’, 혼자 탑 리스트를 작성하길 즐기는 그의 영화 만들기 원점은 단순 명료하다. 


덕후인 그를 재미있게 해 줄 영화를 찍을 뿐이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칸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쁘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시나리오를 썼다. 그만큼 빨리 잊으려 하고 잊히면 좋겠다. 꼬리표가 붙으면 창작자의 발전에 저해될 것 같거든.

한국 첫 칸 황금종려상 수상이라 대중의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그래서 공포감이 크다. 칸 수상작에는 황금종려상 마크를 넣는 게 의무이다. 규정이라 거부하지 못하고 넣기는 했는데 그 자체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오감을 열고 봐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어서 우려된다.
칸국제영화제 참석 모습

<기생충>은 빈자와 부자, 상반된 계층에 있는 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에 대해 말하기보다 극 중 최우식과 박서준이 친구인 것처럼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는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지 않을 때 혹은 인간의 존엄이 침범당할 때 유발되는 파국의 에너지가 어떻게 폭발하는지 그리고자 했다.

극과 극의 가족을 구상하면서 신경 쓴 지점은.

서로 돕고 마음씨 고운 가난한 가족과 탐욕스러운 가족, 이러면 너무 도식적이지 않나. 인물들의 미세한 레이어를 만들고 싶었다.
출처: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을 본 관객의 대부분이 극 중 박사장이 사용하는 ‘선’과 ‘냄새’라는 두 단어를 또렷하게 기억할 거다.

박사장은 ‘기택’(송강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서 커피잔을 들고 온다. 그러면서 굳이 테스트 주행 아니니 편하게 운전하라고 말한다. 아주 예민하고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신흥 부자의 모습으로 쉽게 선인지 악인지 가늠하기 힘든 인물이다. 냄새라는 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쉽게 얘기하기 힘든 민감한 주제이기에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출처: <기생충> 스틸컷

기생에 머물지 기생을 넘어 공생과 상생에 이를지 결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관해 고민했을 것 같은데.. 아닌가.(웃음)

다른 결말은 생각 안 해봤다. 공생과 상생 혹은 기생의 문제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닌 예의의 문제를 다룬다고 본다. 예의의 마지노선이 무너졌을 때 어떤 비극이 될 수 있을지를 말이다. 흔히 우발적 범죄라고 하는데, 그건 우리가 이미 터져 버린 후의 결과만을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이 발생하기 이전에 미묘한 맥락이 있었을 거다.

영화는 2시간 동안 인물들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심리적으로 해부하고 세세하게 보여준다.

송강호 배우와 지금까지 7편의 장편 중 무려 네 편을 함께했다. 당신에게 송강호는 어떤 존재인가. (웃음)

감독이 흔히 가진 유치한 질투와 희망이 있다. 뭐냐면 저 배우의 최고작이 나와 한 작품이었으면 하는 거지. 아마 이건 배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질걸? 저 감독의 최고작이 내가 출연한 작품이었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송 선배가 나와는 네 편이지만 그간 여러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하지 않았나

늘 명연기를 하는 위대한 배우로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작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엔 그이기에 가능한 위대한 모멘텀이 있었다.
출처: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았다.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비결은 뭔가.(웃음)

영화제 수상작치고는 덜 난해하다는 평이 있다니 다행이다. 균형이라는 건 저울질하는 건데 타고나길 그런 걸 잘 못 한다. 대중성과 작품성이 내겐 한 덩어리로 따로 나눠서 생각할 수 없다.
농담처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아무도 안 찍어주니 내가 찍는다고 말하곤 했는데 위험한 논리일 수 있지만, 그게 사실이다. 감독이기 전에 영화광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같은 덕후들은 혼자 탑 리스트를 작성하고 신중하게 그 순위를 바꾸면서 만족하곤 한다. 아무도 안 보는데 혼. 자. 말이다! 중요한 건 덕후인 나를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영화를 찍는 거고 그러다 보니 그런 칭찬도 받는 것 같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에서 작업 중인 영화 한 편이 있다. 예산은 약 2,000~2,500만 달러 정도 사이다. 맘껏 찍어야 직성 풀리는 흔히 말하는 작가주의 감독이 배정받을 수 있는 규모인데 실제 있었던 사건에 기반한다.
한국에서 작업할 영화는 아주 공포스러운 사건을 중심에 놓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낱낱이 베어내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처음 구상 이후 오랫동안 머릿속에 씨앗이 자라왔는데, 완성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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