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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디자이너가 된 전교 꼴지 이야기

SAP 비주얼 비주얼 디자이너,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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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작은 피자집을 운영하다가 7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 SAP의 비주얼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희준입니다. 회사에서는 비주얼 디자이너로, 집에서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비주얼 디자이너는 제품의 디자인과 브랜드 디자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Q. 이색적인 커리어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실리콘밸리에 가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Tony Bennett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 됐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노래 가사 속 공간 안에 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게 됐어요. '노래를 듣고 여행을 떠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주변에서는 많이 말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 속에 어떤 끌림을 느꼈어요. 피자집을 운영하며 모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조금 쉬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니 가만히 앉아 쉼을 누리기 보다는 색다른 것을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학원이 아닌 현지 학교에 등록했습니다. 학교에도 어학 과정이 있어서 영어를 배우면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내가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 미술과 디자인 과정을 배우기로 결정했어요. 제가 피자집 일을 하면서 전단지나 메뉴판, 포스터 등을 직접 포토샵으로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Q.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당장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이 샌프란시스코 땅에서 생활하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다짐하고 학생 신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악착같이 찾아 다녔어요. 그러던 중 우연찮게 도심에 있는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곧장 에이전시로 달려가서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고, 에이전시 일이 끝나면 일식집에 가서 서빙 일을 했어요. 소득이 조금씩 생기자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가장 월세가 싼 곳을 렌트해서 생활하고, 학교 등록금도 4분할로 분납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냈습니다.

Q. 샌프란시스코에서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밟아온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디자이너 시절 초기에는 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동화책 삽화 작업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삽화 일을 잘 끝내고 나니까 이후 여러 자잘한 디자인 업무가 주어졌어요. 예를 들어 웹사이트에 들어가는 삽화 작업이나 아이콘 디자인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에이전시 분이 제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줄 아냐?' 고 물어봤습니다. 아직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툴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 했지만 일단 '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날 밤 집에 가서 유투브로 툴을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딱 어젯밤 공부한 내용 만큼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 툴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속성으로 배움과 실행을 진행했는데 저에겐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었어요.

Q. 이야기를 듣다보니 희준님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전교 꼴등을 한 이력이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공부 대신 그림 그리고 싶다는 의미로 OMR 카드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려 제출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선생님께서 제게 새로운 OMR 카드를 주시며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저는 다시 그림을 그려서 제출했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장난치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그날 부로 학교에서 정학 처분이 내려졌어요.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됐습니다. 


중퇴한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친구들은 모두 학교 갈 시간에 혼자 집에 남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을 즈음 어머니가 방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학교도 안 다니면 대체 어떻게 살 거냐'고 속상해 하셨어요. 그때 참 단순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림 그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요. 


대학에 진학하려면 고등학교 졸업증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한 달간 속성으로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해 졸업증을 땄습니다. 미술대학교 순수미술학과에 진학했어요. 제 스스로 검정고시를 공부해서 대학까지 합격하고 나니 신입생 시절에는 모든 게 행복했습니다. 그림도 마음껏 그렸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림 그려서 대체 뭐 해 먹고 살지?' 


그때 학교를 휴학하고 빚을 져서 동네에 20평 남짓한 피자집을 오픈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네 살이었어요. 그림으로는 돈을 벌 수 없으니 피자집을 운영하며 개인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가게가 잘 됐고 일이 바빴습니다. 아침부터 새벽 한 시까지 명절 주말 상관없이 손님들을 맞이했어요. 


하루 종일 피자를 만들고 배달하는 일에 힘을 쓰고 나면 퇴근 후에는 그림 그릴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게가 잘 돼서 2호점도 내고 빚도 갚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니 제 목적을 잃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행복하지 않았고 우울했습니다.

Q. 학창시절 부터 지금까지 그림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이어 오신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주변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야한다' '미술을 전공했으니 이런 직장에 가서 이런 결과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사회에는 분명히 정해진 틀이 있고 그 틀에 나를 맞추지 못하면 내가 잘못된 사람 같았어요. 그런 현실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왔을 때, 저는 사회에 정해진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직업, 다양한 회사와 문화를 경험하게 됐어요. 그 다양성은 제게 어떤 한 곳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기회를 찾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줬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의 환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저는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틀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틀 안에서 억지로 버티고 살아가면 오히려 그 사람이 죽는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의 신호를 따라 원하는 길로 걸어갈 때 주변의 우려와 걱정은 사그라들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우려하는 만큼 삶이 힘들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틀을 찾아서 그 길로 가시길 추천드려요. 


저도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될 지 예상하지 못했고 계획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제가 마지막으로 정착할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젠가 다시 Tony Bennett의 노래처럼 제 마음의 신호가 온다면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새로운 곳으로 갈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이 기대돼요.


* 본 인터뷰는 2018년 10월에 진행되었습니다.

글 유하영

chloe@eoeoeo.net


편집 유성호

hank@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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