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세U]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드디어 만개한 '꽃' 중앙대 박진우

조회수 2020. 9. 3. 1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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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바리’있는 타자 박진우

현재 U-리그 C조에서 타율 1위(0.452) 기록 중 

홈런도 두 개로 팀 내 1위 

남들보다 더 빠르고 강한 타구를 칠 수 있는 힘이 장점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주목하세U>는 ‘올해 대학야구에서 주목해야 할 선수’라는 기획의도에 맞춰 글을 연재할 시리즈입니다. 야구를 시작한 계기와 대학 생활, 야구선수로서의 목표 등을 인터뷰하며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KUSF = 글/권혁중 기자, 사진/선수 본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로, 어떤 고난이 있어도 줄기를 곧게 세워 끝내 꽃을 피운다는 내용의 시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바로 중앙대학교의 타자 박진우다.


올해로 마지막 아마야구 시즌을 맞는 박진우에게는 야구선수로 살아오면서 많은 고난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야구선수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U-리그 C조에서 타율 1위(10경기 기준)를 달리며 노력의 결실을 맺고 있다. 강한 비와 바람에 맞서 드디어 만개한 ‘꽃’ 박진우를 [주목하세U]를 통해 만나봤다. 




‘태권소년’에서 ‘야구소년’으로... 


박진우와 야구의 첫 만남은 그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권도를 다니다가 아빠 친구분께서 몸이 좋으니 야구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서 고명초등학교에 가서 야구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야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야구에 흥미와 관심이 생겼습니다” 


태권도 선수를 꿈꾸던 아이는 지인의 권유에 의해 처음 야구를 접하게 됐고, 그렇게 야구 선수라는 꿈을 키우게 된다. 태권도를 포기할 만큼 야구가 재밌었냐는 질문에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태권도를 포기할 만큼 야구가 너무 재미있었고 끌리는 매력이 있어서 바로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박진우와 야구의 첫 만남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10대 시절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놀기에도 부족한 10대 시절에 박진우에게는 유독 고난이 많이 찾아왔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박진우는 부상을 입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오른쪽 발등이 피로골절로 뼈가 부러져서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버렸습니다” 어린 꿈나무에게 큰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꿈을 접기엔 야구가 너무 좋았다. “포기하지 않고 2학년 때부터 다시 열심히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전지훈련 시절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했습니다. 그 결과 3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많은 중학교 시절을 마친 박진우는 인창고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박진우의 고등학교 시절도 중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박진우는 타격 자세를 바꾸려고 했다. 그간 박진우는 체격에 비해 타구를 멀리 날리지 못했고, 공을 오래 보는 등 소심한 타격을 해왔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레그킥으로 타격 자세를 수정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고1 때 9경기에 나서 안타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며 레그킥 자세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박진우 본인도 “아직 제 폼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로 시합에 임하였기 때문에 결과는 당연히 안 좋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패를 맛본 박진우는 바로 다른 폼을 찾았다. “저는 원래 노스텝으로 다운스윙을 하면서 타격을 했습니다. 레그킥보다 좀 더 쉽고 힘 전달을 잘할 수 있는 폼을 찾다가 오픈스탠드로 놔뒀다가 타이밍을 두 번 나누어서 뒤쪽에다 힘을 실어 놓고 그대로 하체를 이용해서 제자리에서 힙턴을 이용해 어퍼스윙으로 바꾸는 스타일로 바꿨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진우는 2학년 때 15경기에 나서 0.431의 타울과 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중심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최다 안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중심타자로서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제물포고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2015년을 통째로 쉬었다. 


운동선수에게 공백기란 굉장히 치명적이다. 따라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박진우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엄청난 활약을 한 2학년 때보다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을 했다. 하지만 박진우에게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다. “10월쯤 연습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8회말에 대수비로 3루에 나갔습니다. 그때 슬라이딩을 잘못하면서 던지는 팔인 오른쪽 어깨 탈구로 인해 공을 못 던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이어 부상을 또 당한 것이다. 



“그 당시 수술 아니면 재활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시즌도 얼마 안 남은 상태로 재활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남들보다 운동량도 없었고 실력도 서서히 떨어지면서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도 저도 못 한 박진우는 고2 시절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고교시절을 마무리했다.



드래프트에도 나갔지만 아쉽게 지명되지 못했다.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면서 허탈하고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제 인생에 한편으로 계속 후회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10대 생활을 청산하고 박진우는 그렇게 중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중앙대 타율 1위로 거듭나기까지...


올 시즌에는 좋은 타격감을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그렇게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1학년에는 재활에 몰두했고, 2학년에는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때부터 박진우는 다시 한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시작했다. “2학년 때는 기본기를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면서 기본부터 천천히 연습하고 3학년이 되면서 다시 천천히 운동량을 높이면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틈날 때마다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3학년 때도 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웨이트 시에는 파워 향상과, 어깨 재활을 중점으로 생각했으며 정규 훈련 때는 캐치볼 중점으로 항상 연습했고, 타격 시에는 컨택트 연습을 하며 올 시즌을 준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박진우는 드디어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U-리그 10경기에 모두 출전해 0.452의 타율과 2개의 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타선을 이끌고 있다. 심지어 타율은 C조 1위(10경기 기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소감을 물으니 “올해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하며 기록을 보면 이게 내 기록이 맞나? 하는 심정입니다”고 말했다. 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들어서냐는 질문에는 “타이밍이 맞으면 과감하게 돌리자 라는 생각과 후회한다고 되돌아오지 않으니 후회 없이 자신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항상 타석에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대학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올 시즌 전반기 국제대와의 경기를 꼽았다. “국제대와의 시합에서 두 번째 타석 때 고민하다 결국 병살타를 쳐 감독님께 지적을 받았는데, 그 뒤로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강하게 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 시즌 첫 홈런을 쳤습니다. 만약 그때 홈런을 치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타이밍 잡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타석에서 칠까말까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의 경기가 지금의 박진우를 만들어준 것이다. 




“저는 악바리 있는 타자입니다” 박진우가 생각하는 ‘박진우’ 


박진우는 자신을 ‘악바리’있는 타자라고 설명했다. “제가 맡은 일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행동하고 점수를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박진우의 장점은 남들보다 더 빠르고 강한 타구를 칠 수 있는 힘이다. 여전히 보완해야할 점도 있다. 자신의 단점을 수비로 꼽았다. “요즘 들어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플레이를 하다 보니 잔실수가 몇 개 나오면서 긴장을 하게 되니까 기량이 떨어지면서 몇몇 에러가 나오는데 그 점을 보안하고 싶습니다” 




“제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아마야구 마지막 시즌을 맞는 박진우의 심경 


올해가 박진우의 아마야구 마지막 시즌이다. 따라서 목표도 남다르다. “내가 선택한 것, 플레이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게 제 목표입니다. 후회해도 다시 그 상황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박진우의 또 다른 목표는 바로 ‘프로진출’이다. 프로에 진출한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스타전에 제 이름으로 된 유니폼을 입어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야구선수로 생활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만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항상 챙겨주시는 강봉수 감독님, 송성수 감독님, 그리고 타격에 눈뜨게 만들어주신 황종수 코치님께 먼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진우의 소감과 각오를 들으며 끝내려 한다. 강한 비와 바람에 맞서 끝내 만개한 꽃 박진우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주목해보자. 


“4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아쉬우면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항상 저희에게 말씀해주시는 게 있습니다. 인생에 야구가 전부가 아니고, 사회 나가서 할 거 많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야구가 전부가 아니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별로 남지 않은 시즌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 보여주고 싶습니다” 


gur145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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