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꾼 한국 클럽의 지금

조회수 2020. 9. 14. 13: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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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전례 없는 악재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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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많은 걸 바꿨다. 마스크는 권장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페스티벌로 장식됐던 여름은 아무 이벤트 없이 조용히 끝나간다. 사람이 모일 수 없으니 공연도 열릴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공연이 열리는 베뉴와 클럽도 어려움에 부닥쳤다.


클럽은 코로나19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와 같은 형태로 조명되기도 했다. 신규 감염자가 줄어들던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 밀집 지역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 2백 여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완화되어가던 집합금지명령은 다시 무기한 연장됐다. SNS와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클럽을 첫 번째 집단 감염 사태였던 신천지교에 빗대어 ‘춤천지’라고 불렀다. 코로나19 전부터 클럽에 관해 부정적이던 대다수 언론은 클럽을 악의 근원지로 보도했다.


가장 기본적인 운영 방식인 파티와 공연 개최가 불가능해지자 클럽의 오너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코로나19가 클럽이라는 공간의 양상을 바꾼 셈이다. 관객을 모으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시기 가장 많이 이뤄진 행위는 후원금 조성을 위한 티셔츠 프로젝트였다.


이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정점을 찍은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 당시 피어 오브 갓이 출시했던 후원금 모금 티셔츠와 유사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이태원에서는 클럽과 음식점, 편집숍, 카페 등이 모여 후원금 모금을 위한 티셔츠를 출시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과 수익을 나눴다. ‘Reply, Itaewon’과 ‘ITAEWONUNITED’ 두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태원 내 매장은 무려 50 곳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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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상수역 근처 위치한 클럽 헨즈와 모데시를 돕기 위한 캠페인, ‘SAVE THE HENZ & MODECi’가 진행됐다. 프로젝트에는 LMC, 미스치프, 더 인터내셔널, 디스이즈네버댓과 같은 브랜드부터 AOMG, 에잇볼타운, WYBH 등의 레이블과 크루, 레어벌스, 강문식 등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그래픽이 그려진 티셔츠를 출시했다.


두 프로젝트의 진행 방식은 비슷했지만, 목표하는 바는 조금 달랐다. ‘Reply, Itaewon’과 ‘ITAEWONUNITED’는 공간이 주체가 되어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위해 움직였다. ‘ITAEWONUNITED’의 티셔츠 판매금액 중 50%가 용산복지재단에 기부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SAVE THE HENZ & MODECi’는 개인과 집단이 특정 클럽을 위해 힘을 모았다. 티셔츠 판매로 조성된 금액은 홍대 입구를 위시한 상수, 합정 지역보다는 클럽 헨즈 및 모데시 그리고 참여 브랜드 및 아티스트에게 나누어졌다.


이 차이점은 실제 집단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한 구역인 이태원 상권과 그 여파에 휩쓸린 홍대 상권의 차이점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Reply, Itaewon’과 ‘ITAEWONUNITED’의 주최 측은 프로젝트 의의에 ‘코로나19 집단 발병 이후 이태원에 씌워진 부정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파티와 공연이 금지된 이후 한국 클럽은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온라인 라이브다. 공연장 겸 클럽인 생기 스튜디오는 디제이, 밴드와 손을 잡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이브 공연과 믹스셋을 선보였다. 집합금지명령 기간 동안 진행된 라이브 공연 콘텐츠 ‘Show Must Go On’에는 교정, 불고기 디스코, 하헌진 밴드, VMC의 딥플로우 등이 출연했으며 파티와 유사한 형태의 ‘rave at home’에는 고담, 홍삼맨, 할라 등이 디제이로 참여했다. 해당 라이브에서 관객들은 자율 기부를 통해 클럽을 후원할 수 있었다.


온라인 페스티벌도 개최됐다. 서울 테크노 신을 대표하는 세 클럽, 버트와 파우스트 그리고 볼로스트는 각 클럽의 앞글자를 딴 ‘vfv 클럽‘을 론칭하고 3일간 온라인 파티를 진행했다. 페스티벌에는 21팀의 로컬 아티스트가 참여했으며 온라인 후원을 통해 클럽과 아티스트를 위한 기부금을 모금했다. 이와 함께 vfv 클럽을 만든 세 명의 클럽 대표는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를 통해 클럽의 현 상황과 vfv 클럽에 대한 내용을 설명했다. 공연 혹은 레이브 파티를 그리워한 이들에게 생기 스튜디오와 vfv 클럽의 콘텐츠는 가뭄의 단비 같았을 터다.

어떤 클럽은 음악을 제공하되 운영 방식을 바꿨다. 이태원역 인근에 위치한 피스틸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음악이 나오는 비건 식당으로 운영됐다. 비교적 듣기 쉬운 훵크와 디스코, 하우스가 나오던 장소인 만큼, 편안한 댄스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피스틸로 모여 그날의 DJ가 선곡하는 음악을 감상했다.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행위는 금지됐다.


모데시의 옥상은 바(Bar)로 변모했다. 플로어에는 술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고, 마찬가지로 춤은 금지됐다. 헨즈와 모데시의 대표 황재국은 모데시를 바 형태로 운영하게 된 이유에 관해 “마포구에서 코로나19 시즌 동안 옥상 운영에 대한 제재를 완화해줬으며, 밀폐된 클럽보다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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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서울시는 집합금지명령을 조건부 집합 제한 조치로 전환한다고 발표하고, 클럽을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침을 발표했다. 클럽은 마스크 미착용자를 대비해 업소 내 마스크를 상시 비치하고 전자출입명부를 통해 출입자 목록을 기록해야 하며, 소위 ‘피크 타임’이라 불리는 새벽 1시경에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은 클럽은 즉시 운영 금지 처분을 받는다. 클럽 이용자는 하루에 한 클럽만을 방문할 수 있다.

헨즈, 소프, 케이크숍 등은 서울시의 방침에 대해 필요한 정책이며,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따를 경우 수익보다 지출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하며 클럽 오픈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케이크숍이 클럽 후원을 위한 텀블벅 페이지를 통해 전달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는 제한적인 클럽 영업을 허가하였으나 클럽 측은 새로운 행정적인 규제로 어떤 이익도 창출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헨즈와 소프 역시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동일한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 클럽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과 함께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헨즈 측은 클럽이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취약한 장소인 건 사실이나, 지금처럼 버려지는 업종이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소프 역시 한국 언더그라운드 신은 문화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로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했다. 클럽의 주된 수입원인 파티와 공연이 전부 금지되었음에도 이렇다 할 지원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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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폐장 이후 전시장으로 재구성된 독일 테크노 클럽, 베억하인

해외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부 차원에서 클럽을 지원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정지 이후 카페와 펍, 클럽 등을 포함한 각종 분야에 월 임금의 80%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독일 정부 또한 베억하인, 트레조르 등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보조금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문을 닫는 대형 클럽이 나오는 상황은 팬데믹이 클럽을 포함한 수많은 자영업자에게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해외의 정부 지원금 지급 사례는 정부 차원에서 클럽을 문화 공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 클럽은 유흥 업소로 분류되어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제공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헨즈 대표 황재국은 지원 정책이나 운영 방침에 관해 서울시와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된 소통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vfv 클럽의 운영자들은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를 통해 월세와 같은 비용에 있어 건물주의 의사에만 기대야 하는 현 상황에 관해 “힘든 걸 이야기하려면 3시간을 넘게 얘기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이고, 해외의 수많은 클럽들도 문을 닫은 상태다. 야외 페스티벌의 경우 최근 영국 뉴캐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현한 콘서트가 개최되는 등 새로운 방식이 시도되고 있지만, 관객이 자율적으로 오가며 춤을 추는 클럽의 특성상 그러한 방식을 도입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8월 중순 이후엔 일일 확진자 수가 4백 명을 돌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돌입이 언급되는 상황이 된 만큼, 클럽 및 여가 시설의 재오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클럽은 다시 한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 들어선 것이다.

“마스크를 쓰기 전의 일상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친구들이 보고 싶다.” – 황재국, 클럽 헨즈 & 모데시 대표

클럽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코로나19가 끝난 이후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확산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었던 그들이지만, 이들이 겪고 있는 일상 역시 우리와 닮아 있다. 그들 역시 다시는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은 채 마스크를 쓰고 매일을 보내고 있다. 기존보다 더욱 나빠진 인식과 재정적 어려움을 안고 다시 한번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활성화된 미래를 기대하며 말이다. “모든 게 끝나고 여행을 가고 싶은데, 마스크를 쓰기 전의 일상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친구들이 보고 싶다. 모두 건강하게 만났으면 좋겠다.”. 황재국이 남긴 마지막 답변이다.

Editor Eunbo 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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