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서 강병휘 선수가 타본 람보르기니 우라칸 EVO RWD 시승기

조회수 2020. 7. 17.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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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 담백해진 우라칸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많은 스포츠카 회사들이 배기량을 줄이는 대신 터보차저로 출력을 만회하는 엔진을 내놓고 있습니다. 포르쉐나 페라리, 맥라렌도 그런 트렌드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아직까지 초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최소 10기통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엔진으로 말이죠. 초고회전으로 RPM을 돌리는 게 가능해지면 그만큼 더 큰 감속비의 변속기를 통해 토크를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 타이어에 걸리는 변환 토크는 터보차저와의 격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죠. 아울러 터보차저의 간섭 없이 강력하게 빠져 나오는 배기 열에너지 역시 또렷한 배기음으로 전환되는 감성적 장점도 존재합니다. 

운전자의 머리 바로 뒤에 자리 잡은 우라칸 V10 엔진은 풍부한 토크와 사운드, 회전 질감까지 아름다운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입니다. 10개의 관악기가 오른발의 지휘에 맞춰 넓은 음역대를 연주하는 기분이죠. 차세대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치솟는 출력 경쟁 때문에 요즘 600마력 이상의 스포츠카는 사륜 구동이 상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가속시 타이어에 걸리는 부담을 반으로 낮출 수도 있고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유저에게 안정감 높은 주행성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우라칸 역시 기본 구동계는 사륜 구동으로 출시됩니다. 꽤 똑똑한 전후 구동력 배분 장비를 갖추었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특성은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파워가 보이지 않는 굴레에 갇혀 맴도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우라칸에 에보 RWD(Rear Wheel Drive) 모델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사륜구동계를 삭제한 미드십 엔진, 후륜 구동 모델입니다. 출력마저 5% 가량 낮춘 610마력으로 조정했습니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을까요? 오히려 '재미'를 위한 전략이었다는 생각입니다. 통제가 어려운 힘을 찔끔 꺼내 쓰는 쪽보다 주어진 힘을 다 쥐어 짜내는 운전 쪽이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다면 800마력, 1000마력이 다 무슨 필요일까요? 우라칸 RWD를 고속도로에 올려 속도를 올린 후 머지않아 놀라운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속 안정성과 고속주행 안정성에서 사륜 구동 형제와의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우려와 달리 예상외의 접지력에 대한 신뢰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고속 주행에서는 사륜 구동보다 공력 설계가 훨씬 기여가 큰 영역이기도 하니까요. 기존 우라칸에 비해 좋아진 승차감도 에보 RWD의 부수적 장점입니다.

사륜 구동 형제에 비해 RWD 모델은 더 부드러운 하체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공차 중량이 더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계 코너링 상황에서 후륜의 접지력이 선을 넘을 때 운전자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배려 같습니다. 단단한 하체가 곧 스포티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단단한 하체는 초기 반응성이 예리한 느낌을 주지만,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운전자에게 빠르고 예리한 대처를 요구합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운전에는 보다 빠른 스핀으로 응답합니다. 우라칸 에보 RWD 모델이 다루기 까다로운 야생마가 되느냐, 조련이 잘 된 종마가 되느냐가 이런 하체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덤으로 더 안락한 승차감까지 얻게 된 것이죠. 노면이 거친 국도를 달리거나, 방지턱이 있는 골목을 달려도 생각보다 고급스럽게 노면 충격을 처리합니다. 쿠션이 거의 없는 버킷 시트만 아니었다면 신형 아반떼보다 더 승차감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람보르기니에서 승차감까지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구매시 고려 요소는 아니더라도 매각시 주된 원인이 되긴 하니까요.


굽이지는 코너를 공략하기 전, 610마력을 두 바퀴로만 견뎌야 하는 RWD의 구조 자체가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몇 개의 코너를 지나자 마치 오랜 시간 함께 한 경주차처럼 차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차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손과 발의 미세한 근력을 통해 차의 궤적을 센티미터 단위로 수정하기도 쉬웠습니다. 선형적인 반응의 자연흡기 엔진과 부드럽지만 끈끈하게 도로를 물고 그립과 드리프트 영역을 부담 없이 넘나드는 접지 특성이 위력을 발휘합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순수해서 계속해서 코너링을 무한 반복하고 싶었습니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애매하게 위쪽이 잘려나간 그래픽의 원형 RPM 미터가 볼 때마다 거슬리고, 쓰기가 여간 불편한 방향 지시등 버튼이 그렇습니다. 직관적이지 않은 창문 개폐 스위치는 만질 때마다 유리창 방향이 거꾸로 움직입니다. 배기 플랩이나 서스펜션의 감쇠력을 개별 조정하지 못하고 드라이브 모드 프리셋 값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점도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시트 역시 시각적 만족은 출중하나 기능적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사이드 볼스터를 조절할 수 있게 해주면 다양한 체형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륜구동을 후륜구동으로 변화시킨 그 근본적 특성의 장점은 우라칸 에보 RWD의 순위를 머릿속 저 위쪽으로 끌어 올립니다. 고속에서 700마력을 넘는 차처럼 안정적 가속감이 넘치고, 코너에서 300마력처럼 다루기가 쉬웠거든요. 이 모델은 우라칸 에보 중 가장 가볍고 가장 가벼운 가격표를 달고 있기도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최고의 가성비(이 단어 자체가 람보르기니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람보르기니가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해서 빠른 차를 만들어 보려는 작금의 시대에서 무엇인가 덜어내서 재미있는 차를 만든 람보르기니, 덕분에 이 브랜드에 대한 고정 관념마저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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