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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 티비

영화보다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패션 디자이너

71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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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은

천재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되었죠.

오늘은 패션디자이너 계한희님이

그 중 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D

바로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인데요!

샤넬은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인 패션 브랜드죠.

이에 반해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은

드라마틱하고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네요~

#샤넬의 유년기

샤넬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나

보육원에서 가난하고 힘든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보육원에서 배운 재봉기술을 활용해

낮에는 재봉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다고 해요.

카바레에서 코코리코라는 노래를 자주 불러

불려진 이때의 별명, 코코.

나중에 샤넬의 로고인 코코 샤넬이 됩니다.

샤넬의 큰 전환점에는 늘 남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샤넬에 관련된 영화와 책들도

러브스토리에 포커스 된 것이 많습니다 .

#샤넬의 삶과 디자인

그녀는 그 당시 유행했던 불편한 레이스 옷 대신

편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닙니다

또한 그녀는 기존의 

과한 디자인 모자와 다르게

심플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모자를 만들어 썼는데,

이것이 다른 귀족들의 눈에 띄어

이를 계기로 모자 가게를 오픈하게 됩니다.

그 이후 샤넬이 만나던 남자 중 

한 명인 ‘카펠’은 애칭이 ‘보이’였는데

이걸 계기로 샤넬 보이백이 나온 것이 아닐까 

예측을 해봅니다^^

샤넬은 모자를 시작으로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다양한 의상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또한 그녀는 우아한 스타일로 만들되,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가르송 스타일을 만들었고

이는 1900년대 초반에 큰 트렌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업적

브랜드도 성공하고 

인생 최고의 사랑을 찾은 샤넬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19년 카펠이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게 되고 

그녀는 크게 충격을 받으며 일에 올인합니다

그 결과, 마침내 1921년

파리에 샤넬 오트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샤넬은 러시아 파블로브 대공에게

향수 제조가를 소개받았고

여러 가지 샘플들 중 5번째 샘플을 고르게 되는데,

바로 그 향수가 샤넬 NO.5 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잘 때

샤넬 NO.5만 입고 잔다는 말 한마디에 대박이 터졌죠!

보석애호가로 유명한 공작에게 영향을 받아

샤넬은 반짝거리는 의상도 만들게 되었는데,


이중 그 유명한..!

샤넬 트위드 룩도 포함되어 있어요w(゚Д゚)w

#마지막 그녀의 삶

파업,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이유로 

패션계를 떠난 샤넬은

15년 후인 1954년, 당시 71세의 나이로

프랑스 패션계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55년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샤넬 2.55백이 탄생했다는 사실!

88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 의상을 제작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컬렉션을 앞두고 파리의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정말 대단하고 멋진 그녀의 삶, 

계속해서 여운이 남네요(T_T)


지금까지 샤넬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브랜드 스토리를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네요!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샤넬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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