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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소비자는 왕인가?

아이돌 콘텐츠의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레드벨벳의 아이린에게 어떤 책을 읽거나 읽지 말라고 얘기할 순 없다.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다. 2016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50만부 이상 판매된 이 베스트셀러는, 1982년에 태어나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고 육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지영 씨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되짚어가며 여성들이 매 순간 겪어야 하는 성차별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의 현실을 불편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으니 분류하자면 페미니즘 소설일텐데, 바로 이 부분이 일부 남성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레드벨벳 팬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내가 돈을 쓴 덕에 먹고 사는’ 걸 그룹 멤버 아이린이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는 데 분노했다. 누군가는 앨범에 들어있던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찢고 사진으로 인증했다. ‘소비자인 내가 화났다’는 표현, ‘다시는 너에게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이 소동에는 몇 겹의 문제가 포개어져 있다. 걸 그룹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보기 좋은 채로 예쁘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그리고 또 하나, 팬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는 왕이라는 의식이다.

팬들은 아이돌에게 돈을 쓴다.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마찬가지다. 굿즈를 사고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보러 간다.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스트리밍을 돌리기도 한다. 아이돌을 둘러싼 무언가를 소비하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의 아이돌 기획사는 팬들을 소비자 대접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다. 시즌별로 여러가지 굿즈를 만들어 쉴 틈 없이 팔고,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각종 시상식에서 1위를 할 수 있게 투표해달라고 독려한다. 멤버가 공식 SNS 계정에 직접 글을 올리기도 한다. 화보집, 앨범 제작 등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에서 최대치의 이익을 내려면 돈을 많이 쓰는 코어 팬덤을 늘려야 한다. 팬들이 아이돌 제작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충성도 높은 코어 팬들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앨범을 판매하는 방식이 노골적이다.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와 얼굴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 팬 사인회는 앨범을 사야만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보통은 앨범을 여러 장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돈을 쓸수록 대접받는 소비자, 특별한 소비자가 된다. “팬 사인회에 가보면 아이돌이 엄청 잘해줘요. 돈을 많이 써서 여기 온 팬들이니까요. 사인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획사에서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한 보이그룹의 팬은 말했다. 당연히 걸그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팬 사인회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가능하다.

사실 돈을 썼다고 해서 아이돌이라는 인간을 구매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품화하는 아주 특수한 산업이다. 때문에 팬들을 소비자로 명명하는 순간 착시가 발생한다. 앨범 몇 장을 사면 아이돌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Mnet <프로듀스 101>은 그 허들을 확 낮췄다. 한 통에 100원밖에 하지 않는 문자 투표만 해도 돈을 지불한 소비자로서 아이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권리가 생겼다. 심지어 인터넷 투표는 공짜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생들은 꼬박꼬박 시청자들을 ‘국민 프로듀서님’이라 부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으며,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데뷔를 ‘국민 프로듀서님’들이 결정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아무런 소비 활동을 하지 않아도, 더 정확히는 프로그램을 보기만 해도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프로듀스 101>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I.O.I의 멤버였고 현재는 구구단으로 활동 중인 김세정의 한 남성 팬은 다른 팬들과 돈을 모아 데뷔 축하 선물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비싼 거 쓰면 버릇 나빠진다”며 저렴한 물건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명의 의견이었지만 해당 남성이 모금에 ‘총대’로 나섰다는 점, 모금 과정에서 돈을 빼돌린 정황이 의심된다는 점 때문에 논란은 커졌다. 그의 주장은 ‘나는 김세정의 데뷔를 도운 소비자니까, 게다가 김세정은 젊은 여자니까’ 인성에도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걸그룹은 보이그룹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소비되기에 여기저기서 소비자 행세를 하려 든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니까 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늘 방긋방긋 웃고 애교를 부려야 한다고 소비자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아이돌을 제작하는 건 그들 각자의 기획사다. 아이돌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이 아이돌이기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자신의 일을 한다. 팬들이 돈을 써서 구매하는 건 아이돌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된 무형 혹은 유형의 콘텐츠다. 그 콘텐츠에 100원을 쓰든 1000만원을 쓰든, 윤리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일에 관해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아이돌을 비난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어떤 책을 읽든, 어떤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든, 시키는 대로 애교를 부리든 말든 그렇다는 뜻이다. 아이돌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2018년에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CREDIT
에디터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김형식



아이돌 콘텐츠의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레드벨벳의 아이린에게 어떤 책을 읽거나 읽지 말라고 얘기할 순 없다.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다. 2016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50만부 이상 판매된 이 베스트셀러는, 1982년에 태어나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고 육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지영 씨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되짚어가며 여성들이 매 순간 겪어야 하는 성차별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의 현실을 불편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으니 분류하자면 페미니즘 소설일텐데, 바로 이 부분이 일부 남성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레드벨벳 팬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내가 돈을 쓴 덕에 먹고 사는’ 걸 그룹 멤버 아이린이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는 데 분노했다. 누군가는 앨범에 들어있던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찢고 사진으로 인증했다. ‘소비자인 내가 화났다’는 표현, ‘다시는 너에게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이 소동에는 몇 겹의 문제가 포개어져 있다. 걸 그룹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보기 좋은 채로 예쁘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그리고 또 하나, 팬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는 왕이라는 의식이다.

팬들은 아이돌에게 돈을 쓴다.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마찬가지다. 굿즈를 사고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보러 간다.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스트리밍을 돌리기도 한다. 아이돌을 둘러싼 무언가를 소비하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의 아이돌 기획사는 팬들을 소비자 대접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다. 시즌별로 여러가지 굿즈를 만들어 쉴 틈 없이 팔고,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각종 시상식에서 1위를 할 수 있게 투표해달라고 독려한다. 멤버가 공식 SNS 계정에 직접 글을 올리기도 한다. 화보집, 앨범 제작 등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에서 최대치의 이익을 내려면 돈을 많이 쓰는 코어 팬덤을 늘려야 한다. 팬들이 아이돌 제작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충성도 높은 코어 팬들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앨범을 판매하는 방식이 노골적이다.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와 얼굴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 팬 사인회는 앨범을 사야만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보통은 앨범을 여러 장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돈을 쓸수록 대접받는 소비자, 특별한 소비자가 된다. “팬 사인회에 가보면 아이돌이 엄청 잘해줘요. 돈을 많이 써서 여기 온 팬들이니까요. 사인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획사에서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한 보이그룹의 팬은 말했다. 당연히 걸그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팬 사인회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가능하다.

사실 돈을 썼다고 해서 아이돌이라는 인간을 구매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품화하는 아주 특수한 산업이다. 때문에 팬들을 소비자로 명명하는 순간 착시가 발생한다. 앨범 몇 장을 사면 아이돌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Mnet <프로듀스 101>은 그 허들을 확 낮췄다. 한 통에 100원밖에 하지 않는 문자 투표만 해도 돈을 지불한 소비자로서 아이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권리가 생겼다. 심지어 인터넷 투표는 공짜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생들은 꼬박꼬박 시청자들을 ‘국민 프로듀서님’이라 부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으며,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데뷔를 ‘국민 프로듀서님’들이 결정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아무런 소비 활동을 하지 않아도, 더 정확히는 프로그램을 보기만 해도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프로듀스 101>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I.O.I의 멤버였고 현재는 구구단으로 활동 중인 김세정의 한 남성 팬은 다른 팬들과 돈을 모아 데뷔 축하 선물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비싼 거 쓰면 버릇 나빠진다”며 저렴한 물건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명의 의견이었지만 해당 남성이 모금에 ‘총대’로 나섰다는 점, 모금 과정에서 돈을 빼돌린 정황이 의심된다는 점 때문에 논란은 커졌다. 그의 주장은 ‘나는 김세정의 데뷔를 도운 소비자니까, 게다가 김세정은 젊은 여자니까’ 인성에도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걸그룹은 보이그룹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소비되기에 여기저기서 소비자 행세를 하려 든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니까 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늘 방긋방긋 웃고 애교를 부려야 한다고 소비자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아이돌을 제작하는 건 그들 각자의 기획사다. 아이돌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이 아이돌이기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자신의 일을 한다. 팬들이 돈을 써서 구매하는 건 아이돌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된 무형 혹은 유형의 콘텐츠다. 그 콘텐츠에 100원을 쓰든 1000만원을 쓰든, 윤리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일에 관해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아이돌을 비난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어떤 책을 읽든, 어떤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든, 시키는 대로 애교를 부리든 말든 그렇다는 뜻이다. 아이돌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2018년에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CREDIT
에디터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김형식



아이돌 콘텐츠의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레드벨벳의 아이린에게 어떤 책을 읽거나 읽지 말라고 얘기할 순 없다.
프로필 사진
지큐코리아 작성일자2018.03.31. | 18,375 읽음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다. 2016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50만부 이상 판매된 이 베스트셀러는, 1982년에 태어나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고 육아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지영 씨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되짚어가며 여성들이 매 순간 겪어야 하는 성차별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의 현실을 불편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했으니 분류하자면 페미니즘 소설일텐데, 바로 이 부분이 일부 남성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레드벨벳 팬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내가 돈을 쓴 덕에 먹고 사는’ 걸 그룹 멤버 아이린이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는 데 분노했다. 누군가는 앨범에 들어있던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찢고 사진으로 인증했다. ‘소비자인 내가 화났다’는 표현, ‘다시는 너에게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이 소동에는 몇 겹의 문제가 포개어져 있다. 걸 그룹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보기 좋은 채로 예쁘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그리고 또 하나, 팬은 곧 소비자이며 소비자는 왕이라는 의식이다.


팬들은 아이돌에게 돈을 쓴다.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마찬가지다. 굿즈를 사고 앨범을 사고 콘서트를 보러 간다.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스트리밍을 돌리기도 한다. 아이돌을 둘러싼 무언가를 소비하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지금의 아이돌 기획사는 팬들을 소비자 대접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다. 시즌별로 여러가지 굿즈를 만들어 쉴 틈 없이 팔고,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각종 시상식에서 1위를 할 수 있게 투표해달라고 독려한다. 멤버가 공식 SNS 계정에 직접 글을 올리기도 한다. 화보집, 앨범 제작 등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에서 최대치의 이익을 내려면 돈을 많이 쓰는 코어 팬덤을 늘려야 한다. 팬들이 아이돌 제작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충성도 높은 코어 팬들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앨범을 판매하는 방식이 노골적이다.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와 얼굴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 팬 사인회는 앨범을 사야만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보통은 앨범을 여러 장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돈을 쓸수록 대접받는 소비자, 특별한 소비자가 된다. “팬 사인회에 가보면 아이돌이 엄청 잘해줘요. 돈을 많이 써서 여기 온 팬들이니까요. 사인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획사에서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한 보이그룹의 팬은 말했다. 당연히 걸그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팬 사인회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가능하다.


사실 돈을 썼다고 해서 아이돌이라는 인간을 구매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품화하는 아주 특수한 산업이다. 때문에 팬들을 소비자로 명명하는 순간 착시가 발생한다. 앨범 몇 장을 사면 아이돌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Mnet <프로듀스 101>은 그 허들을 확 낮췄다. 한 통에 100원밖에 하지 않는 문자 투표만 해도 돈을 지불한 소비자로서 아이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권리가 생겼다. 심지어 인터넷 투표는 공짜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생들은 꼬박꼬박 시청자들을 ‘국민 프로듀서님’이라 부르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으며,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데뷔를 ‘국민 프로듀서님’들이 결정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아무런 소비 활동을 하지 않아도, 더 정확히는 프로그램을 보기만 해도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프로듀스 101>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I.O.I의 멤버였고 현재는 구구단으로 활동 중인 김세정의 한 남성 팬은 다른 팬들과 돈을 모아 데뷔 축하 선물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비싼 거 쓰면 버릇 나빠진다”며 저렴한 물건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명의 의견이었지만 해당 남성이 모금에 ‘총대’로 나섰다는 점, 모금 과정에서 돈을 빼돌린 정황이 의심된다는 점 때문에 논란은 커졌다. 그의 주장은 ‘나는 김세정의 데뷔를 도운 소비자니까, 게다가 김세정은 젊은 여자니까’ 인성에도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걸그룹은 보이그룹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소비되기에 여기저기서 소비자 행세를 하려 든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니까 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늘 방긋방긋 웃고 애교를 부려야 한다고 소비자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아이돌을 제작하는 건 그들 각자의 기획사다. 아이돌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이 아이돌이기에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자신의 일을 한다. 팬들이 돈을 써서 구매하는 건 아이돌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돌과 관련된 무형 혹은 유형의 콘텐츠다. 그 콘텐츠에 100원을 쓰든 1000만원을 쓰든, 윤리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일에 관해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아이돌을 비난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어떤 책을 읽든, 어떤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든, 시키는 대로 애교를 부리든 말든 그렇다는 뜻이다. 아이돌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2018년에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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