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있어 보이게 출근하고 싶다면

조회수 2021. 5. 14. 23: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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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의 출퇴근길, 함께하면 좋을 책 네 권

여러분은 만고의 출퇴근 시간에 보통 무얼 하시는지? 나는 보통 책을 읽는다. 남들 다 스마트폰 보는 출퇴근 대중교통에서 책을 펴고, 집중해 읽고 있다는 건 괜한 뿌듯함을 준다.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독서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여하튼 이 뿌듯함을 나누고 싶어 부득불 책 소개를 쓰게 됐다. 최근 오피스 소설, 전문직 직업인들의 에세이, 직장인을 위한 노동법을 다룬 책 등 <컴퍼니 타임스>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들이 눈에 띄어,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판국이기도 했다. 신간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한, 근간 네 권을 추렸다. 친구에게 추천하듯 가볍게 썼으니 부담없이 봐 주시기를.

<달까지 가자>ㅣ장류진 지음, 창비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다. 하긴 요즘 상황은 롤러코스터라는 말로 부족하다. 분초를 다투며 오르내리는 가상화폐 얘기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비트코인도 제대로 모르던 나는, 쏟아지는 기사와 몇몇 영상들을 더듬어 보고서야 이더리움은 뭔지, 알트코인은 또 뭔지 대충이나마 알게 됐다. 이 와중에 <달까지 가자>를 만났으니… 비록 소설이나, 내게는 종교 경전과 같이 '실제라고 믿고 싶은' 이야기가 담겼다.


<달까지 가자>는, '하이퍼리얼리즘 오피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단숨에 주목할 작가로 떠오른 장류진 작가의 신간이다. 옆자리 직장 동료가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직장인들의 기쁨과 슬픔'을 디테일하게 담았다. 대박을 꿈꾸는 평범한 직장인 셋의 '코인 투자기'를 실감나게 그려내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순위에 꾸준히 올라 있다.


단지 '코인 얘기'라서 재밌는 건 아니다. 판교의 IT회사에서 7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2030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과 상황을 지나치게(?) 면밀히 묘사하고 있다. 어느 부분은 울렁이는 코인 차트를 들여다 보는 것마냥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90년대생이자 20대인 나는, 아래 내용을 보고 탄성을 내뱉으며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소설에 밑줄은 고등학교 문학 시간 이후 처음 그어 봤다.


"역시 90년대생이 해야겠지? 이런 건?" 그 말에 회의실에 모여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죄다 내게로 향했다. (중략) 하지만 저들은 ―심지어 일부는 나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내게서 '20대 느낌' '요즘 감성' '밀레니얼 취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맡겨놓기라도 한 양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책은 한 차례 코인 열풍이 불었던 2017~2018년을 배경으로 삼는다. 작가는 트레이더마냥 당시 거래소 차트를 띄워 놓고 소설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책 속 배경으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가상화폐를 다룬 기사의 댓글은 여전하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의식과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가상화폐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빨리 못하게 해야 합니다." 자, 이 나라의 젊은이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매수 신호입니다. 가즈아!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ㅣ권남희 지음, 마음산책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쓰고 달콤한 직업> 등 '직업 산문 시리즈'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출판사 '마음산책'이 내놓은 신작.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오가와 이토 등 유명 일본 작가들의 책을 30년 동안 번역해 온 김남희 번역가의 에세이집이다.


머리 아픈 번역 얘기만 잔뜩 담겨 있다면 애초에 추천하지 않았을 것. 한 편 한 편 호흡이 짧아 후루룩 읽기 편하다. 소개한 네 권 중, 출·퇴근할 때 읽기 가장 적합한 구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책 하나 읽어 나가는 데 사람을 한 명 알아가는 것 같다면 과장이려나. 위트 있는 마무리를 읽고 있자면, 그가 옆에서 조잘거리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점 직원에게 자신이 책의 저자라고 기어코 말해버린 경험, 덕질하는 연예인에게 추천사를 부탁한 일 등 번역하고 쓰는 사람으로 겪은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정리해 놨다. '지하철이 4호선 밖에 없을 때' 시작한 번역 일을 '80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다는 번역가가 알려주는, '일상을 더 따스하게 마주하는 법'이 궁금하다면 슬쩍 살펴 보시길.


“책을 읽고, 책을 번역하는 게 직업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연중무휴였다.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도 바로 노트북을 펴고 앉았다. 마감에 쫓겨서도 아니고, 생활비를 벌어야지 하는 압박감에서도 아니었다. 긴 세월 하다 보니 그냥 그게 직업인 동시에 취미 생활로 굳어졌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만큼이나 재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번역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모두를 위한 노동 교과서>ㅣ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획, 김철식 외 8인 지음, 오월의봄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 첫 출근 날. 나는 서류 두 장을 받아들었다. 근로계약서와 노동조합 가입서. 근로계약서야 법적으로 써야 한다니 냉큼 썼지만, 노조 가입서라니… 괜히 부담스러웠다. 망설임도 잠시, 나 빼고 다 노조원이라는 말에 냉큼 가입을 하고 말았다.


내가 우려하던 일은 당연히 발생하지 않았다. 회사의 노동 착취에 성난 노동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친다든가, '기사 못 씁니다'라며 드러눕는다든가… 오히려 노조는 노동자인 내게 좋은 울타리가 됐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노조는 무엇인지, 왜 있어야 하는지, 파업은 왜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월의봄'이 펴낸 <모두를 위한 노동 교과서>는, '일을 해서 먹고 사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을 켜켜이 정리했다. △사회생활은 원래 참으면서 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가 불안한 건 내 능력 때문일까?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비정규직으로 교옹되는 게 당연한가? △노조는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 조직일까? 등 내가 하기는 부끄럽고, 누가 해 줬으면 하는 질문을 '교과서적으로' 모았다.


"교과서로만 공부했다"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가 기만 같았던 적 있지 않나? 교과서에 없는 게 얼마나 많은데… 노동 교육도 그 중 하나다. 교육부는 학교 정규 과정에 노동 교육을 포함하라! 안 할 거면 이 책이라도 보급해 주든가요…


"노동자라는 지위가 부여되는 순간 고용관계에 매인 존재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일터에서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중략) 고용된다는 사실은 인격 자체를 사용자에게 지불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ㅣ심채경 지음, 문학동네

최근 이만큼이나 나를 실망케 한 책 제목은 없었다.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니! 별이 좋아서 철없이 천문학자를 꿈꿨던 꼬맹이 시절이 괜히 부정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실망은 이내 호기심이 됐다. 홀린듯 책을 사 그날 반절을 읽었다. 아껴 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반만 읽고 남겨두려 했는데, 다짐은 무참히 산산조각났다. 다음날 완독(完讀)해버린 탓이다.


국내에 몇 없는 천문학자·행성과학자인 심채경 박사가 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엄밀히 따지면 과학도서는 아니다. 작가의 '일'인 천문학 이야기가 당연하게 주를 이루고 있지만, 비정규직 강의 노동자이자 워킹맘으로 차별을 헤치며 살아온 작가의 일상 이야기도 적지 않게 그렸다. 탄탄한 문장력을 갖춘 전도유망한 과학자라니. 요즘 이런 사람을 '문이과 융합형 인재'라고 하던가. 하긴 천문학(天文學)도 문학(文學)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책에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출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얼핏 낭만적이어 보이는 천문학자에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를 짜며 데이터와 씨름하는 일상이 대부분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불행을 경쟁하고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건 나뿐인가' 싶을 때, 이 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으니.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장명성 기자 luke.jang@compan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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