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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연구원을 그만두고 농부가 되었습니다

조회수 2020. 7. 22. 0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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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알알이거둠터 송예슬 대표

오늘 EO가 소개해드릴 분은 알알이거둠터 대표 송예슬님 입니다. 송예슬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부모님이 재배하시는 유기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귀농을 결심했다고 하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오픈마켓을 통해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어엿한 농부이자 자영업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알알이거둠터 송예슬입니다. 충북 청주에서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유기농 채소들을 수확하고 판매하고 있어요. 당일 수확한 채소를 직접 착즙해서 소비자 맞춤 주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오랫동안 유기농산물을 재배해오셨고, 저는 32살에 이곳으로 내려와 농사일을 함께 돕고 있어요.

Q.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귀농하기 전, 저는 환경공학을 전공해서 석사까지 마치고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부모님이 재배하시는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 현장에 직접 내려가서 사진을 찍고 '우리 채소들은 이렇게 키웠어요'라고 상세 페이지를 만들어 올렸는데 구매가 이루어졌어요. 그 때 처음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그러던 중 하루는 외국인 고객분이 온라인은 농산물을 구매했는데, 부모님께서 손님 주소를 찾을 수 없다고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제가 연구실에서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물어보고 상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전공 연구실은 제가 없어도 잘 운영되는데, 우리 농가에는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제가 귀농을 결심 했을 당시만 해도, 온라인으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모두가 뜯어 말린 게 기억나요. 연구소를 그만두고 농가로 내려가니까 막상 '사업이 잘 안 됐을 때,'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새로운 방식으로 농사일에 접근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내가 필요한 곳에서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귀농 의사를 전하며 '내가 충주에 내려가서 농사일도 도와드리고, 인터넷으로 농산물을 팔아서 한 달에 100만 원씩만 벌어보겠다' 말씀드렸습니다.

Q. 농사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들어왔어요. 그냥 거저 먹는 건 없다. 요리사가 되려면 레스토랑에 들어가 설거지부터 시작하잖아요. 저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풀 뽑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한 번 해보자' 작정하고 들어갔더니 무섭고 힘들어도 내 선택에 핑계를 댈 수가 없더라고요. 


농촌에 가면 도시마다 농업기술센터가 있습니다. 센터에는 귀농, 귀촌 교육 프로그램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제가 귀농하고 2년동안 센터에 있는 교육 과정을 거의 다 들었어요. 그 중에 '채소 소믈리에'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채소 소믈리에는 와인 소믈리에처럼 어떤 채소를 어떻게 먹으면 몸에 좋은지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직업인데요. 농부야말로 채소 소믈리에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교육을 들으러 다녔어요.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하고 온라인 판매도 준비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농사일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Q. 온라인 판매가 고객들의 반응을 얻은 건 언제인가요? 


제대로 된 고객들의 반응을 얻은 건 2013년이었어요. 네이버에서 산지직송 코너를 기획하던 관계자 분이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농가가 있구나' 하고 알알이거둠터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가족끼리 농장에 나가 동영상을 찍었어요. '우리 농산물은 이런 식으로 재배되고 이렇게 판매합니다'라고요. 


그 이후로 차츰 주문이 늘었지만 초기에는 소비자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반듯하고 고른 채소들만 판매하는데 유기농산물은 벌레 먹은 자국도 있고 모양도 공산품처럼 예쁘지만은 않았거든요. 그렇다보니 '쓰레기를 보냈네' 하는 후기가 달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사실 모양이 삐뚤해도 맛이나 영양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소비자들은 모르는 농부만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농장 사진도 찍고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썼어요. 나중에는 '나는 벌레 먹은 게 오히려 더 좋아요'라며 유기농산물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보여주시는 고객 분들이 생기고, '알알이거둠터의 채소를 먹고 몸이 좋아졌다'거나 '알알이거둠터 채소는 믿고 구매할 수 있다' 고 해주시는 분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Q. 농사일에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풀을 뽑으려면 엎드려야 해요. 농사일은 땅을 짚어가면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루 하루 땅에 무릎을 꿇고 일하다보면 '농사일은 나를 정말 낮아지게 하는구나' 하며 겸손함을 배우게 됩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추수하며, 식물의 삶과 죽음까지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에요. 매년 봐도 새롭습니다. 


사실 귀농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남보다 도태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이곳으로 내려와 제2의 삶을 시작한 건 제 인생에 있어서 제일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빨리 들어오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로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형이 뭐예요?' 물어보면 '삽질 잘하는 남자요'라고 말했거든요. 이제는 제가 제 스스로의 이상형이 되었어요. 제가 지난 달에도 삽질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Q. 농부는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농부는 참 고되고 힘든 직업이에요. 365일 늘 작물을 위해 자신의 땀과 시간을 바쳐야 하니까요. 작물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에 농부가 조금이라도 소홀히 일하면 죽어버려요. 그래서 제게 농부라는 직업은 거짓말 하지 않는 직업, 진실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제 사촌 조카가 집에 놀러와서 '농부인 고모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런 칭찬을 들을 때면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농부란 직업이 자랑스럽고 멋있는 직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글 유하영

chloe@eoeoeo.net


편집 유성호

hank@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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