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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사무소 과장 된 교수님, 이제야 활짝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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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00만원 벌기 어렵던 시간강사

교수 포기하고 폴리텍대 직업 교육

자격증 4개 취득, 아파트 관리소 과장 취업


대학 시간강사 처우는 열악하다. 전임 교수 자리 보고 버티는데, 꿈을 이루는 경우는 극소수다. 한 달 100만원 시간강사 생활을 접고, 기술을 배워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기과장으로 재취업한 이근식(50)씨를 만났다. 


◇두 아들 학비 대기도 빠듯했던 시간 강사


이근식 씨는 ‘공동체 윤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의 한 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쳤다. 시간 강사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웠다. “대학 한 곳에서 강의를 얻으면 한 달 40만원을 벌어요. 그렇게 3개 학교 정도 강의를 나가면 한 달 120만원을 벌죠. 그 수입마저 방학 땐 끊깁니다.”

이근식 씨

출처본인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사교육은 언감생심, 정규 학비 대기도 어려웠다. 선택이 필요했다. “전임 교수가 되는 꿈만 좇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40대 중반 지나니 후배들도 계속 치고 올라오고요. 더 이상 강사로 남아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커피를 생각했다. 바리스타 공부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하지만 포화된 커피 시장에서 소자본으로 승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노인요양센터에서 잠시 일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곧 기술을 배워볼까. 생각이 들더군요.”


우연히 한국폴리텍대학교 강릉캠퍼스에서 진행하는 ‘베이비부버 공조냉동(건물 온도·습도 등 조절) 과정’ 모집 글을 봤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강릉 폴리텍대에서 마련한 직업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공조냉동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저 기술 가르쳐준다는 홍보 문구만 보고 지원했습니다.”


◇직업훈련생 된 ‘교수님’


무엇보다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교육훈련비가 무료였어요. 학교 있는 동안 식사가 제공되고, 월 25만원 정도 훈련 수당과 교통비까지 주더군요. ‘뭐 이런 게 다 있나’ 생각이 들더군요.

이근식 씨

출처본인


딱 하나 걸림돌은 자존심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교수님’이라 불리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업훈련과정을 다닌다는 게 처음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네가 정말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두 아들의 존재가 마음을 다잡게 했다. “학교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워서 스스로 돈 벌어 학비를 댔어요. 그 고생을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주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었습니다. 애들 공부만큼은 내가 시켜야 겠다. 결심했습니다. 하나 다른 꿈도 만들었어요. 기술 배워 좋은 직장을 얻으면, 축구 좋아하는 두 아들 데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메시 선수가 뛰는 경기를 함께 보는 것이었죠.” 이후에도 주변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축구 보는 꿈만 떠올렸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 들어간 폴리텍대엔 수업마다 아들뻘 학생이 많았다. 교수들도 대학 강사 출신의 이씨를 어려워했다. “처음엔 분위기를 흐릴까 봐 굳이 과거를 밝히지 않았어요. 그래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려졌죠. 어색해하는 사람에겐 제가 먼저 편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엔 어린 학생에게서 ‘형님’ 소리 들으며 잘 지냈습니다.”


기술 수업은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평생 문과생으로 살았는데, 기술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이과 쪽에 적성이 있었던건가. 생각이 들더군요.” 공조냉동기능사와 전기기능사를 땄다. “언제든 쓸 수 있는 학교 실습실 덕을 많이 봤습니다.”

전기 콘센트를 정비하는 이근식씨

출처본인


◇평창올림픽 덕에 첫 취업


훈련과정 졸업 후 이곳 저곳 원서를 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 ‘경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나이에선 경력 없이 취업이 힘들더라고요. 이력서를 40통 넘게 썼는데 모조리 떨어졌습니다. 이력서에 학력을 그대로 쓰니 부담스러워 하는 데가 있어서 학력을 낮춰서 내기도 했어요. 그래도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기회는 의외의 곳에서 왔다. 2018 평창올림픽을 맞아 경기장 시설 등을 관리할 기술자 채용 공고가 대거 난 것이다. 이번에는 합격해서, 올림픽 기간 IBC(국제방송센터) 건물의 공조 담당자로 일했다.


“IBC 건물의 공기와 습도를 조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올림픽 경기 중계진이 일하는 공간이었는데요. 제가 중계진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그들 요청대로 온도·습도를 조절해줘서, 올림픽조직위에서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기술자가 영어도 할 줄 안다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이곳 저곳에서 저를 찾았죠.”

공조 시설을 정비하는 이근식씨

출처본인


◇산업기사 자격증 추가 취득, 이직 성공


올림픽이 끝나고 올림픽 경력을 활용해 강릉 지역 호텔과 청소년 수련 시설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기술 공부를 놓지 않았다. 전기산업기사와 소방설비산업기사 자격증을 추가 취득했다. 몸값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산업기사 공부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만큼이나 치열했다. “외워야 할 게 많은데, 나이가 있으니 예전만큼 잘 외워지지 않더라고요. 외워야 할 부분을 녹음해서 이어폰으로 반복해서 들었어요. 기사 자격증 공부하는 2년 간은 TV보거나 음악 듣지 않고 오로지 녹음만 들었습니다.”


경력에 산업기사 자격증까지 생기자 취업이 수월해졌다. 한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전기과장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300만원대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다. “처음 기술 배우겠다고 결심할 때만 해도 주변 시선을 의식했던 제가 이제는 옛 동료들에게 기술 배우라고 권해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고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확실한 기술을 배워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는 게 낫습니다. 처음엔 아내도 저처럼 긴가민가했는데요. 이제 누구보다 좋아합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소방기술사나 전기기술사 자격증을 추가로 딸 계획입니다. 여건이 되면 소방관리업체나 안전관리업체를 차리고 싶어요.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기술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사업이거든요. 5년 정도 경력 더 쌓아서 도전할 계획입니다. 아, 두 아들과 축구 보러 아직 못갔는데요. 언젠가 꼭 다녀오겠습니다.”


/김승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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