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side The Park] 김민서 심판위원

조회수 2021. 2. 22. 16: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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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버티는 심판


“버티자” 그 한마디 다짐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여기 무려 7년간 온갖 차별과 우려의 시선을 이겨내고 한 자리를 지킨 이가 있다. 이제 8년 차가 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최초의 여성 심판 김민서다. 여성 심판 중 1등이 아닌, 심판 중 1등이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왔다는 그녀는 대화하면 할수록 보기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었다. 여성 심판으로, 또 다른 심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누군가의 딸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충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하고 싶은 일을 잘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그녀의 지난 시절부터 앞으로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어보자.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송서미 Location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심판의 근황


안녕하세요.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안녕하십니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위원 김민서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야구 경기도 많이 줄고, 아마추어 야구도 어렵게 마쳤는데요. 올해는 빨리 코로나19가 사라져서 KBO리그도 아마추어 야구도 모두 탈 없이 잘 진행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유일한 여성 심판’ 이 수식어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이런 설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냥 심판으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일단 여성 심판이 저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그 타이틀이 붙을 수밖에 없네요. 그래서 오히려 더 긴장감을 가지고 노력하게 돼요.


직업 만족도는 몇 퍼센트인가요?

한 23퍼센트? 프로 심판이나 아마추어 심판이나 마찬가지로 심판이라는 직업 자체가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잖아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많은 질타를 받고요. 그런 것 때문에 직업 만족도는 50퍼센트 미만이지 않을까 싶어요. 웬만한 자긍심이나 직업의식이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직종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때문에 경기 때도 힘들었겠어요. 코로나19가 바꾼 야구장 풍경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단 심판에게도 마스크와 장갑 착용이 의무화됐어요. 무엇보다 경기장이 아주 썰렁해졌죠. 아마추어 야구는 학부모 관중이 제일 많은데 학부모의 입장이 제한되니까요. 최소인원의 관계자만 입장할 수 있어요. 선수들도 더그아웃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는데, 재밌는 건 아마추어 선수들 물병에 다 이름이 새겨졌다는 거예요. 각자의 것이라는 표시죠. 위생을 위한 거지만 귀여웠어요.

#심판이 되기까지


심판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저한테 야구라는 스포츠는 늘 가까이에 있었어요. 사촌 동생이 엘리트 야구를 했고, 저도 어릴 때부터 LG 트윈스의 팬이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심판 아카데미라는 사설 기관을 접하게 됐고 4~5주간 주말마다 교육을 받았어요. 사실 교육을 받고 난 후에도 내가 진짜 심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남자 심판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러던 중에 그곳에서 추천을 받아 생활 체육 야구 심판부터 시작하게 됐죠.


실제로 여자 야구 선수로도 활동을 한 거로 알고 있어요.

정말 잠깐이었어요. (웃음) 심판을 더 잘하기 위해 야구를 한 거죠. 야구랑 심판은 겸업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2~3년간 팀에서 뛰다가 결국 심판만 하게 됐어요.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심판이 있나요?

KBO리그 심판 중에서는 추평호 심판님을 가장 존경해요. 신랑도 존경하지만, 신랑보다 더 존경한달까요? (웃음) 모니터링도 많이 하고 정말 닮고 싶은 분이에요. 그라운드에서의 박력이 남달라요. 매번 심판님들을 모니터하고 체크하지만, 정말 따라 해 보고 싶은 부분이 많아요. ‘저 타이밍에서 저렇게 모션을 취하는구나’,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고 생각해요. 아마추어 심판 선배들도 많은데 한 분만 성함을 얘기하면 다른 선배들이 서운하실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웃음)

벌써 8년 차예요. 이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예요?

이 업계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순간순간들이 다 힘들었어요.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빨리 벗어던지고 그 안에 흡수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경험이 많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저는 경험이 부족했죠.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저도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기회가 주어졌어요.


어떤 마음으로 힘든 순간을 이겨냈나요?

이번에 메이저리그 마이애미 말린스 킴 응 단장이 선임됐잖아요. 그분이 단장이 되기 전에 인터뷰한 걸 봤어요. 또 우리나라에도 NC 다이노스 홍보팀장님이 여성이고요. 그분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걸 보면서 스스로 자극이 됐어요. 꼭 심판이 아니어도 다른 직종에서 야구를 위해 힘쓰는 여성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럼 나는 심판에서 1등이 돼 보자고 다짐했어요. 여성 심판 중 1등이 아니라 심판 중 1등이요. 그렇게 되새기면서 견뎠죠.


경기 도중 항의하는 선수나 감독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연차가 안 되는 심판 초보일 때는 많이 당황했어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주심은 그 경기를 관장해야 하는데, 잘 처리하지 못하면 안 되거든요. 지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차분하게 대처하려고 해요. 일단 설명을 하고 잘못된 건 인정하고요. 심판은 어떻게든 경기를 빨리 잘 끌고 가야 하니까요. 현장에서 선배들을 보며 많이 배웠죠.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는 야구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냥 버티자’ 마음속에 그 한마디밖에 없었어요. 버텨야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결국 심판은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니까요. 해보고 싶은 만큼 다 할 때까지 무조건 버티자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경기 중에도 힘든 순간이 오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오히려 더 욕심을 부리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어요.

긴 경기 시간을 버텨야 하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죠?

솔직히 말하면 야구 심판은 다른 종목보다 움직임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체력관리를 위해 걷는 운동이나 등산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꼭 해요. 살은 안 빠지지만요. (웃음) 다행히 어릴 때 스쿼시를 해서 장시간 서 있거나 장거리를 움직이는 건 거뜬해요.


우렁찬 목소리는요? 심판하면 떠오르는 게 힘찬 콜 사인이잖아요.

보시다시피 제가 통이 커요. (웃음) 게다가 어릴 때 음악계에도 살짝 몸을 담았죠. 성악은 아니고 실용음악을 준비했어요. 덕분에 발성은 조금 자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많은 걸 했네요. 결국 야구로 돌아왔지만요.


반대로 여성 심판이어서 도움이 되는 점도 있나요?

경기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물론 여성 심판이어서 감독들이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다는 건 하나의 장점일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려고 오히려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연차가 쌓이고 실수가 줄어들면서 내 방식대로 부드럽게 진행하게 됐죠. 아이들에게도 강하게 지적하기보다는, 권유를 많이 하고 파이팅도 조금 더 부드럽게 해요.

#심판이 되기 전, 사람 김민서


평범한 여성, 사람 김민서의 모습도 궁금해요. 야구 외에 어떤 걸 가장 좋아해요?

요즘은 골프에 빠져있어요. 외국 드라마도 좋아하고요. 잘 못 알아듣지만, 영어를 공부해야 하거든요. 공부만 하면 지겨우니까 드라마로 들으려고 하고 있어요. 아이 엄마다 보니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기엔 힘드네요. (웃음) 시간이 남으면 골프를 치고 드라마를 보는 게 요즘 제 유일한 취미예요.


영어 공부는 왜 하게 됐어요?

국제심판을 하는 게 꿈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심판의 최종 목표가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서는 거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외국어 공부도 있지만, 구체적인 룰이나 심판 행적 등이요. 사실 심판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체력적인 것도 있지만 나중에는 나이가 많아져서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 그때는 야구와 관련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심판이라는 꿈을 갖기 전에는 어떤 미래를 꿈꿨나요?

그전에는 그냥 삶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요. 심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스쿼시 강사를 하고 주말에는 생활 체육 야구 심판을 보고요. 딱히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심판 학교 행정조교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심판이 너무나도 하고 싶어졌어요. 이제 천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직업이 좋아졌고요. 우연한 기회에 아마추어 협회 심판을 뽑는다고 해서 학회장님에게 너무 하고 싶다고 울면서까지 얘기했어요. 처음엔 그냥 농담으로 들으셨는데 막상 그런 기회가 생기니까 추천해주셔서 추가로 교육을 받고 심판이 됐죠.

부모님은 심판이 된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요?

부모님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한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고 늘 응원해주셨죠. 그런데 결혼하고 출산을 하고 나서는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출장을 가야 했어요. 그럴 때마다 너무 죄송스럽죠. 한 번은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야구장에 오신 적이 있어요. 관중석에서 구경하셨는데, 관중 한 분이 제 이름을 거론하면서 좋지 않은 얘기를 하는 걸 들으셨나 봐요. 그런 말을 듣게 해드린 게 가장 속상했어요. 다행히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서 웃어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심판이 이렇게 힘든 직업인 걸 같이 체험하신 거죠.


아직 젊은 나이잖아요. 혹시 다른 직업에 도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선수들의 심리상담사가 돼 보고 싶어요. 그런데 심리학과를 가려면 다시 또 대학을 가거나 대학원을 준비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주심을 보거나 경기장에 들어가면 선수들의 심리상태가 많이 보여요. 그 심리가 경기 때 많은 영향을 주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을 관리해주고 상담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골프 선수들은 전담 멘토링 코치가 있을 정도로 많이 하고 있어요. 야구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거로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LG를 응원했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어요?

처음에는 서용빈 선수를 정말 좋아했어요. 박용택 선수도 좋아하고요. 지금은 누굴 좋아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선수 한 명을 좋아하게 되면 그 팀 전체를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꼭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박용택 선수요! 심판인 친구의 결혼식에 갔는데 그날 박용택 선수가 왔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결혼식 단체 사진을 보고 그제야 알았어요. 친구에게 왜 말을 안 했냐고 뭐라고 했죠. 악수라도 한번 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쉬워요. 정신이 없었는지 못 알아봤어요. 실제로 꼭 한번 뵙고 싶어요. (웃음)


남편도 심판인데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어요? 누가 먼저 콜사인을 했나요. (웃음)

심판 학교에서 만났어요. 주변 분들이 도와줘서 커플이 됐죠. 신랑도 삼십 대 초반이었고 저는 이십 대 중후반 정도였어요. 둘 다 결혼 적령기여서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어요. 누가 먼저 콜사인을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네요. (웃음)

평소에도 서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나요?

많이 해요.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중계게임을 할 때 서로 모니터링을 자주 해줘요. 떨어져 있어도 전화로 알려주고 끝나고 카톡도 하고요. 오늘은 위치가 어땠고, 어떻게 심판을 봤고, 이런 점이 아쉬웠다는 등의 얘기를 많이 하죠. 


필요한 조언이지만 어떨 때는 잔소리로 들리기도 하죠? (웃음) 

네. 제가 신랑에게 잔소리할 때도 있고요. (웃음) KBO리그 중계는 노출이 많이 되니까 오늘 이 자세는 어떻더라, 바뀐 자세는 좀 아닌 것 같더라 하면서 잔소리를 해요. 신랑도 제가 경기 들어가기 전에 꼭 공을 끝까지 보라거나 콜 사인을 천천히 하라고 주의를 줘요. 경기 끝나면 오늘 어디 본 거냐, 뭘 본거냐 하면서 집착할 때도 있고요. (웃음) 하지만 마냥 잔소리 같지는 않아요. 고마운 부분이죠. 저는 여성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남편이 심판이라는 수식어가 있잖아요. 제가 잘못하면 신랑까지 욕을 먹으니까 더 신경 써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판이라는 직업


내 직업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을 텐데, 언제 가장 뿌듯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운가요?

중요한 경기나 결승전 주심을 봤는데 양 팀 모두 항의 없이 경기가 잘 마무리됐을 때죠. 경기를 다시 복기해봤을 때 별 탈 없이 끝났을 때가 가장 좋아요. 편파적이거나 일방적인 것 없이 매끄러운 날이 있거든요. 또 주변 분들이 수고했다고 했을 때요. 선배나 동료들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이제 그들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에는 혼자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럴 때 가장 뿌듯하네요.


심판이 되길 꿈꾸고 있을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준다면요?

심판이라는 직업은 겉으로 보기에 멋지고 위엄 있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심판은 가만히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매 순간 모든 것을 관장해야 하죠. 그래서 더 매력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매력만 좇아서 심판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산을 넘어야 해요. 물론 그 산을 버티고 버텨서 경험을 많이 쌓으면 꿈에 그리던 심판이 돼 있을 거예요. 파이팅!


물론 심판 아카데미가 있지만, 이론과 실전은 다르잖아요. 실전에서 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모니터링을 많이 했고 현장 경험도 중요해요. 가능한 한 많은 경기를 뛰어야 하고 오심을 하고 나서는 피드백을 꼭 하고요. (기억에 남는 오심이나 실수도 있나요?) 한 번은 너무 긴장해서 볼카운트를 깜박한 적이 있어요. 원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인데 삼진을 하고요. 생활 체육 야구에서는 선수 타석에서 삼진을 외쳤는데 선수가 화가 나서 싸울 기세로 달려든 적도 있어요. 맞을 뻔한 적도 있죠. (웃음) 하지만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은 예의가 발라서 과격한 면이 거의 없어요.


심판 학교 행정조교로 있을 때는 어떤 것을 배웠나요?

심판의 움직임, 포메이션, 콜 방법 등 전반적인 이론과 실전을 모두 배워요. 심리와 관련된 부분도 배우고요. 체계적인 교육을 받다 보니 우리나라 심판들은 정말 심판을 잘 보는 편이에요. 미국, 일본, 대만, 우리나라가 심판을 아주 잘 보는 나라들이고 특히 우리나라 교육은 외국보다 훨씬 시스템이 잘 돼 있어요.

심판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게 있을까요?

강인한 마음이요. 심판은 심리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해요. 온전히 깨끗한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죠. 또 전날 오심을 크게 하면 다음 날 경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요. 전날 실수를 했어도 다음날은 다시 깨끗한 상태로 경기에 임해야 해요. 선수의 어필을 받고 한쪽에 치우친 판정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도 정신을 잘 잡아야 하고요. 심판에게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로봇 심판에 대해 다룬 적이 있어요. 인간 심판이 로봇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생동감이 있죠. 로봇 심판을 실제로 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로봇 심판은 굉장히 느려요. 스포츠는 매 순간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 있는데, 로봇은 그걸 표현하는 게 불가능해요. 관중들은 그런 걸 원하거든요. 투수에게는 KKK를, 타자에게는 홈런을 멋지게 돌려주는 심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야 땅볼이 났을 때 1루에서 시원하게 세이프나 아웃을 때려줄 수 있는 것, 그게 심판의 매력이에요. 그걸 기계로 교체해버리면 경기의 정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재미는 없겠죠.

아직 KBO리그에는 여자 심판이 없어요. 언젠가 KBO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전 아마추어에서 뼈를 묻을 거예요. (웃음) 제 다음 주자가 있다면 꼭 도전해보시길 바라요. 아마 저보다 더 잘하실 거예요. 그런 분이 생긴다면 꼭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좀 더 멀리 내다봤을 때 심판으로서 최종 목표는 뭐예요?

사실 심판은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게 딱히 없어요.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 서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겠죠. 그래서 그냥 참 꾸준하다,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는 심판이 되고 싶어요. 심판으로서 제 역할이 끝날 때까지 그런 평을 유지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물론 은퇴 후에는 심판 양성이나 협회 참여 등을 할 수 있겠죠. 빨리 외국어를 습득해서 우리나라 야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심판들은 실력만큼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아마추어든 프로든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2021년에는 심판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7년 동안 달려오면서 좋은 모습만 보여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에 인터뷰하게 됐고 이제 얼굴도 팔렸으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게요. (웃음) 오심도 작년보다 반 이상 줄이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완벽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순간까지, 파이팅!


***

누구나 직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다. ‘심판’이라는 직업은 냉철하고 똑 부러져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간의 힘든 순간들을 이야기할 때도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녀가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갔을지 상상이 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지칠 만도 한데 영어 공부를 하는 것마저 즐기는 듯했다. 앞으로 그녀를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그 유쾌한 웃음소리가 이 인터뷰에 모두 담겼기를 바란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18호(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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