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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차가 유럽에서 인정받는 비결은?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에서 현대차·기아차에 대한 평가가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핵심 비결 중 하나는 유럽에서 갈고 닦은 탄탄한 주행 성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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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현대차·기아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주행 성능이 유럽의 취향에 맞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과 취향은 남다르다. 자동차를 처음 개발하고, 자동차산업과 문화가 움트고 발전한 '자동차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를 이끌고 있는 여러 자동차 제조사 또한 유럽에 터를 두고 있다. 이들의 오랜 전통과 기술력에서 비롯된 영향력과 브랜드 인지도는 실제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규모로 따지면 미국과 중국 자동차시장이 훨씬 크지만, 여전히 유럽을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고 일상적으로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유럽의 자동차 소비자들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비유럽 자동차 제조사가 유럽에서 활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현대차·기아차에 대한 평가는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현대차 최초의 모델인 포니를 선보인 뒤로 불과 40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어느새 현대차·기아차의 유럽 연간 판매량은 100만 대를 돌파했다.


수많은 국가, 다양한 주행 환경의 유럽

i30 N은 출시되기 전 영국의 좁은 길을 달리며 핸들링 성능을 면밀히 다듬었다

유럽은 50여 개국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그 때문에 기후와 지형 등 자연적인 조건이 다양하고,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 생활양식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런 다양한 요소에 따라 자동차의 주행 환경, 활용법도 달라진다.


영국은 길이 좁고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 탓에 노면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빠른 방향 전환을 위한 조종성과 중속에서의 승차감이 차량 성능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반면, 이탈리아 고객들은 좁은 시내 주행에 적합한 차량에 대한 니즈가 있고 예술과 패션이 발달한 나라답게 예쁜 차를 선호한다. 작고 아담한 차, 시내 주행에 알맞은 경쾌한 성능이 요구되는 이유다.

독일은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드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독일은 또 다른 환경이 펼쳐진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너른 평지와 이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시내에서 벗어나자마자 속도 무제한 도로로 유명한 '아우토반'으로 곧장 이어진다. 노면도 매끈해 고속으로 내달려도 불안함이 없다. 이처럼 고속 주행이 빈번한 독일에서는 고속 안정성, 파워트레인의 성능이 중요하다. 게다가 아이펠 산맥에 자리 잡은 뉘르부르크링처럼 유명한 서킷이 1920년대부터 있었으니, 스포츠 주행에 대한 수요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던 배경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에선 험로 주행 능력이 뛰어난 사륜구동 모델의 인기가 높다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결과, 나라와 지역별로 인기를 끄는 차종도 달라진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는 시내 주행이 잦기 때문에 작디작은 A세그먼트 차종이 인기를 끈다. 프랑스는 그보다 조금 큰 B세그먼트가 더욱 인기다. 특히, 프랑스는 자국 브랜드인 르노와 PSA그룹(푸조, 시트로엥, DS), 작은 차를 잘 만드는 일본 브랜드의 인기가 뜨겁다.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이 척박한 북유럽은 아무래도 험로 주행 성능이 뛰어난 사륜구동 모델의 인기가 좋다. 게다가 노르웨이의 경우 수자원이 풍부해 수력 발전이 주를 이루고, 여기서 얻은 풍족한 전력 덕분에 전기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노르웨이에서 현대차 코나 전기차를 사려면 1년여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코나 전기차를 사려고 대기 중이다.


유럽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차·기아차의 주행 성능

유럽기술연구소에서 신차의 주행 성능을 개발 중인 차량시험/고성능 차량시험 주재원을 만났다

유럽에서 현대차·기아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건 무엇보다 각 국가에 최적화된 주행 환경을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주행 성능 개선에 많은 노력을 쏟은 덕분이다. 차량시험팀은 신차 출시 전 주행 성능을 꼼꼼히 시험해 유럽의 입맛에 맞는 차를 만들고 있다. 유럽에서 개발 및 판매되는 모든 차량은 차량시험팀의 손길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차를 테스트하는 과정 역시 긴밀한 소통과 협업으로 이뤄진다. 현지 출신의 유럽기술연구소 엔지니어와 남양기술연구소 엔지니어, 제품 기획 및 판매 담당자가 함께 모여 수많은 의견을 나누고 조율한다. 자동차 전문 미디어를 초청해 현지화 개발에 최적화된 의견도 수렴한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유럽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차가 태어나는 것이다.

현대차 i10은 시내 주행이 빈번한 이탈리아의 주행 환경을 많이 반영해 개발됐다. 사진 속 신형 i10은 한층 강화된 상품성을 자랑한다

차량시험팀 우상민 책임 연구원이 현대차·기아차의 주행 성능이 좋아진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까지 현대차·기아차는 유럽 주요 자동차 매체 평가에서 중간 정도 위치였어요. 하지만 최근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죠. 2010년 이후 유럽 차량에 대한 벤치마킹, 고객과 미디어의 선호도, 유럽 엔지니어들의 평가를 최대한 반영하여 차량을 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를 남양기술연구소와 끊임없이 공유하고 개선하면서 지금의 수준까지 다다르게 된 겁니다.”


현실상 유럽 각국에 맞는 주행 성능을 개발하기 위하여 50여 국에 달하는 유럽 개별 국가의 주행 환경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우수한 성능을 확보하는 것이 유럽기술연구소의 목표다.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과 영국의 주행 조건을 기본으로 차량을 개발합니다. 그 외 스페인 및 스웨덴 지역에선 여름과 겨울 등의 혹독한 계절 시험도 병행합니다. 또한 i10이나 i20급 차량은 작은 차량을 선호하는 이탈리아, 프랑스 지역에서 확인 시험과 평가를 추가로 진행합니다.”

유럽인들은 트레일러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차량의 견인 능력 또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한편, 유럽에서는 경제적이고 실용성 좋은 소형 해치백과 활용도 높은 SUV, 왜건의 수요가 높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때나 큰 짐을 실어야 할 때면 트레일러를 곧잘 활용한다. 좁은 길이 많기 때문에 애초에 큰 차를 사기보다 다양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운용하는 셈이다.


<아우토빌트>와 같은 독일 자동차 전문 매체가 2000년대 초반부터 트레일러 견인 능력을 테스트하고 이를 주요 기사로 다룬 배경이다. 그럼 유럽기술연구소에서는 트레일러 관련 기술도 개발하고 있을까? 우상민 책임 연구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유럽 현지화의 일환 중 하나가 트레일러 견인 능력입니다. 트레일러를 견인할 때 파워트레인에 많은 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추가적인 냉각 성능을 확보해야 하고, 트레일러 견인 시 속도 규제도 달라져서 이에 상응하는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도 필요하죠. ADAS 기능이 작동할 때는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트레일러 견인 상황에 따라 기능이 바뀌어야 합니다. 장거리 여행을 고려해 알프스산맥에서 등판 능력도 검증하고 있죠.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개발 중입니다.”


현대차·기아차 주행 성능 시험의 장, 뉘르부르크링

현대차·기아차는 뉘르부르크링에 테스트센터를 지은 뒤로 신차의 주행 성능과 내구성을 끌어 올리고 있다

현대차·기아차는 2011년부터 전반적인 주행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바탕이 된 곳이 바로 뉘르부르크링이다. 1927년 건설된 뒤로 약 100년에 가까운 모터스포츠의 전통이 어린 세계적인 서킷에서 현대차·기아차의 신차들이 뜨거운 담금질을 거치고 있다. 현대차·기아차뿐 아니라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뉘르부르크링에 테스트 시설을 보유하고 신차의 성능을 다듬는다.


유럽기술연구소 고성능차량시험 및 설계팀은 뉘르부르크링을 비롯해 독일의 주행 환경을 다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고성능차 개발 경험이 풍부한 독일의 인적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진행한다. 고성능차량시험 및 설계팀 정지용 책임 연구원은 2011년 뉘르부르크링에서 처음 테스트했던 때를 떠올리며 뉘르부르크링에서 주행 성능 테스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2011년 뉘르부르크링 주행 경험이 많은 전문 드라이버와 함께 제네시스 쿠페를 타고 테스트를 시작했죠. 유럽차와 대등한 주행 성능을 갖추기 위해 본격적인 주행 성능 테스트가 이뤄진 거예요. 뉘르부르크링을 테스트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km/h가 넘는 초고속으로 달리며 점프하고 코너를 돌아 나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2013년에는 뉘르부르크링 인근에 테스트센터를 건설하고 주요 신차의 주행 성능을 시험했어요. 현대차·기아차의 개발 완성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주요 차종들을 가혹하게 테스트했죠.”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며 축적한 데이터를 개선하고 다시 달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차량의 성능을 다듬는다

주행 성능뿐 아니라 내구성 테스트도 뉘르부르크링에서 이뤄진다. 신차를 비롯해 새로 개발한 엔진과 변속기, 플랫폼 등 주행과 관련 있는 부분이 새로 개발되면 뉘르부르크링에서 내구성을 검증하는 가혹한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내구성 테스트를 담당하는 우상민 책임 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봤다.


“내구 시험은 한 모델당 뉘르부르크링 480랩을 돌면서 진행해요. 1만 km에 달하는 거리를 가혹하게 달리는 거죠. 내구성 테스트를 위해 뉘르부르크링의 구석구석까지 파악하고 있는 전문 드라이버가 평소 90%의 실력으로 하루에 30랩씩 꾸준히 달립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차량 데이터와 드라이버의 피드백을 남양기술연구소와 모두 공유하고, 개선한 데이터를 반영해 다시 서킷을 달리죠. 일반 양산차, 고성능차 모두 마찬가지예요. 전기차 역시 내구성 테스트를 위해 뉘르부르크링을 달립니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기몰이에 한창인 N 브랜드는 뉘르부르크링에서 혹독한 담금질을 거쳤다

한편, 뉘르부르크링은 고성능 브랜드 N의 담금질이 끝없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N의 탄생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본 정지용 책임 연구원은 뉘르부르크링에서 고성능차 개발이 이뤄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럽기술연구소의 역할 중 하나는 남양기술연구소와 꾸준히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뉘르부르크링을 테스트 무대로 활용하는 겁니다. 저는 2015년 유럽기술연구소에 부임해 고성능차 개발 조직이 신설된 뒤로 유럽 현지 고성능 엔지니어, 남양기술연구소 엔지니어들과 함께 뉘르부르크링에서 끊임없이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남양기술연구소와 협업하는 과정은 다른 팀과 비슷해요. 테스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선하고, 다시 테스트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거죠. 다만, 제품이 판매될 현지 환경에 맞춰 개발하는 일반 모델과 달리, N 모델은 세계 어디서 판매되든 모든 사양을 똑같이 만들어요. 그게 차이점이죠.”

신차를 개발하며 데이터를 쌓고 개선할수록 향후 등장할 신차의 주행 성능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 N 모델과 N 라인 모델의 관계와 같은 셈이다

뉘르부르크링은 프로 드라이버조차 까다롭다고 말하는 곳이다. 이토록 난이도 높은 서킷을 가열차게 달리며 담금질한 현대차·기아차의 성능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주행 성능을 끊임없이 연마하며 축적한 데이터는 다른 모델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양분이 된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브랜드의 전반적인 수준이 착실히 향상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앞서 밝혔듯, 유럽에서 현대차·기아차의 인기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의 주행 성능에 대해 깐깐한 기준을 가진 유럽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유럽기술연구소 개발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 전역과 뉘르부르크링을 오가며 신차의 주행 성능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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