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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박스형 승합차의 성골! 추억의 차, 그레이스를 돌아보다

그레이스 한 번 안 타본 사람, 있을까요? 승합차의 원조, 현대 그레이스를 돌아봅니다. / 글 박영웅(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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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원박스형 승합차를 보면 ‘봉고차’라고 부릅니다. 흔히 네바퀴굴림 SUV를 총칭해 ‘지프차’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여기서 봉고는 1981년 기아가 내놓은 1톤트럭/승합차의 모델명입니다. 당시 ‘자동차공업합리화(1979년 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폭등하면서 생긴 자동차 수요 억제 대책)’ 조치로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게 된 기아차가 자구책으로 일본 마쯔다의 2세대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하게 되면서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됐죠. 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겁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원박스형 승합차를 칭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봉고지만 정작 최초의 원조 모델은 아닙니다. 국산 승합차의 원조 모델은 1977년 등장한 현대 HD1000입니다.


그레이스의 모태가 된 HD1000

현대 HD1000은 디자인부터 설계까지 우리 손으로 한 모델이었습니다

물론 이 차 역시 순수 국산차는 아닙니다. 하지만 포니 이상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사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모델이죠. HD1000은 미쓰비시 1세대 델리카의 섀시를 기초로 보디 디자인부터 설계까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었던 국산 고유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한 내용인데 현대차는 HD1000의 개발 경험을 살려 이후 포니 왜건이나 포니 픽업도 우리 기술진이 전담해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HD1000은 1톤 트럭(포터)과 미니버스, 밴 등으로 나와 모두 5만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HD1000 역시 앞서 말한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로 단종되고, 이후 기아차가 내놓은 봉고가 원박스형 승합차의 대명사로 바통을 이어받은 겁니다.

이후 관련 규제가 해제되면서 다시 상용차 생산이 가능해진 현대차는 1986년 말 1톤 트럭 포터와 승합차 그레이스를 선보입니다. 지난 6년 동안 경쟁자 없이 시장을 독점하던 봉고에 포터와 그레이스로 도전장을 던진 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봉고 승합차는 후속모델 베스타가 더해져 3개 차종(봉고, 봉고 코치, 베스타)으로 물량 공세 중이었으니까요.


고급화로 승부하다

그레이스(우아함)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었죠. 승용차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고급 승합차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상대하는 그레이스가 내세운 전략은 고급화였습니다. 특히 미쓰비시의 최신 3세대 델리카를 기초로 한 그레이스는 기존 봉고는 물론 베스타보다도 경쟁력이 뛰어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대는 ‘그레이스에는 우주선 모양의 코스믹(Cosmic) 디자인, 2.5L 싸이클론(Cyclone) 디젤 엔진, 공간활용성을 높인 큐빅(Cubic) 타입의 실내공간 등 이른바 3C 혁신이 담겼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그레이스는 독특한 전면부와 루프라인 디자인으로 공기저항까지 신경 쓴 승합차였습니다

먼저 그레이스는 경사진 슬랜트 노즈(Slant Nose) 방식 프론트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루프 라인을 가졌습니다. 이는 박스처럼 네모반듯하게 생긴 기존 경쟁모델과 달리 시각적으로도 신선한 이미지를 주었고, 달릴 때 공기저항을 최소화시켜 풍절음을 확연히 줄였습니다.

또 봉고나 베스타보다 배기량이 0.3L 큰 2.5L 디젤 엔진(최고출력 80마력, 최대토크 14.9kg·m)은 부드러운 엔진음과 여유로운 구동력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내구성과 정숙성에서 경쟁 모델을 압도했지요.

초기형은 칼럼 시프트 방식의 기어 레버가 달렸지만 출시 1년 뒤에 승용차와 동일한 플로어 타입으로 교체됐고 더불어 국산 승합차 가운데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응접실’을 콘셉트로 내세웠던 실내 역시 당시 동급 원박스형 승합차 가운데 가장 여유로웠습니다. 또 국내 최초로 180도 회전하는 독립형 시트(9인승 살롱)를 준비하고 앞뒤로 530mm까지 움직일 수 있는 슬라이딩 기능과 5단계로 조정할 수 있는 등받이 리클라이닝 기능을 더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형 사이드 윈도우, 무드등 기능의 실내등, 대용량 히터와 에어컨을 갖춰 대형 관광버스 못지 않은 거주성을 제공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기능성이었죠.

그레이스는 9인승과 12인승, 3인승 밴, 6인승 밴으로 나왔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국내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자동차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업무용 승합차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실내 공간이 여유로운 그레이스의 인기는 더 치솟았습니다. 특히 12인승의 경우 유치원, 학원 등에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미니버스를 굴리는 것보다 효율성이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적수가 없었던 그때

뉴 그레이스는 직선 위주의 전작 대신 곳곳에 곡선을 강조해 좀 더 고급스러운 인상이었습니다

1993년, 현대차는 기존 그레이스를 업그레드한 뉴 그레이스를 출시합니다. 구형과 달리 차체 곳곳에 곡선을 가미한 유려한 디자인이 특징이었죠. 현대차 독자 기술로 개량한 터보 디젤 엔진이 장착되기 시작했고 국내 승합차 가운데 최초로 ABS와 LSD를 옵션으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랜저 2.4L 엔진을 활용한 LPG 모델 출시와 함께, 15인승 모델도 출시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새로운 그레이스는 뛰어난 상품성과 현대차만의 정비 편의성에 힘입어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실제로 뉴 그레이스 출시와 함께 월 판매대수가 2천여 대나 늘어 5,700여 대를 판매하기도 했죠. 승합차로서는 대단한 실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국내 원박스형 승합차 시장은 현대차가 독주하다시피 했습니다. 기아 프레지오, 쌍용 이스타나가 그레이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도전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의 파워트레인과 기술을 빌어 만든 이스타나의 경우 상품성은 뛰어났지만 복잡한 정비, 비싼 가격, 품질불량 등의 약점이 스스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레이스는 1997년 후속 모델인 스타렉스가 데뷔한 뒤에도 계속 판매되다 2003년 단종됐습니다.

그레이스 데뷔 초기에 등장한 SF영화 같은 CF. 기억나세요?

우리나라 원박스 승합차의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그레이스는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발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세단 같은 자가용과 구별되는 대표적인 업무용 자동차라고 할까요? 화물밴에서 미니버스의 역할까지 다양한 용도에 맞춰 척척 변신하는 다목적 자동차였던 셈입니다. 우주선처럼 멋진 모습으로 등장했던 데뷔 초기의 TV CF가 지금도 생생하네요.

글. 박영웅

‘자동차를 만들 수 없으니 비평을 하자!’ 필자가 1999년 월간 <자동차생활>에 입사, 자동차 전문기자가 된 배경이다. 만 4년차 기자 때는 뜻을 같이하는 후배들과 사내벤처 형식으로 수입차 전문지 <스트라다>를 창간, 편집장에 올랐다. 2010년 업계를 떠났다가 3년 뒤 <자동차생활> 편집국장으로 다시 복귀한 필자는 2015년부터 천재교육에서 재창간한 <탑기어> 한국판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XTM의 ‘탑기어 코리아 시즌7’에 진행자로 출연한 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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