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아우디 코리아

“기술을 통한 진보”, 어떻게 아우디의 상징이 되었나

아우디 브랜드 철학 ‘기술을 통한 진보’가 의미하는 것

4,472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출처아우디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본 말. 그렇다, 1971년 1월 처음 나온 아우디의 슬로건이다. 모든 발전의 한 가운데 기술이 있다는 뜻으로 이후 아우디 발전방향을 정의하는 기업철학이 된다.

출처아우디

◆ 순탄치 않았던 전후 재건의 길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연합군은 독일을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었다. 아우디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의 근거지 작센 지방은 소련이 점령한 동독에 편입됐다. 공산 사회주의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었던 아우디는, 서독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1949년 잉골슈타트(Ingolstadt)에 다시 회사를 세운다.  


아우토 우니온이 되살아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요가 많은 모터사이클과 상용차, 그리고 부품 생산 등으로 발판을 다지며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갔지만, 당시 경제상황은 이들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1959년 다임러벤츠(편집자주-현재의 다임러)에 인수됐고, 1964년에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이런저런 붙임을 겪고 있었지만, 당시 인기가 높았던 폭스바겐 비틀을 생산하며 회생에 안간힘을 썼고, 이듬해인 1965년 아우디를 고급차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출처아우디

하지만 1966년~1967년 독일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독일 자동차업계에는 다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폭스바겐은 1969 NSU를 인수하며 아우토 우니온과 합병한다. 그리고 합병과 함께 생긴 회사가 ‘아우디 NSU 아우토 우니온’(Audi NSU Auto Union)이다. 

출처아우디

◆ 현재와 미래를 아우른 슬로건


아우토 우니온과 NSU의 합병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당시 이들은 서로 다른 기술과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는 모델들을 만들고 있었다. NSU 차들이 주로 공랭식엔진을 아우디 모델들은 수랭식엔진을 얹고 있었다. NSU의 최신모델 Ro 80에는 당시로는 보기 드문 로터리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출처아우디

굴림방식 역시 앞엔진 앞바퀴굴림부터, 뒤쪽 엔진의 뒷바퀴굴림까지 다양했다. 스포티한 아우디 100 쿠페 S부터 공기역학이 뛰어난 Ro 80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캐릭터도 달랐다. 기술은 뛰어났고, 개성은 독특했다. 이런 기술과 디자인을 뽐내는 제품, 그리고 회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한 마디에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슬로건을 생각했다.


‘기술을 통한 진보’의 탄생배경이다.  


이 슬로건은 당시 아우디의 현재를 보여주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미래를 비전을 담고 있었다. 아우디의 모든 특징을 ‘기술’로 요약하는 한편, 그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도약하겠다는 의미였다. 슬로건과 함께 아우디 이미지는 확실하고 강력해졌다. 대성공이었다.  

출처아우디

◆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입증하다


이후 아우디는 기술을 통한 진보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의 모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1970년대에 가장 주목 받는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한다. 1972년에 나온 1세대 아우디 80이 시발점이었다. 


아우디 A4의 전신으로 현대적 설계와 함께 신세대 4기통 가솔린엔진을 처음으로 쓴 모델. 뛰어난 성능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좋아 데뷔와 함께 ‘유럽 올해의 차’에 뽑히기도 했다. 100만 대 이상의 판매와 함께 아우디가 석유파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되기도 했다. 

페르디난트 피에히

출처아우디

그리고 1974년 아우디 기술개발 책임자로 임명된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아우디 혁신을 이끈다. 그가 책임자로 있던 기간에 나온 여러 기술이 아우디가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 1976년에는 4기통과 6기통 엔진의 장점만을 뽑아 만든 직렬 5기통 엔진을, 2세대 아우디 100을 통해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엔진은 발전을 거듭해 1980년대까지 아우디 엔진기술의 상징이 되었다. 

터보엔진 역시 아우디 진보를 대표하는 기술 중 하나다. 처음에 136마력이었던 직렬 5기통 엔진의 최고출력은, 1979년 전자제어 연료분사시스템에 이어 터보차저까지 더해지면서 170마력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1980년에 선보인 콰트로에서는 터보차저와 인터쿨러 조합으로 200마력의 최고출력을 얻었다. 이후 이 엔진을 단 그룹B 경주차는 무려 450마력까지 낼 수 있었고, 덕분에 여러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출처아우디

◆ 기술을 통한 진보는 계속된다


이후로도 아우디는 자동차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1982년 발표한 3세대 아우디 100은 공기저항계수가 당시 전세계 세단 가운데 가장 낮은 0.30을 기록했다. 1986년 가을 출시한 3세대 아우디 80은 완전 아연도금 차체를 써서, 동급 최초로 10년 관통부식 보증을 시작했다. 아울러 에어백이 대중화되기 전, 독창적인 탑승자 보호기술인 프로콘텐(Procon-ten)을 도입해 탑승자 안전성을 높인 것으로도 주목 받았다. 

아우디에게 기술을 통한 진보는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았다. 아우디 구성원 모두에게 현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다짐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었다. 그 슬로건을 정확히 구현했기에 아우디는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기술을 통한 진보는 계속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작성자 정보

아우디 코리아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