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카레이서 강병휘의 R8 시승기, 아우디의 마지막 V10 엔진

조회수 2021. 3. 26. 16: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여러 자동차를 접하다보면 각기 다른 성격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차는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무언가 튀지 않고 두루두루 괜찮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어떤 차는 중심이 되는 특정 요소를 확실하게 돋보이면서 차량의 컨셉트를 잘 정의하기도 합니다. R8은 후자에 가까운 모델이죠. 5.2리터의 거대한 배기량과 무려 10개의 실린더로 구성한 자연흡기 엔진이 바로 그 중심 요소입니다. 수퍼카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대담한 디자인도 튀는 요소지만 R8의 엔진에 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이해하면 단연 이 엔진이 주인공임을 공감하시게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이 엔진은 실제 차체의 중심에 있기도 하죠. 운전석과 뒷바퀴 사이에 엔진이 놓이는 독특한 미드십 구조를 고수해 왔습니다. R8 시승을 통해 발견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파워트레인의 배치 방식입니다. 차체 길이를 따라 놓이는 종치식 엔진은 전폭의 정중앙에 놓여있지 않습니다. 시승차의 엔진 커버를 열면 후면의 아우디 로고 중심점과 엔진의 중심점이 살짝 어긋나 있는 게 보이거든요. 이유는 아우디가 애용하는 콰트로 시스템에 있습니다. R8은 기술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미드십 엔진 방식을 택하면서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타이어 견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륜 구동 시스템도 탑재했습니다. 전륜 축으로 동력을 보내주기 위한 샤프트가 엔진 중심에서 약간 조수석으로 틀어진 곳에서 시작하는데 이 샤프트가 차체 중앙의 센터 터널을 원활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엔진을 20mm 가량 좌측으로 옮겼습니다. 콰트로 시스템을 위해 엔진까지 비키라고 한 아우디의 집념이 대단합니다. V10 엔진에는 연료 인젝터가 무려 20개가 달려 있습니다. 직접/간접 분사 방식을 병행하여 엔진 회전수에 따라 인젝터별 역할 분담을 변경합니다. 흥미롭게도 타사 듀얼 포트 엔진과 달리 초고회전대 작동 영역에서도 직분사와 간접 분사를 병행하며 출력을 끌어올립니다. 계기판에는 RPM이 10까지 시원하게 표시됩니다. 묘하게 고회전 10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엔진 회전수는 8700rpm 까지 오릅니다. 10개나 되는 피스톤들이 동시에 매초 145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습니다. 이 엔진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참가하는 경주차에도 그대로 쓰입니다. 경기 규정에 맞추기 위해 양산 출력보다 마력을 줄여서 출전하지만 2012년 이후로 무려 다섯 번이나 뉘르부르크링 24시 종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거대한 엔진은 RPM에 따라 다양한 악보를 연주합니다. 매 1000 RPM마다 다른 곡이 나오죠. 전 3~4천 RPM 구간의 악장과 7~8천 RPM 사이의 사운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자는 기대감을 일게 만드는 서곡 같은 느낌이고, 후자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협주곡에 가깝습니다. 패들 시프터를 당겨 RPM이 변할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악장이 다시 재생되길 반복합니다. 같은 엔진을 공유하는 람보르기니 우라칸보다 등으로 와 닿는 볼륨이 조금씩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6500 RPM을 기점으로 토크 곡선이 한 계단 수직 상승하는 점도 짜릿합니다. 최신 터보 엔진들은 저회전 영역에서 평탄한 최대 토크를 보이다가 5000 RPM 이후 힘이 줄어드는데 R8은 6500부터 8500 RPM까지가 평탄하게 최대 토크로 밀어주는 느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터보 엔진들은 자연흡기 엔진처럼 자연스러워지려 노력하고, R8의 자연흡기 엔진은 빅사이즈 터보차저처럼 고회전 구간에 무시무시한 가속력을 몰아칩니다. 공포와 환희가 어우러진 감성만이 이 엔진의 장점은 아닙니다. 

경쟁 구도에 있는 911 터보S나 AMG GT를 살펴보면 터보차저의 도움으로 최대 토크가 70~80 kg·m에 달합니다. R8의 최대 토크 57.1 kg·m은 소박한 듯 보이죠. 하지만 여기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실제 R8을 가속시켜보면 계기판 바늘을 눈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엄청난 G포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치와 체감 느낌의 불일치가 생겨나죠. 이유는 뭘까요? R8은 포르쉐나 AMG에 비해 엔진이 30% 이상 빨리 회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단수에 최고 회전수에서 더 큰 기어비를 적용해도 터보 엔진과 동일한 휠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경쟁군보다 30% 더 큰 기어비는 곧 30% 증대된 휠 토크를 의미하게 되죠. 즉, 초고회전이란 능력 덕분에 실제 75 kg·m 내외의 가속력으로 보상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R8의 7단 기어는 경쟁 모델처럼 항속 연비 목적이 아닙니다. 7단 8300 RPM에서 330km/h를 돌파해버리는 공격적 성격이죠.

부드럽게 주행할 때 엔진을 반씩 잠재우는 가변 실린더 기능도 갖췄습니다. 10기통에서 직렬 5기통 2.6리터 엔진으로 변해 배출 가스와 연비를 개선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두 자리 수 연비가 나오진 않습니다. 연비 개선보다 제어 기술을 뽐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5기통으로 전환되는 순간은 감지하기 어렵습니다만, 5기통에서 10기통으로 넘어갈 때는 작은 울컥거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번 같은 쪽 실린더를 쉬게 하면 편마모가 일어날 수 있으니, 5기통으로 전환될 때마다 좌우 뱅크를 번갈아가며 잠재웁니다. 구현 가능한 첨단 기술은 다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댐퍼 속 자성 물질의 극성을 이용해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오가는 서스펜션은 컴포트 모드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승차감을 보여줍니다. 세라믹 브레이크는 타이어의 접지 한계를 수시로 고문할 정도로 강력했죠. 타이어는 한 단계 윗급으로 가야 딱 맞는 조합이 완성될 수 있어 보입니다. 수납공간도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이제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하지만, 해당 기능사용 중에는 일부 계기판 기능이 제한된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 차가 반가웠습니다. 아우디의 영광과 집념이 묻어난 마지막 V10 미드십 엔진을 간직한 주인공이니까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