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윤동주 시인 때문에 반독재 투사가 됐던 이 사람

조회수 2019. 10. 19. 22: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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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속 이야기
출처: 연합뉴스
2019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919년, 도시와 농촌 곳곳에서 전개된 3.1운동은 한반도 저  너머 멀리 '북간도'라는 지역에서도 이어졌었는데요.

(바로 요기)

우리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이동휘,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과진 그리고 민족시인 윤동주의 이름쯤은 알아요.


하지만 이들이 머물렀던 북간도라는 지역은 잘 모르죠. 


1899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더이상 견디지 못해서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142명 


이곳에선 이른바 '북간도의 후예들'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는데...


북간도는 특히 한반도와 연해주(러시아)에서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여성 근대교육으로 유명했던 지역입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결혼한 며느리를 학교에 보내는 시아버지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간도 명동의 어른들은 깨어있고 자유로운 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고만녜'라 불리던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이 아이는 북간도에서 여학교를 다니면서 뒤늦게 '김신묵'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후 여성을 위한 야학을 세우고, 여자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독립군을 후원하는 데도 앞장섰어요. 


이 사람이 바로바로바로,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 여사.

여성들이 작성한, 여성들의 독립선언서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조선 시대의 신분의식을 타파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대한독립여자선언서로도 이어졌고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게도, 이러한 어머니의 손에 나고 자란 이들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와 문익환

(어린 시절 고향(북간도) 절친이었던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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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

북간도에서의 이 역사적 흐름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지도를 펼쳐봐도 어딘지 잘 모르는 곳이지만, 분명히 우리가 재조명해야 할 어떤 정신. 


바로 '사람을 만들어내는 건 그 시대가 하는 일'이라는 정신이 있었던, 


북간도의 이야기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지금 전국 극장에서 개봉 중인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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