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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Tip] 야구선수와 악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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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SK의 두 번째 투수로 나온 박민호가 던진 공이 타자 민병헌의 왼손에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구에 맞은 민병헌은 곧바로 왼손을 부여잡으며 쓰러졌고, 당시 박민호는 껌을 씹으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이후 흥분한 일부 야구팬들이 박민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댓글을 올려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너도 꼭 골절 부상으로 선수 인생이 끝나길 바란다’, ‘부모가 운영하는 빵집을 테러하겠다’ 등 인신공격, 협박성 악플이 숱하게 달린 것이다. 박민호가 사과 댓글을 작성했음에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야구선수에 대한 악플 문제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이것이 한두 명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한 문제가 아님은 긴 세월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타자를 두드려 선수들을 멍들게 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에디터 최홍서 사진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정상급 선수들에게도 달라붙는 ‘악플’


“정말로 만나보고 싶어요. 어떤 얘기를 나눌지 모르겠지만, 같이 사진을 찍어서 구단 홈페이지에 올리면 본인도 느낄 거 아니에요. 정말 유명하신 분이신데 가족이 우리 아들이었네, 친구들이 내 친구였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악플러의 심정이) 과연 어떨까….”


2016년 1월 8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미네소타 트윈스 입단 기자회견을 가진 박병호에게 쏟아졌던 질문 중 하나는 유명 악플러 ‘국민거품 박병호(이하 국거박)’에 대한 의견이었다. 2013년 말부터 이 악플러는 박병호와 관련된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이장석 전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가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는 등 야구계에도 널리 알려졌을 정도였다. 국거박이 2019년 5월까지 인터넷 스포츠 뉴스 댓글란에 작성한 악플은 자그마치 47,000건.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인터넷 스포츠 뉴스를 확인하며 비방을 일삼은 셈이다. 과거에 이승엽을 같은 레퍼토리로 비방했던 점을 미뤄봐 그는 그저 관심을 얻기 위해 박병호를 깎아내리는 인물로 치부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다른 네티즌들이 박병호가 부진할 때 국거박의 악플을 두둔하면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박병호가 안 좋은 모습을 보인 날, 네이버 스포츠 댓글란이나 야구 커뮤니티를 확인하면 ‘국거박 1승’, ‘국거박 로그인’ 등의 반응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는 그의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고 베스트 댓글에 선정되는 경우도 잦았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타자 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 중인 추신수 또한 악플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15년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자,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일기 형식 칼럼인 ‘추신수의 일기’에는 ‘멕라렌’이라는 유저를 중심으로 지탄의 댓글이 달렸다. 성적 부진을 넘어, 추신수가 일기를 올리는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오죽하면 담당기자도 추신수에게 잠깐 일기를 중단하는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두 선수는 인터넷상에서의 비아냥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국거박에 대한 질문을 받자 웃으며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던 박병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내가 (악플을) 안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며 처벌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추신수도 비슷했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칼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꿋꿋이 연재해 2017년에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지 않겠나. 난 내 길을 계속 걸어가면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악플은 강심장도 괴롭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는 없다. 사람이라면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근거 없이 손가락질하는 악플에 당연히 마음의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얼마 전 홍상삼의 인터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4월 17일 잠실 SK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704일 만에 선발 등판한 홍상삼은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쳐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에게 공황장애가 있음을 고백하며 “욕을 너무 먹다 보니까 마음에 덩어리가 있었다”라고 말해 장내 분위기를 일순간 숙연하게 만들었다.


홍상삼은 신인 시절,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범한 모습으로 강심장이라고 불렸다. 그러한 그가 “내가 강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참는 모습은 그를 욕하던 이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제아무리 악플에 무던할지라도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 공격받으면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삼성 라이온즈 투수 정인욱은 악플로 인해 가족 전체가 고생했다. 2018년 11월 12일 방송된 tnN의 ‘인생술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의 아내 개그우먼 허민은 남편이 자신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스트라이크를 다른 데 넣었네’, ‘허민 매니저나 해라’등의 댓글들이 달린 것을 보고 마음고생을 했고,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마저도 악플을 우려해 알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추신수는 칼럼 담당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악플에도 담담할 수 있지만 가족을 향한 비난은 여전히 큰 상처로 남는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악플은 팬들의 애정 표현 수단? 

2015년 안태형 동아대 교수가 우리말학회에 개제한 논문 「네이버(Naver) 기사에 딸린 악성 댓글의 실태」에 의하면, 경기 결과를 전달하는 기사에 악성 댓글이 빈번히 작성되며, 상대방을 저주나 협박하기보다 비방 및 비난을 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논문 저자는 ‘저주나 협박의 내용을 작성하게 되면 법의 처벌을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 있기에 댓글 작성자가 수위를 조절하여 작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격한 프로 스포츠 팬의 성향을 비춰볼 때 이와는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박종석 구로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선수들과 악플에 대해 다룬 모 주간신문의 기사에서 “팬들이 격양된 마음으로 댓글을 쓸 때 필요 이상의 분노가 실린다. 여기서 감정적인 부분은 일시적인 배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구 관련 커뮤니티와 스포츠 기사 댓글란에 달리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부분 최근 경기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야구 선수가 어떤 활약을 펼쳤느냐에 따라 극명히 갈린다. 

이를 적나라하게 입증했던 것이 바로 LG 트윈스 팬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LG 트윈스 갤러리’에 게시됐던 박용택의 인증 글이다. 2009년 박용택이 3할 7푼 2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율왕에 등극하자 갤러리의 LG팬들이 돈을 모아 박용택에게 선물을 했다. 이에 감동을 받은 그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갤러리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후 해당 게시글은 박용택의 활약 여부에 따라 살가운 댓글의 향연부터 온갖 인신공격이 담긴 악성 댓글로 도배되는 등, LG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해 ‘쥐갤 실록’이라고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프로야구 팬들의 성향은 ‘악성 댓글의 게시와 익명성이 비례 관계에 있다’는 통념 또한 깨트린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에는 응원팀 선수들의 부진에 분개하여 선수단 버스 방화, 경기장 난입 및 오물 투척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팀이 7연패에 빠지자 분노한 롯데 팬이 퇴근하던 이대호에게 치킨을 던지는 등 인터넷 밖에서도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악플이 달리는 네이버 스포츠 댓글란의 댓글 작성자 연령대를 확인하면, 대부분의 기사에서 3~40대 남성이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일부 팬들의 과격한 분노 표출이 경기장에서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은 악(惡)플


의도가 어쨌건, 결국 악플에 선수가 상처를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원인 제공자가 선수라고 해도 이로 인한 인신공격이 계속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팬들의 비난에 심적으로 고생해 비밀리에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을 받는 선수들도 있고, 이는 홍상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초 이대호의 부진은 4년 150억이라는 몸값을 생각했을 때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치킨을 던진 팬을 진지하게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필요 이상의 질타는 결국 선수에게 간접적으로 오물을 투척하고 비수를 꽂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상처 받는다. 기대 이하의 경기 내용에 흥분했다 할지라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8호(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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