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는 지금도 악몽을 꾼다
퇴사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곳에 다니는 악몽을 꾼다.
'만능 신입 밈'으로 소소하게 이름을 떨쳤던 그 회사. '신입만 받는다'고 호기롭게 시작하던 그때 그 채용공고가 지금도 생각난다. 각종 프로그램 언어의 능숙한 사용부터 제작 경험까지, 경험치는 '만렙'이지만 직장 생활 경험은 없는, 세상에 둘도 없을 신입을 찾던 그 회사의 패기.
경영진은 언제나 말했다.
"일만 잘하면 출퇴근, 근무 태도 절대 상관 안 하니 마음껏 하시라!"
정말 그랬다. 출퇴근에 상관을 안했다. 그래서 퇴근을 못 했다. 회사에 다니던 1년 동안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던 것 같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업무량이 퇴근을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신입만 뽑아 놓고, 한 사람당 프로젝트 3~4개씩 맡겨 놓으니 일정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은 매번 바뀌니 인수인계도 없었고, 신입만 모아 놨으니 일을 배울 곳도 없었다.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고도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고 쌍욕을 먹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꼴을 보고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나 역시도 신입이었으니 욕하면 욕을 먹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 피하는 수밖에. '내가 일을 못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섰던 순간, 비릿하게 올라왔던 그 냄새는 꿈에도 나왔다. 처음에는 '누가 뭘 먹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됐다. 퇴근을 못 하니,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그래서 항상 사무실에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머물러 있다는 것을. 퇴사를 하고서야 내게도 그 냄새가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밥 하나는 잘 사줬다. 세상 물정 모르던 신입 시절, 밥도 사주고 밤 12시 넘어 새벽에 퇴근하면 택시비도 주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회사의 태도에 '사회생활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집에도 안 보내면서 일은 시켜야겠는데 야근수당이 없으니 먹이는 밥이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참다못해 칼퇴를 하던 날, 뒤통수를 향해 날아온 쌍욕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날, 사표를 냈다. 같은 달 나보다 먼저 사표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분명 정규직이었는데, 퇴사하는 날 보니 인턴으로 직급이 바뀌어 있어서 퇴직금을 급여의 50%도 못 받은 직원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악몽을 꾼 날이면, 지금 이곳은 어떻게 됐나 찾아보곤 한다. 사표를 내고 나올 때는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지금도 신입을 뽑고 있다.
박보희 기자 bh.park@company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