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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 우승, 현대차가 모터스포츠 최정상에 오르기까지 30년 여정

현대차가 올 시즌 WRC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차지하기까지 걸어온 길은 무척 길었다. 국내 모터스포츠 기반도 전무했던 환경 속에서 WRC 정상의 위치에 서기까지 30년의 여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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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2019 세계랠리선수권(WRC)에서 사상 처음으로 제조사 부문 챔피언에 오르며 2019 시즌을 마감했다. 1998년 WRC에 처음 도전한 지 21년, 2014년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을 세워 WRC에 복귀한 지 6년 만에 거둔 쾌거다. 이는 국내 제조사가 국제 모터스포츠 선수권에 참가해 거둔 성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모터스포츠 역시 단숨에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한 역량을 쌓아야 정상을 넘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시기와 운도 뒤따라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다 갖춰졌을 때 가장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차가 WRC 정상에 오르기까지 걸어온 길도 무척 길고 험했다. 본격적으로 WRC 무대에 뛰어든 것은 20여 년 전 일이지만, 길게 보면 30년 가까운 관심과 투자가 이번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포니가 해외로 수출 될 무렵 세계 각지의 현대차 대리점을 중심으로 현대차를 사용한 모터스포츠 참가가 시작됐다

현대차가 만든 경주차가 해외 모터스포츠 무대에 등장한 것은 첫 고유 모델인 포니의 수출이 시작되었을 무렵인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각국의 현지 판매 대리점이 홍보 차원에서 지역 모터스포츠에 출전하면서 현대자동차라는 이름도 모터스포츠 세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였고, 이 단계에서 현대차가 직접 후원이나 참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가 모터스포츠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터스포츠 참가의 전환점이 된 호주 드라이버, 웨인 벨

1991년 호주 드라이버 웨인 벨은 엘란트라를 구매해 지역 랠리에 참가하며 모터스포츠에 현대차의 이름을 알렸다

이런 분위기에 전환점이 된 무대는 호주였다. 현지에서 랠리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던 드라이버 웨인 벨이 1991년 호주에서 판매를 시작한 엘란트라를 구매해 지역 랠리에 출전했다. 별다른 지원 없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진 출전이었지만, 벨은 호주에서 열린 여러 개별 대회에서 엘란트라 경주차를 몰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차가 해외에서 거둔 첫 우승이었다. 약 30년 전이다. 그리고 이듬해는 물론 1993년까지 연속으로 호주 랠리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은 물론 현대차의 이름을 높이게 된다.

벨의 활약 덕분에 현대차는 모터스포츠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성과에 고무된 현대차는 모터스포츠 활동이 가져다 주는 홍보 효과를 인지하고, 벨에 대한 후원을 시작했다. 이때 맺어진 벨과 현대차의 인연은 WRC에 본격 진출할 때까지 이어진다. 해외에서 벨은 현대차를 세계 랠리 무대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해 준 인물로 평가되고, 오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호주 랠리 명예의 전당(Australian Rally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벨은 엘란트라로 확인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좀 더 넓은 무대로 나서기로 했고, 1994년에는 호주와 동남아를 중심으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랠리 선수권(APRC)에 출전해 A7 클래스(엔진 배기량 1.6~2.0 ℓ, 두바퀴 굴림, 양산 승용차 기반)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현대차는 연구소에 경주용 엔진 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을 만들고, 1995년에는 직접 아반떼 경주차를 준비해 APRC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WRC와 APRC를 통합해 열린 호주 랠리에서 종합 29위, A7 클래스 1위를 포함해 세 대가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A7 클래스에 출전한 다섯 대가 모두 현대 아반떼, 엘란트라였지만, 종합 순위에서 상위 A8 클래스에 출전한 일부 차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홍콩 베이징 랠리에서는 A3 클래스에 단독 출전해 완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티뷰론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랠리 도전사

엘란트라와 아반떼의 잇따른 성공은 한 체급 높은 수준의 랠리에 출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우선 1997년에 티뷰론(수출명 쿠페)을 WRC F2 규정에 맞춰 제작한 경주차로 APRC에 출전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경주차 개발과 운영을 위해 영국 모터스포츠 전문업체인 MSD(Motor Sports Development)와 협력관계를 맺고 WRC F2 '2리터 월드컵(World Cup of Manufacturers)'에 본격 진출하기에 이른다.


WRC 상위 클래스에 출전하려면 WRC를 관리하는 FIA(국제자동차연맹)의 규정에 따라 인증(호몰로게이션)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연간 최소 2,500대가 양산되어야 하는데, 현대는 제한적으로 최소 500대 생산만으로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키트카(kit-car) 특례 규정에 주목했다. 그래서 현대는 티뷰론의 성능을 높이는 한편 일부 부품을 보강하고 알루미늄 합금 패널로 경량화한 특별 모델을 500대 한정생산하기로 했다. 이 모델의 일부는 경주차로 쓰였고, 일부는 일반 소비자에게 티뷰론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스포츠 쿠페인 티뷰론을 바탕으로 한 경주차로 WRC 하위 클래스에 본격 진출했다

개선된 F2 에보 경주차로 출전한 1998년 시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에는 한층 더 성능을 높인 티뷰론 F2 에보 2 경주차를 투입하는 한편 드라이버 진용도 강화했다. 20년의 오랜 경험을 가진 스웨덴 출신 케네스 에릭손과 ‘콜린맥레이 랠리’로 유명한 콜린 맥레이의 동생 알리스터 맥레이가 합류한 것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그 덕분에 WRC에서 두 차례 A7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고, 그 가운데 중국 랠리에서는 클래스 1위(맥레이)와 2위(에릭손)를 모두 차지했다. 이는 APRC와 WRC를 포함한 전체 출전차들 가운데에서는 종합 10위와 11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까지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아울러 세 개 업체가 참여한 '2리터 월드컵'에서는 3위 폭스바겐을 큰 점수차로 따돌리는 한편 1위 르노와 근소한 차이를 두고 2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베르나 WRC 경주차로 시작된 WRC 진출

현대차는 1999년 WRC 참가 의사를 밝힌 뒤, 2000년 WRC에 출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1999년 9월, 현대차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베르나(수출명 엑센트) WRC를 공개하며 WRC 최상위 클래스인 '월드 랠리 카' 부문 출전을 선언했다. 1999년 시즌에 비교적 뚜렷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F2 클래스가 폐지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수준의 클래스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규정에 따르면, WRC 최상위(A8) 클래스에는 현대가 쉽게 뛰어들 수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 제조업체의 참여를 돕기 위해 랠리 전용으로 50대만 한정생산해도 참가할 수 있는 이른바 '월드 랠리(WR) 카' 특별 규정이 생긴 덕분에, 현대는 인증용 고성능 모델을 대량생산하는 부담 없이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최상위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쟁쟁한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던 WRC 최상위 클래스에 현대차가 뛰어든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젯거리였다.

현대차는 MSD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WRC 상위권을 두드렸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현대차는 MSD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현대 월드 랠리 팀이라는 이름으로 WRC 상위권 진입을 노렸다. APRC 출전 단계부터 선수로 함께 했던 케네스 에릭손과 알리스터 맥레이를 비롯해, 아민 슈바르츠, 프레디 로익스 등이 베르나 WRC 경주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네 차례 WRC 챔피언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유하 칸쿠넨도 일부 경주에 출전했다.


시련의 역사, 현대차의 WRC 도전 시즌 1

그러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최상위 클래스 출전 업체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제조사 부문에서 현대차는 2000년에 7개 업체 가운데 6위, 2001년에 6개 업체 중 6위, 2002년에 6개 업체 중 4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선수 부문 순위에서도 3년 동안 현대 팀 소속으로 출전한 선수 중 시상대에 오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한 차례씩 개별 경기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다.

현대차의 WRC 참가 초기는 성적도 좋지 않았고, 잡음도 많았다

성적 부진의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WRC 전통의 강팀 푸조의 복귀시기와 맞물리며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투자규모와 신생팀으로써의 경험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지역에 대다수 판매를 의존하는 푸조는 자사 신형 모델 206을 유럽시장에 성공적으로 런칭하기 위해 대량의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할 수 있었던 반면, 현대의 베르나(엑센트)는 북미시장을 주력으로 하기에 유럽에 많은 자원을 쏟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직접 독자 법인을 설립하지 못하고 협력업체인 MSD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차 선행연구소가 일부 참여하기는 했지만 경주차 개발과 관리, 팀 운영 등 거의 모든 부분을 MSD가 전담하다시피 했는데, MSD는 거물급 팀을 상대하기에는 기술적 역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현대차가 기대했던 '모터스포츠 참여를 통한 기술 축적'은 투자한 비용만큼 효과를 얻기 힘들었다.


2003년 시즌에는 주 스폰서인 캐스트롤과의 계약이 끝났지만 새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고, 팀은 직원과 출전 규모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거쳐 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결국 시즌 종료를 네 경기 남겨두고 현대차의 WRC 도전 시즌 1이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시즌 진행 중에 팀이 철수한 것은 유례가 없던 일로, 영국 언론에서도 기사화할 만큼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2003년 갑작스러운 철수 이후, 2006년 신형 경주차 개발로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로 끝났다

WRC 도전 시즌 1을 통해 현대차는 브랜드와 모델 인지도를 높인 성과를 이뤘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세계 모터스포츠 무대에 뛰어들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이후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팀을 만들어 출전하고 남양연구소에 있던 WRC 지원 팀을 독일 뤼셀스하임에 새로 세운 유럽 R&D 센터로 옮겨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울러 RC라는 개발명으로 완전히 새로 개발한 경주차를 갖고 2006년 시즌에 도전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첫 WRC 정상 도전 실패가 남긴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2012년, 현대차 WRC 복귀를 선언하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가을. 파리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WRC 복귀를 선언했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됐다. 자체 개발을 통해 경주차를 준비하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직접 영입해 팀을 운영하는 본격 워크스 팀 체제를 갖춘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공백기처럼 느껴졌던 기간에도, 현대차 내부에서는 물밑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WRC 철수 이후 절치부심한 현대차는 완벽한 팀과 경주차를 만들고 2012년 복귀를 선언했다

경주차의 바탕은 경쟁차들과 비슷한 체급에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i20이었다. 양산차를 WRC 규정에 맞춰 경주차로 개조하는 작업은 남양연구소가 주도적으로 맡았다. 2012년 12월에는 독일 알체나우에 모터스포츠 전담 법인이 설립되었고, WRC에서 여러 팀을 거치며 뛰어난 성적을 이끌어낸 미셸 난단이 초대 총 책임자 자리를 맡았다. 여기에 석유화학기업인 쉘이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팀 공식 이름은 현대 쉘 월드 랠리 팀으로 정해졌다.


당초 탐색전 차원에서 2013년 시즌 후반에 첫 출전을 할 예정이었지만, 경주차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복귀 시기를 조금 미뤘다. 해외에 조직을 만들고 인재채용을 하고 차량개발을 진행해서 경주까지 출전하는데 1년 남짓이라는 시간은 모터스포츠 업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정도의 스피드로, 그야말로 현대스피드로 일이 진행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소를 만들면서 동시에 배를 건립했던 현대 특유의 기업문화와 정신이 다시금 발휘된 셈이다.


2014년 시작된 현대차의 WRC 도전 시즌 2

현대차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WRC 무대에 복귀해 놀라운 성과를 이뤄나갔다

그렇게 해서 현대차의 WRC 도전 시즌 2는 2014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막이 열렸다. WRC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냈던 신예 티에리 누빌이 주전으로 나섰고, 다니 소르도 등이 함께 출전해 폭스바겐, 시트로엥, 포드 팀의 정상급 드라이버들과 경쟁을 펼치기 시작했다. 또한, 한 팀으로 출전할 수 있는 경주차 수를 2대로 제한한 규정 때문에, 시즌 중반에 세컨드 팀인 현대 모터스포츠 N 팀을 만들어 더 많은 차를 투입함으로써 전반적 경기 경쟁력을 높였다.


누빌은 시즌이 펼쳐지는 동안 들쑥날쑥한 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멕시코와 폴란드에서 3위를 차지해 포디움에 오른 데 이어 독일 랠리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현대 팀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었다. 특히 이 경기는 극적인 승부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 전 셰이크다운(준비) 주행 때, 누빌이 몰던 경주차가 코스에서 벗어나 여섯 바퀴나 구르는 대형 사고가 났다. 거의 멀쩡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차 상태에 많은 사람이 탈락을 예상했지만, 팀 미캐닉(정비 기술자)들의 전력을 다한 철야 수리작업 끝에 경주에 출전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초반에 불안했던 누빌과 경주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경주 막판에 누빌은 기적과 같은 첫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독일 랠리 우승은 누빌 개인에게도 뜻깊은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현대차가 WRC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현대차의 WRC 복귀 첫 시즌에서 누빌은 드라이버 순위 6위에 올랐고, 두 팀으로 출전한 현대차는 제조사 부문 순위에서 여덟 개 팀 중 4위와 7위를 차지하며 마무리했다.

앳되 보이는 2015년의 티에리 누빌. 이때부터 그는 잠재력을 보여주며 현대팀의 기둥으로 성장해 나갔다

현대차는 2015년과 2016년 시즌에 발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스웨덴에서 누빌이 2위, 이탈리아에서 헤이든 패든과 누빌이 각각 2위와 3위, 스페인에서는 다니 소르도가 3위에 올랐다. 누빌은 2014년과 비교해 비교적 고른 성적을 내며 드라이버 순위 6위를 차지했고, 소르도와 패든도 각각 7위와 9위에 올라 팀 성적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 덕분에 제조사 순위에서 현대차는 3위와 6위를 차지해, 데뷔해인 14년 보다 한 단계 나아진 성적표를 받았다.


신형 경주차와 과감한 투자, 그러나 잇따른 실패

2016년부터 현대차의 WRC 우승을 향한 과감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제조사 부문 2위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2016년 시즌에는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신형 i20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주차를 준비했다. 규정 변경으로 단 한 시즌만 쓸 수 있었지만, 가장 큰 목표인 우승을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드라이버들도 고르게 좋은 성적을 보였다. 아르헨티나 랠리에서는 패든이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고, 누빌도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모두 일곱 번 포디움에 오르며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6년까지 WRC 정상의 자리는 폭스바겐의 몫이었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 주전 드라이버인 세바스티앙 오지에의 결합은 폭스바겐을 철옹성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누빌과 현대 팀은 각각 드라이버와 제조사 부문 2위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 역시 현대차에게는 새로운 기록이었다.

2017년과 2018년, 현대차는 또 다시 제조사 부문 챔피언 2위에 머물렀다

2017년 시즌부터 현대차는 새 규정을 반영한 신형 i20 쿠페 WRC 경주차를 투입했다. 그러나 2018년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행운의 여신은 현대차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2017년에는 누빌이 4승을 포함해 여덟 번, 2018년에는 3승과 함께 여섯 차례나 포디움에 올랐다. 그러나 폭스바겐이 빠진 자리를 메운 포드(M-스포트)로 자리를 옮긴 세바스티앙 오지에는 여전히 왕좌를 놓치지 않은 탓에 누빌은 두 시즌 모두 드라이버 부문을 2위로 마감했다.


게다가 2017년 시즌에는 1990년대 WRC의 강자로 제조사 부문 챔피언 타이틀을 세 번이나 차지했던 도요타가 18년 만에 다시 WRC에 뛰어들었다. 모터스포츠 참여와 경주차 개발 경험이 풍부한 도요타는 WRC에서 네 차례나 드라이버 챔피언에 오른 토미 마키넨을 감독에 임명하고, 폭스바겐에서 주전으로 활동했던 야리 마티 라트발라를 드라이버로 영입하는 등 막강한 팀을 갖추고 나섰다. 여기에 2018년에는 포드에서 이적한 오트 타낙이 놀라운 성장세와 함께 개인 최고 성적으로 막판 뒤집기 끝에 현대차를 제치고 2018년 제조사 부문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 그 결과, 현대차는 아쉽게도 3년 연속으로 제조사 순위 2위에 머물러야 했다.


현대차, WRC 복귀 6년만에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차지하다

2019년, 현대차는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마침내 제조사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2019 시즌, 최종전인 호주 랠리가 취소되는 혼란 속에 현대차는 드디어 사상 최초로 WRC 제조사 부문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 WRC 복귀 6년 만의 일이다. 최종전 취소에 따른 어부지리라고 할 수도 없다. 2위인 도요타와의 점수 차가 18점으로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누빌은 드라이버 선수권에서 또 다시 2위에 올라 고배를 마셨지만, 숙적이라 할 세바스티앙 오지에를 왕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다니 소르도와 더불어 2017년에 합류한 안드레아스 미켈슨, 올해 현대차가 영입한 '랠리의 전설' 세바스티앙 로엡도 꾸준히 상위권에 올라 팀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차가 험한 길을 헤치며 WRC 최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처럼 현대차가 WRC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해 첫 제조사 부문 챔피언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은 무척 길었다. 너무 흔히 쓰이기는 하지만,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은 WRC를 포함한 랠리에서 우승하려면 말 그대로 길고 험한 길을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진 하나의 경기, 그리고 여러 경기를 한데 묶은 시즌의 결과는 매 순간 그처럼 험난한 길을 빠르게 잘 헤쳐나갔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승의 하이라이트는 드라이버와 팀 이름에 집중되지만, 그들이 받을 영광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세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달려온 엘란트라, 아반떼, 티뷰론, 베르나, i20 경주차의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모터스포츠 애호가들에게 기억에 남기에 충분하다. 특히 현대차가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노하우는 고성능 N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글.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


1996년부터 자동차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자동차 전문 글쟁이. 월간 <비테스> 편집장, 웹진 <오토뉴스코리아 닷컴> 발행인, 월간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기자를 거쳐 현재 자동차 전문 필자 및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카북>(공역), < F1 디자인 사이언스 >를 번역했으며 그의 글을 묶은 매거진 총서로 <알기 쉬운 자동차 용어풀이>, <발가벗긴 자동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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