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엔비디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조회수 2020. 12. 20. 05: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의 지사장에서 스타트업 멘토가 된,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여러분은 꿈이 있으신가요? 세월에 지나면 꿈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도 괜스레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에서 30년간 일하고, 엔비디아 코리아의 지사장으로 13년간 일한 이용덕 전 대표는 젊은이들에게 "기술로 꿈을 꾸라"고 말하며 자신 역시 또 다른 꿈을 꿉니다.


30년 IT 전문가가 엔비디아 코리아의 지사장을 그만두고 청년 스타트업을 코칭하며 그들의 꿈을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그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일까요? 청년 스타트업을 돕는 드림앤퓨처랩스의 이용덕 캡틴을 EO가 만나고 왔습니다.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드림앤퓨처랩스의 캡틴, 이용덕입니다. 드림앤퓨처랩스는 젊은이들을 위한 재능 기부 단체예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CEO에게 창업 코칭을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스쿨과 창업 스쿨도 운영합니다.


저는 반도체 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했어요. 미국 반도체 회사 3곳의 한국 총괄 지사장으로 20년간 근무했고, 엔비디아 코리아의 지사장으로 13년간 일하며 한국에 GPU 컴퓨팅을 알리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 일했습니다. 


저의 이런 경험과 경영 노하우를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후배에게 전하며 지금은 드림앤퓨처랩스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Q. 필립스와 브로드컴, 엔비디아까지 정말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셨는데요. 대표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면 국내 대기업에 입사해 열심히 일하는 게 좋은 꿈이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당시 현대전자가 울산대학교와 같은 그룹 계열이었거든요. 울산대학교 공대를 졸업하면 바로 현대전자에 취직이 되는 상황이라 울산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인생에 전환점이 된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입한 연극 동아리였어요. 소심했던 성격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죠. 학창 시절에 저는 늘 조용한 학생이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키가 많이 작았는데, 그때는 키순으로 번호를 매기니까 반에서 늘 제가 1번이었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키가 151센티였는데, 제가 다닐 영훈고등학교가 하필이면 남녀공학이었던 거예요. 40년 전에는 서울에 남녀공학인 고등학교가 3~4개뿐이었는데, 하필! 한참 사춘기라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다들 키가 작은 저를 아이처럼 대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조용히 학교에 다녔죠.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Q. 그럼에도 대학 시절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연극을 좋아했거든요. 우연히 같이 연극을 한 편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가슴이 떨리더라고요.


서울에 살다가 대학 진학 문제로 울산에 내려간 터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한참 외로움을 느끼던 차에 연극 동아리가 딱 눈에 들어온 거죠. '그래. 연극을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동아리에 들어간 1학년 2학기에는 마을 청년 1, 2, 3 중 2번 역할로 무대에 올랐어요. 대사가 한 3줄 됐을까요? 그런데 그 3줄을 3개월 내내 외웠어요. 무대에서 그 짧은 대사를 외치는데, 정말 큰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2학년 때 주인공으로 오른 무대의 첫 대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음. 바로 여기군. 여기가 바로 프랑스 제2 제국 양식의 방이군" 이런 대사였죠. 


어쨌든 연극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어느 가을날이었는데, 평소처럼 늦게 연극 연습을 마치고 술을 거나하게 마신 상태였어요.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논두렁에 뜬 보름달이 너무 밝은 거예요. 밝은 달을 쳐다보는 순간, 블랙아웃이 왔어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앞으로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라는 불안이 엄습했던 것 같아요. 엔지니어가 제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거든요. 엔지니어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인데, 그게 지금의 나와 잘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Q. 고민 끝에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사람 만나는 일을 하는 게 더 낫겠다 싶더라고요.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비즈니스맨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넥타이에 양복을 갖춰 입고 007 가방을 든 채 바쁘게 해외를 오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꿈을 이루려면, 비즈니스맨이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생각해보니, 제일 먼저 영어 공부를 해야겠더라고요. 1983년에는 원어민이 가르치는 영어 학원이 없었어요.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죠.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김포공항 풍경을 보니까 외국인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공항에 가면 외국인과 직접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김포공항으로 갔습니다.


말을 걸면 놀라며 피하는 외국인도 있었고,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는 이들은 대화를 잘 받아주더라고요. 나중에는 대사도 만들었어요.


"비즈니스맨이 꿈인 학생인데, 한국에서 원어민과 대화하며 영어를 공부할 방법이 많지 않아 김포공항에 왔어요. 10분만 대화해주세요. 대한민국 학생 한 명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시는 겁니다. 플리즈"라고 말하면 "물론이지!" 하고 대화를 받아줬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일요일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곤 했어요. 제 인생의 가정교사라고 할 만큼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Q.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세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라던 비즈니스맨이 된 후에도 새로운 꿈이 생기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필립스코리아에서 아시아 마케팅 업무를 맡았는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외국계 회사 지사장을 해봐야겠다'라는 두 번째 꿈이 생기더라고요.


마케팅팀을 이끄는 부서의 상사가 독일인 부사장이었는데, 제 롤모델이셨어요. 그분이 사용하는 좋은 영어 문장을 따라 쓰면서 내 것으로 체화하는 등 벤치마킹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꿈이 생겼죠. 이때도 '어떤 능력을 더 키워야 할까?' 먼저 생각했습니다. 


한국 지사의 지사장이 되려면 한국 영업을 배워야겠더라고요. 경영학 공부도 필요할 것 같고, 영어 역시 더 능수능란해야 할 것 같고요. 곧바로 아주대학교에서 MBA를 시작했고 영어 기숙학원에서 밤새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한국 영업 담당으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고, 결국 5년 뒤 프랑스-이탈리아 반도체 회사, SGS-톰슨(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 과장으로 이직해 한국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6년을 꾸준히 준비해 37살에 미국 반도체 회사, 레저리티코리아의 한국 지사장이 됐죠. 직원이 4명인 작은 회사였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끝내줬죠.


거기서도 열심히 일했고, 2년 뒤에는 브로드컴이라는 규모가 큰 반도체 회사에 한국 지사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이직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으로 가면서 13년 동안 엔비디아에서 일했고요.


사실 사장이 되기 전까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장의 주요 업무가 매니지먼트더라고요. 제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죠. 직원을 관리하는 일도 있고, 과중한 책임감이 따라오니까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어릴 때 사장이 돼서 한동안 마음고생도 많았습니다.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때 특히 난처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사장인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문하고 배워가면서 사장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인터뷰

Q. 몇 번의 계기를 통해 꿈을 찾고 끊임없이 노력해오셨는데요. 의미 있는 일을 꿈꾸게 된 계기가 또 한 번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엔비디아 코리아에서 강연을 시작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회사인데, 해상도가 풀HD, 4K, 8K로 점차 올라가면서 처리하는 데이터양이 많아졌어요. 데이터를 읽는 연산 알고리즘이 발달하면서, 이 연산 장치가 인공지능의 주축이 됐죠.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끈다고 알려지고, 구글의 알파고가 엔비디아 GPU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지면서 엔비디아는 업계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곧 마케팅팀에서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멘토링과 강연을 통해 기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고, 본격적으로 대규모 강의를 시작했죠.


전국의 고등학생, 대학생을 상대로 4년간 꾸준히 '기술로 꿈을 꾸다'라는 강연을 진행했어요. 가장 인상 깊은 일화 중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6명이 300만 원으로 회사를 만든 일이었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VR 회사를 만들고 개발을 진행했죠.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대표에게 "가장 힘든 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점심값이 없어요"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때 참 많은 걸 느꼈습니다.


'이 젊은 사업가에게 필요한 건 경영이구나. 이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이게 내 인생에 또 다른 미션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사업가들이 간과하는 부분 중 하나가 사업이 현금의 흐름이라는 거예요. 제품을 팔아 돈을 회수하면 다시 개발에 투자하는 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제품 제작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품 개발 못지않게 '어떻게 잘 팔 것인가'에 대한 포커스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부분에서 제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30년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가슴 떨리는 일을 해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가 "당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한 번 해봐"라고 응원해주더군요. 그렇게 스타트업 사관학교, 드림앤퓨처랩스를 만들었습니다.

드림앤퓨처랩스 이용덕 캡틴 인터뷰

Q. 이야기를 들으면서 '꿈을 향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정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미래로 달려가는 것 같아요. 꿈을 정하고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57년이 지나고 제 인생을 돌아보니까, 스무 살 때 만들었던 꿈이 30년 동안 저를 이끌어왔더라고요. 


꿈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정말 도전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시고, 한 발자국 움직여 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시도를 해봐야 실패인지 성공인지 알 수 있어요.


지금 제 꿈은 좀 더 많은 젊은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관으로 드림앤퓨처랩스를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요즘 아침 7시에 일어나 1시간 반 동안 운동하고, 새벽 1시까지 스케줄을 소화해요.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 때보다 3~4배는 바빠서 몸이 너무 힘들어요.


그렇지만 제가 이루려는 꿈을 향하는 과정이라 마음은 훨씬 더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선배 세대로서, 진심으로 힘내라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어요. 무엇이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드림앤퓨처랩스로 오세요. 언제든지 함께 고민을 나누겠습니다.


모두 화이팅하십시오. 화이팅!

* 본 아티클은 2020년 7월 공개된 <엔비디아에서 13년,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꾼다>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에서의 13년을 포함해 IT 전문가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스타트업들의 멘토가 되기로 한 드림앤퓨처랩스의 캡틴 이용덕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이영림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