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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WRC 스토리

2018년 WRC 10번째 경기가 터키에서 열렸다. 이변이 속출했던 이번 시합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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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경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9월 15일 오전(현지 시간) 터키 남서쪽 해안도시인 마르마리스의 거친 비포장 도로. 현대모터스포츠팀의 i20 WRC 레이싱카는 좁은 비포장 도로에서 시속 18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흙먼지를 날리며 8번째 스테이지를 멋지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벨기에 국적 드라이버 티에리 누빌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차에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했기 때문. 곧이어 운전석 서스펜션이 부서지며 보닛을 밀고 올라왔다. 누빌은 2018 WRC 종합 성적 1위에다 터키 경기에서도 1위를 질주 중인 상황. 이번 경기를 우승으로 마무리하면 사실상 올해 종합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다. 

WRC는 자동차 레이싱에서 F1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다. 한정된 경기장을 달리는 최고의 종목 이 F1이고, 비포장을 포함한 일반도로 분야는 WRC가 최고봉이다.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 종목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팀이 종합 우승을 향해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예상치 않게 큰 암초를 만난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현대모터스포츠 팀원들의 표정은 얼어붙었다. 

종합 성적 2위인 M스포트-포드팀의 세바스티앙 오지에(149점)가 누빌(172점)을 23포인트 차이로 바짝 뒤따르고 있어 마음이 더욱 조급할 수밖에. 오지에는 이날 터키 경기에서도 1위 누빌에 이어 단 0.3초 차이로 2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만약 터기 경기에서 누빌이 탈락하고 오지에가 우승하면 종합 순위마저 자리바꿈할 것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다. 매 경기마다 1위 선수는 승점 25점에 스페셜스테이지 성적(1~5점)에 따라 최대 30점까지 챙길 수 있다. 사고나 차량 고장으로 탈락하면 0점이다. 작년도 종합 챔피언이자 웬만해선 실수를 하지 않는 오지에이기에 현대팀의 분위기는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티에리 누빌의 차가 사고를 당했다. 누빌은 직접 수리에 들어갔지만 파손 부위가 너무 커서 시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엄혹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누빌은 서스펜션이 주저앉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차를 힘겹게 몰고 3분이나 늦게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그리곤 곧바로 레이싱복 웃통을 벗고 수리에 들어갔다. 기름때로 얼룩져가며 차를 고치려고 혼신의 노력을 쏟는 누빌의 모습에 팬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WRC는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는 팀의 도움 없이 드라이버가 직접 수리를 해야 한다. 30여 분간 노력을 했지만 파손 부위가 너무 커서 결국 포기해야 했다. 

참고로 WRC는 매년 유럽과 중국, 북미, 호주 등 세계를 돌며 13차례 경기가 열린다. 터키 경기는 이 중 10번째. 또 각 경기는 약 320km를 20개 안팎의 스테이지(구간)로 나눠 목~일요일 4일에 걸쳐 펼쳐진다. 경주차들은 각 스테이지마다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1대씩 출발해 주파 시간 기록을 측정하며 누적 기록이 가장 빠른 선수가 우승하게 되는 방식이다. 가장 마지막 스테이지는 ‘파워스테이지’라고도 불리며 이 스테이지 1~5위에게는 순위별로 5, 4, 3, 2, 1점이 추가로 주어진다. 매 경기에서 얻은 누적점수를 합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가 그 해의 종합 챔피언이 된다. 그리고 한 팀당 보통 3명이 출전하는데 그 중 높은 성적을 올린 선수 2명의 점수를 합산해 제조사 순위를 매긴다. 

포드팀의 오지에도 사고를 당하면서 승부의 향방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누빌의 탈락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곧이어 터졌다. 9번째 스테이지, 불행의 손길이 누빌의 탈락 덕분에 1위를 달리고 있던 오지에를 덮친 것. 그의 차에 손상이 생겨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지체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를 하다 11번째 스테이지에서 나무와 부딪힌 것이다. 오지에의 포드 피에스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2위인 토요타의 오트 타낙 선수도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3위를 달리던 현대팀의 안드레아 미켈슨이 1위로 뛰어올랐다. 누군가의 불행은 누군가에게 행운일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현대팀 입장에선 (누빌이 탈락하긴 했지만) 미켈슨이 1위로 올라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제조사 순위에서도 2위 토요타에게 쫓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토요타 타낙의 야리스가 우승해버리면 제조사 1위를 토요타에게 내주고 2위로 떨어질 것이 뻔했다.

이변이 겹친 끝에 현대팀의 해이든 패든이 3위에 올랐다

하지만 터키의 거친 땅은 현대팀에게 주어졌던 작은 행운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미켈슨의 i20 변속기에 문제가 생겨 엔진의 힘이 전륜에 전달되지 않았다. WRC 랠리카는 4륜 구동인데 미켈슨의 i20는 순식간에 후륜구동으로 바뀐 셈이다. 미끄러운 비포장 도로를 힘차게 치고 나가기에는 무리다. 이로 인해 미켈슨의 페이스가 크게 느려지면서 5위로 떨어졌다. 그나마 5위로 달리던 현대팀의 해이든 패든이 3위로 올라온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누빌은 파워스테이지에서 1위를 차지, 기량은 본인이 최고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경기 마지막 날인 9월 16일 일요일. 누빌과 오지에의 차가 경기장에 다시 나타났다. 밤새 차를 고쳐 마지막날 경기에 참가한 것이다. 순위에서는 멀어졌지만 마지막 17번째 파워스테이지에서 보너스 점수를 받기 위해서다. 파워스테이지에서 1위를 하면 5점을 받는다. 수리가 완벽하게 되고, 집중력도 되살아났는지 누빌은 통쾌하게 파워스테이지에서 1위를 기록해버렸다. 오지에는 2위로 4점을, 타낙은 3위로 3점을 각각 챙겼다. 누빌은 ‘기량은 내가 최고’라는 것을 입증했다. 비록 이번 경기에서 순위 포인트는 챙기지 못했지만 세계 모터스포츠팬들의 머리에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강력한 현대차’라는 인식도 심어줬다.

다행히 티에리 누빌은 드라이버 순위 1위를 유지했다. 현대팀의 순위는 2위. 다음 웨일즈 경기가 더욱 중요해졌다

결국 터키 경기 1, 2위는 토요타의 타낙과 라트발라가 챙겼다. 현대팀은 패든 3위, 미켈슨 5위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경기로 인해 토요타의 팀 포인트가 284점으로 급상승하며 현대팀의 279점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다행히 누빌은 종합 177점으로 드라이버 1위를 유지했고, 터키 경기에서 우승한 타낙이 164점으로 3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2위 오지에는 154점으로 3위로 떨어졌다. 변화무쌍했던 이번 경기를 두고 외신들은 ‘드라마, 드라마, 드라마’라고 기사의 타이틀을 달았다. 현대팀이 최초로 WRC에서 드라이버와 메이커 순위 모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남아있는 영국, 스페인, 호주 3개의 경기에서 가려지게 된다.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길은 항상 험난한 법이다. 바로 다음 경기는 10월 4~7일 영국 웨일즈에서 열린다.

글. N CAST

자동차를 너무 사랑해서 직접 정비와 레이싱에 뛰어든 진성 자동차 덕후!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동차 시트에 앉아 시동을 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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