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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SP]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남궁훈 스카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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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도전, 위대한 도전


대학을 거쳐 군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서야 꿈꾸던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육성선수 신분이라도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차가 되던 해에 방출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당시엔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 독립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되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무급 인턴과 파트타임을 거쳐 풀타임 스카우트의 자리까지 올랐다. 무모했던 그의 도전이 위대한 도전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더 큰 꿈을 품은 채 오늘도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신철민 Location 대단한 미디어

#야구선수 남궁훈


3대째 야구를 하는 집안이라는 것을 빼고는 그저 그런 야구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은 누구보다 특별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전무했던 시절, 학업을 위해 프로지명을 뒤로하고 대학진학을 선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직행해 우여곡절 끝에 육성선수로 프로의 꿈을 이뤘다. 이제야 순탄한 길을 걷나 싶었지만 3년 만에 방출을 당하고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를 맡고 있는 남궁훈입니다. 반갑습니다.


3대째 야구집안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모두 야구를 하셨어요. 2대째 야구를 하는 선수는 굉장히 많지만 3대째 야구를 했던 선수는 혼자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야구선수 남궁훈은 어떤 선수였나요?

아쉬움이 많은 선수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3대째 야구를 한다는 거에 부담감을 느꼈어요. 마흔 살까지 야구를 하는 게 목표였는데 서른 살에 야구를 관뒀고요. 지금도 야구를 하고 싶은 미련이 남아요.


인생의 롤모델이 있나요?

고등학교 시절 코치님이셨던 덕수고등학교의 정윤진 감독님입니다. 꾸준히 공부하면서 대학원까지 졸업하신 분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공부하는 야구인은 감독님이 유일했어요. 큰 동기부여가 됐고 그때부터 저도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2002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에서 12라운드로 KIA 타이거즈에 지명됐지만 대학 진학을 결정했어요.

수업을 듣고 싶었어요. 야구선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만 하고 수업을 듣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지명을 받고나서도 고민 없이 대학을 선택했어요. (당시에 운동선수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솔직히 야구선수로서 오랫동안 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하자는 마음으로 대학을 갔는데 수업을 듣지 못했어요. 대학교도 고등학교와 같더라고요. 운동 끝나고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게 대학 생활의 전부였어요. 아직도 수업을 못 듣고 일반대학생 친구들을 못 사귀었던 게 아쉬워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상무 야구단으로 입대했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KIA에서 지명권을 포기했고 그해 신인선수 지명 회의에서도 선택받지 못했거든요. 육성선수를 가기위해 테스트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상무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어요. 불러주는 구단도 없었고 군 문제를 해결해야 됐기에 잘 된 일이었죠.

제대 후 두산 베어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당시 상무 김정택 감독님이 두산에 추천을 해주셨는데 야구선수가 아니라 프런트로 추천을 해주신 거예요. 감독님께 간절히 부탁드려서 겨우겨우 테스트 볼 기회를 받고 결국 육성선수로 입단할 수 있었어요. 만약 그때 테스트를 못 봤다면 지금까지 프런트 일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당시 두산 외국인 선수였던 크리스 니코스키와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니코스키가 SK 와이번스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두산과 계약을 했어요. 몸을 만들기 위해 잠깐 2군에서 연습 할 때 친분이 생겼죠. 1군에 올라가서도 매일 연락하고 쉬는 날 니코스키 숙소에 가서 밥도 먹으면서 친해졌어요. 미국 생활에 대한 모든 것도 니코스키가 알려줬고 저를 친동생처럼 대해줬어요. 요즘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요. 니코스키가 텍사스 레인저스 팀 자체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샌디에이고와 텍사스가 같은 곳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하거든요.


2010년 방출 후에 바로 미국 독립리그 도전을 합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파격적인 도전이었죠?

독립리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시기였어요. 부모님을 포함해 지인들의 걱정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 두산의 1군 매니저를 하고 있는 정재훈 선배가 독립리그에 1년 먼저 뛰고 있어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비자문제로 미국 도전이 마무리 됐어요. 어렵게 잡은 기회였던 만큼 안타까움이 컸을 거 같아요.

억울함이 컸어요. 독립리그 팀에서 서류를 만들고 한국 대사관에 보내줘야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입단하려고 했던 팀에서 제가 첫 아시아 선수다 보니까 비자를 발급 받는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결국 비자 발급을 못 받아서 독립리그를 못 뛰게 됐죠. 그 직원이 누군지 얼굴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여든 되신 할머니였어요. 할머니가 너무 미안해하시고… 백방으로 소문 해봤지만 방법이 없더라고요. 미국에 간 김에 여행비자 기간 동안 독립리그 팀에서 연습을 하고 왔어요. 지금에서야 느끼는 건데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점이 있었나요?

미국에 가서 구속이 2, 3km정도 빨라졌어요. 미국의 기후와 대기가 한국과 달라서 구속이 빨라지게 된다고 해요. 반대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은 공이 느려지죠. 한국에 적응을 못한 게 아니라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거예요.

#길은 어디에나 있다


우연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만나게 됐다. 그와 만남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흔 살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꿈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까스로 받은 기회를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3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 결과 풀타임 스카우트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8년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스카우트로서 야구장을 누비고 있다.


독립리그 진출이 좌절된 이후로도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몸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서류 문제를 해결하고 2012년에 독립리그를 뛰기로 얘기가 된 상태였어요. 정윤진 감독님의 배려로 덕수고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었죠. 구속도 잘 나오고 컨디션도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이내 야구를 관뒀어요. (갑자기 야구를 관두게 된 이유가 있나요?) 지금의 상사를 만나게 됐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공이 좋았지만 새로운 길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지금 관두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경기가 있던 날이에요. 운동을 하고 있는데 백인 한 명이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거예요.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운동을 하다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주면서 말을 걸어 봤어요. 그냥 외국인을 보면 말을 걸고 싶었거든요. 이야기를 하다가 샌디에이고 스카우트인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스카우트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아니요. 그냥 도와주는 역할이었어요. 이메일로 선수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정식으로 스카우트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니까 연락을 무시하더라고요. 큰 뜻 없이 물어본 건데 연락을 무시하니까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자고 이메일 한 통만 보낸 채 바로 미국으로 갔어요.


미국에서 상사를 만날 수 있었나요?

미국에 도착하니까 이메일이 와있더라고요. 자기는 지금 멕시코에 출장을 가있고 도대체 미국에 왜 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뒤로 또 연락을 무시하더라고요. 그래서 니코스키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 말을 듣고 니코스키가 미국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상사한테 이메일을 보내줬어요. 덕분에 약속 날짜를 잡게 됐죠. 다행히 LA에 친척이 살고 있어서 보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다가 상사를 만나게 됐어요. (반응이 어땠나요?) 안 좋았죠. 처음 구단 사무실을 들어가니까 모두 비웃었어요. 그리고 3일 동안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어땠나요?

엄청 힘들었죠. 못되게 했거든요. 예를 들면 경기장에서 투수를 보라고 해서 구속과 특징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타자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투수를 보란다고 투수만 보면 되냐는 식이었어요. 그냥 빨리 관두라는 거였죠. 미국까지 갔는데 포기할 수 없었어요. 3일 동안 밤새서 공부하고 야구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렇게 딱 3일을 하고 나니까 스카우트 장비들을 주면서 무급인데 일을 할 거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스피드건은 불도 겨우 켜질 정도로 오래됐고 카메라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한다고 했죠.

무급이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있었을 거 같아요.

많았죠. 2012년 내내 무급으로 일했어요. 지금도 오해가 있는 게 무급으로 일을 시작하다 보니까 집안이 잘 사는 줄 아는데 절대 아니에요. 무급으로 일을 했을 때 정말 친한 친구들 빼고는 연락을 다 끊고 매일 삼각김밥 같은 것만 먹었어요. 그리고 2013년에 파트타임으로 올라가고 월급으로 40만원을 받았어요. 서른한 살에….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정말 누구보다 절실했습니다.


2014년부터 풀타임 스카우트가 됐어요.

풀타임 됐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또 우셨어요. 하지만 말만 풀타임이었지, 4대 보험도 안 되고 사실상 계약직이었어요. 월급도 적었고요. (그래도 그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을 거 같아요.) 그렇죠. 요즘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주변 소개로 많이 하는데 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시작했어요. 그때 누군가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면 조금 더 빨리 일을 배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은 있어요.


스카우트를 하면서 봤던 선수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아마추어 선수들 중에는 야탑고 박효준과 부산고 윤성빈이요. 실제로 오퍼까지 했는데 계약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어요. 박효준은 천재적인 수비능력을 가졌고 윤성빈은 체격이나 가능성이 최고였어요.


내년에 지켜보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덕수고의 장재영과 나승엽입니다. 특히 장재영이 정말 좋아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유형의 선수예요. 성향은 물론이고 투구폼이나 가능성 면에서 여태까지 봤던 한국 선수들 중에 가장 뛰어나요. (같은 학교 선배인 류제국보다 위인가요?) 저는 그렇게 판단해요. 물론 류제국이 베테랑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아직도 화자가 될 만큼 엄청난 임펙트를 보여줬지만 장재영이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풀타임 스카우트가 됐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마루치 배트’의 한국 라이센스를 획득하며 메이저리그 배트를 한국에 들여왔다. 그리고 'The Baseball Factory(더 베이스볼 팩토리)'를 통해 우후죽순 생겨나는 야구레슨장 사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 모든 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야구 후배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선수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마루치 배트 사업도 함께하고 있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는데 ‘M’이라고 써져있는 배트를 다 쓰고 있는 거예요. 처음 보는 브랜드여서 ‘미즈노’라는 브랜드의 배트인 줄 알았는데 마루치라는 회사더라고요. 니코스키의 도움을 받아서 직원과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본사에 가서 미팅을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여러 개의 직업을 가져도 상관이 없나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마루치 배트를 제가 직접 파는 게 아니라 판매는 다른 분이 하고 한국 판매에 대한 라이센스만 가지고 있어요.


야구용품업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비결이 있나요?

어느덧 6년 정도 됐는데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절대 아니에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시키지 않고 조금씩만 판매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거 같아요. 미국에서 워낙 유명하고 많이 쓰다 보니까 국내에서 관심을 많이 가진 것도 있고요.


레슨장도 새롭게 시작했죠?

2018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1년 반 정도 했어요. 다른 레슨장에서 한 번씩 도와주다가 직접 사람들을 모아서 레슨장을 열어보자는 마음을 갖고 시작하게 됐어요.

일반 레슨장과 다른 설립 목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물론 야구 레슨을 진행하지만 야구를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야구를 계속하고 싶은데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회를 주기 위해서 설립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에 입단하지 못했거나 방출당한 선수들이 미국이나 일본 독립리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이에요. 우리나라 독립리그의 경우 선수가 돈을 내고 경기를 뛰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돈을 받으면서 경기를 뛸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 지금까지는 목표대로 가고 있어요. 작년에 방출선수 대상으로 트라이아웃도 진행을 했고요. (레슨장 자체적으로요?) 예전에 두산에서 뛰었던 서동환이 운영하는 레슨장과 함께 진행했어요. 결국 두산에 육성선수로 3명이 입단했어요. 그 중 박정준은 올해 1군에도 올라갔어요.


일종의 컨설팅 회사 같은 거네요?

그렇죠. 직업소개소라고 볼 수도 있어요. 앞으로 야구심판이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교육도 진행할 예정인데 바빠서 못하고 있어요. 트라이아웃도 매년 꾸준히 할 거고요. 야구를 관둔 선수들이 다시 야구 쪽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어요.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고 일종의 재능기부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목표예요.


3가지 일을 겸하려면 정말 바쁠 거 같아요.

힘들어도 즐거워요. 그래도 본업이 스카우트인 만큼 스카우트에 90%, 레슨장과 배트에는 5%씩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레슨장의 인원도 제한을 해놨어요. 인원이 많아지면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거든요.

#앞으로의 꿈


그의 목표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많은 선수와 계약을 맺는 것도 아니다. 단 한 명의 선수와 계약하더라도 그 선수가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활약을 펼치는 것, 그리고 더 베이스볼 팩토리를 통해 야구선수들이 야구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제 첫 발을 내딛었지만 확고한 그의 의지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야구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날을 꿈꾸며 오늘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찾는 야구인 남궁훈이다.


KBO와 MLB에서 선수를 지명(계약)할 때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KBO는 매년 좋든 실든 매년 10명을 뽑아야 하고 MLB는 가장 좋은 선수 한 명을 계약하는 게 큰 차이점이에요. 한국은 수비, 센스 등 모든 면을 비교해보고 파악한다면 MLB는 딱 한 가지, 그 친구가 가장 잘하는 걸 보는 거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파워가 좋은 선수가 있다면 같은 또래의 다른 나라 선수들과 파워를 놓고 비교해요. 다른 나라 선수들과 비교해서 그 선수가 1등을 하면 오퍼를 넣는 식이죠. 아시아 선수들은 남미 선수들에게 밀리는 편이에요.


그래도 남미 선수보다 뛰어난 한국 선수만의 장점이 있다면요?

멘탈입니다. 남미 선수들은 좋게 말하면 자유스러운 거고 안 좋게 말하면 단체성도 없고 성향도 좋지 않아요. 지도자를 공경하는 마음도 없고요. 그래서 미국에 진출했을 때 사고치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정신력도 강하고 지도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메이저리그는 보통의 정신력으로는 가기 힘들어요. 그렇기에 더더욱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야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꿈을 크게 가지고 더 높을 곳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끔씩 메이저리그 얘기를 하면 선수들이 낯 뜨거워 하더라고요. 무모해보이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을 하길 바라요.

아직까지 계약한 선수가 없어요. 직접 뽑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언제쯤 기대해도 될까요?

일단 내년입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장재영 선수와 계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 이후에도 좋은 선수가 나온다면 꾸준히 오퍼를 넣어야죠. 실적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계약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년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선수와 계약을 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 그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향해 한 단계씩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할 거 같아요. 그리고 레슨장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야구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저 같은 선수들이 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아시아 담당 남궁훈 스카우트입니다. 책으로만 봤던 매거진에 직접 나올 수 있어 영광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매거진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고 저도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1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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