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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조회수 2019. 6. 21.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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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영화 '워낭소리'

십 년 전, 한국 독립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워낭소리’의 주인공 노부부 이삼순 할머니가 지난 6월 18일 별세하셨다. 향년 81세.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출처: 영화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키우는 늙은 소 누렁이의 오랜 우정을 지켜본 다큐멘터리였다.


원래 이 다큐멘터리는 이미 많은 농가에서 트랙터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여전히 소로 농사를 짓는 시골 농부가 있어 이를 소재로 삼고 제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지상파 방영이 예정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원균 할아버지의 누렁이가 보통의 소와 달랐고,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도 보통의 농부와 소의 관계와 달랐기에 다큐멘터리의 방향은 달라지게 됐다.


보통 누렁소의 수명은 평균 15년~20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누렁이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그 두 배인 40살이나 됐다. 인간이 150살 넘게 산 것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출처: 영화 '워낭소리'

누렁이가 그토록 오래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리가 성치 않은 최 할아버지와 등이 굽은 이 할머니가 농사를 도와주는 고마운 소라며 따뜻하게 보살펴 준 덕분이다. 할아버지는 소밥을 챙기기 위해 절대로 논에 농약을 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40살 먹은 소가 성할 리 없다. 농사를 제대로 돕지 못할 정도고, 너무 늙어 잡아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소를 보살피느라 두 노인이 들이는 품이 만만치 않았다.


자식들은 누렁이가 더 늙어 쓰러지기 전에 팔아버리라고 권유했고, 최 할아버지는 이런 주변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누렁이를 우시장으로 데려간다.

출처: 영화 '워낭소리'

하지만 팔기 싫은 마음에 변덕이 생긴다. 할아버지는 늙고 고생하고 뼈가 앙상해진 누렁이 가격을 500만 원이라고 고집한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타박하는 우시장 상인들에게 할아버지는 절규하듯 외친다. “안 팔아!”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버린 노인과 늙은 소의 우정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다는 소박하지만 깊은 감동이 295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이전 독립영화 최대 흥행작이던 ‘원스’의 22만 5000명 관객을 10배 넘게 갱신하며 화제를 모았다.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들

출처: 영화 '워낭소리'

영화의 감동과 놀라운 흥행 외에도 ‘워낭소리’는 몇 가지 화제를 낳았다.


하나는 영화의 주인공인 최 할아버지와 이 할머니 댁에 무개념 팬들이 수시로 몰려들며 그분들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문제였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두 분과 마을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수익분배로 인한 다툼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이충렬 감독이 떼돈을 벌었을 거라며 접근한 날파리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문제였다. 이 감독은 결국 사기로 많은 돈을 잃게 됐고, 2011년엔 뇌종양 판정까지 받는 등 이후의 삶이 피폐해졌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난 뒤 최 할아버지와 이 감독은 둘 다 ‘워낭소리’를 찍은 것을 매우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해, 훌륭했던 영화의 씁쓸한 뒷이야기로 남았다.


워낭소리 공원

출처: 영화 '워낭소리'

1967년생인 누렁이는 촬영 시작할 때부터 병들어 있었고, 한국 사람 나이로 42살이 된 어느 날 밭일을 하다가 쓰러져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누렁이는 30년 넘게 자신이 일했던 산자락 밭 한가운데 묻혔다.


누렁이가 죽은 뒤 최 할아버지의 건강도 나빠졌다. 4년 뒤인 2012년 겨울, 할아버지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약 1년 가량 투병하다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약 두 달 전,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길에 “내 죽으면 소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자식들은 할아버지의 밭이 굽어 보이는 자리에 할아버지의 묘를 만들고, 누렁이의 무덤도 그 옆으로 옮겼다.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산길 옆에는 워낭소리 공원도 조성됐다. 공원엔 누렁이와 누렁이가 끄는 소달구지를 탄 할아버지를 재현한 동상이 서 있고, 영화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을 새긴 반원형의 벽이 세워져 있다. 


할머니 마저 하늘나라로

출처: 영화 '워낭소리'

할머니는 최원균 할아버지가 2013년 돌아가신 후 6년 만에 할아버지 뒤를 따라가셨다. 


고 이삼순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와 9남매, 그리고 누렁이를 탈 없이 키워낸 분이었다. 영화 에서 할머니는 잊을 만하면 촌철살인의 대사를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관객에게 웃을 여유를 주었다. 영정 사진을 찍을 때는 할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에 대고 “웃어!”라고 소리치고, 낡은 라디오가 고장이라 툭툭 두드리자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이라고 농담했다.

출처: 영화 '워낭소리'

영화 개봉 이후 10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6년.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자식들과 함께 할아버지와 누렁이의 무덤 근처를 지키며 남은 삶을 사시다 떠났다. 그리고 오는 21일,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와 누렁이 옆에 묻힐 에정이다.


두 부부와 누렁이는 세상에 없지만 ‘워낭소리’는 남아 있다. 언젠가 공원도 낡고 잊혀질 지 모른다. 그래도 우린 ‘워낭소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이후 불행한 일을 겪어야 했던 이들도 있지만, ‘워낭소리’의 감동은 똑같이 깊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 감동이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좋은 영화가 남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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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앤건 = 글: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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