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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코리아

네 개의 원이 하나로, 아우토 우니온 탄생 비화

아우디, 네 개의 원 엠블럼은 그렇게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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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다녀오신 어머니. 아들이 자동차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얼굴 보자마자 말씀하신다.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나네, 그거 있잖아, 올림픽마크 차. 중국에 갔더니 그 차 엄청 많던데.” 침묵의 5초. ‘빨리 생각해내야 한다. 올림픽마크를 단 자동차가 뭐지?’ 그렇다, 아우디였다. 네 개의 원이 맞물려 있는 엠블럼. 맞다, 어머니 눈에는 올림픽마크, 그러니까 오륜기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이제는 누구나 네 개의 원이 그려낸 엠블럼이 아우디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자동차에 관심이 좀더 있는 사람이라면, 아우디 엠블럼 각각의 원이 아우디 모태가 된 네 개의 브랜드를 상징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네 개의 브랜드는 아우디, 호르히(Horch), DKW(데카베. 독일어 읽는 방식에 따른 발음법-편집자주), 반더러(Wanderer)다.

네 개 브랜드가 하나로 통합된 때는 1932년 6월. 하나가 된 회사이름은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이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동차연합’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 차례 회사구조와 이름이 바뀌었고, 마지막에 ‘아우디’라는 이름이 된다. 하지만 엠블럼만큼은 80년 넘게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이 엠블럼이 아우토 유니온 탄생 이전까지 올라가는 아우디 뿌리를 품고 있다. 

아우디의 '아버지', 아우구스트 호르히

아우디 엠블럼을 만드는 네 개의 원 가운데 두 개는 한 사람이 만들었다. 자동차역사 초기, 유명한 엔지니어였던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가 그 주인공. 당시 호르히는 현대적 자동차를 만든 사람 중 하나로 꼽히는 칼 벤츠와 함께 일을 했었고, 1899년 독립해 독일 쾰른에 회사를 차린다. 처음에는 정비공장이었지만 자동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실력 덕에 자동차까지 만드는 자동차공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차를 만들었으니 브랜드 이름이 필요했고, 그의 이름을 따 ‘호르히’(Horch)로 정했다. 좋은 성능과 품질로 인기가 높아지자 주문이 밀려들었다.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자 1904년 투자자들과 합자회사를 세운다. 독일 작센 지방의 츠비카우(Zwickau)에 새 공장을 짓고 자리를 잡는다. 

호르히라는 인물의 특징 중 하나는 자동차기술에 대한 엄청난 고집과 집념이었다. 투자자 및 경영진은 잘 팔리고 수익이 좋은 모델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호르히의 생각은 달랐다. 뛰어난 성능과 완벽한 품질의 자동차만을 고집했던 것. 호르히는 투자자 및 경영진의 의견이 불편하기만 했다. 결코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1909년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그러나 새 회사에서는 호르히라는 브랜드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옛 회사에서 호르히라는 이름을 상표로 쓰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었기 때문. 

해법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호르히가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지인 아들이 라틴어를 배우고 있었던 것. 라틴어를 웅얼거리던 지인 아들은 ‘호르히’를 라틴어로 바꾸면 ‘아우디’가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우디 어감이 마음에 들었던 호르히는 회사의 이름을 아우디로 바꾸고 상표로 등록한다. 자동차역사에 마침내 ‘아우디’가 등장하게 된 순간이다. 그리고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숫자 1을 내세운 옛 아우디의 엠블럼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우디의 '어머니', J.S.라스무센

호르히와 더불어 아우토 우니온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또 다른 한 명은 ‘J. S. 라스무센’(Rasmussen)이다. 덴마크 출신으로 다양한 기계류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후 1916년 독일 작센의 초파우(Zschopau)에 공장을 세우고 증기기관자동차를 만들면서 자동차 분야에 발을 들였다. 그의 회사가 내세운 브랜드가 독일어 증기기관자동차(Dampf-Kraft-Wagen)의 머릿글자를 가져온 DKW(데카베)였다. 

내연기관의 가능성에 눈을 뜬 그는, 1919년부터 소형 2행정 가솔린엔진을 생산한다. 이를 바탕으로 모터사이클을 만들었고, 1928년부터는 소형차까지 생산한다. 입소문과 함께 인기를 얻자 라스무센은 투자자인 작센 주립은행과 1928년에 아우디를 인수, 자동차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폭락을 시발점으로 대공황이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혼란이 가시지 않았던 독일은 그 여파로 1930년대 초반 최악의 경제난을 겪었다. 독일 자동차업계는 혼란에 빠졌고, 은행가와 정치가 사업가 등 독일 지도층들에게는 기업 생존이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라스무센은 작센 주립은행과 함께 작센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던 자동차업체 경영자들을 적극 설득한다. 때마침 같은 작센 지방의 켐니츠(Chemnitz)에 있던 반더러도 경영난으로 모터사이클 부문을 매각했고, 자동차 부문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오랜 협상 끝에 이들 네 회사가 합쳐져 ‘아우토 우니온’이 탄생했다. 당시 독일 제2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춘 업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우토 우니온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각 브랜드 모두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고, 각각의 시장영역도 그대로 유지했다. DKW는 모터사이클과 소형차, 반더러는 중형차, 아우디는 중형 고급차, 호르히는 대형 최고급차 분야에 강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기술적 장점을 공유,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차를 내놓았다. 이와 같은 브랜드의 독립성과 협력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 네 개의 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엠블럼이었다.

아우토 우니온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은 독일정부의 지원을 받아 모터스포츠에 참가하면서부터다. 1934년부터 1939년 사이에 아우토 우니온이 만든 타입 A, B, C, D 경주차는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설계로 주목을 끌었다. 이전까지 경주차는 대부분 엔진을 운전석 앞에 놓았는데, 이들은 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얹으면서 뒷바퀴를 굴렸다. 더욱이 12기통 및 16기통 엔진으로 폭발적 성능까지 뿜어냈다. 

이들 경주차는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유럽 각지에서 열린 경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압도적인 성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아우토 우니온을 포함한 독일 브랜드 경주차에 ‘은빛 화살’ 즉 ‘실버 애로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후 모터스포츠에서 은색은 독일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고, 지금도 국제 규모의 자동차경주에 출전하는 독일 경주차를 종종 실버 애로우라고 부른다.

이처럼 아우디 모태가 된 아우토 우니온의 탄생은 회사 혹은 브랜드 간 결합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독일 한 지역에 있던 네 개의 작은 회사가 합쳐져 다양한 크기의 차를 만드는 거대 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엄청난 시너지를 통해 기술과 성능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터스포츠에서 빛을 쏟아냈다. ‘따로 또 같이’를 상징하는 네 개의 원으로 구성된 엠블럼은 아우디 발전의 원동력을 상징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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