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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방황하던 170㎝ 농구선수, 대기업 직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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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4 때부터 농구선수, 실업팀서 은퇴

방황하다 폴리텍대학 진학

자격증 7개 취득, 대기업 취업 성공

업종별 연봉 조사를 하면 도시가스 업체들이 늘 최상위권에 오른다. 누구나 선망하지만 뽑는 인원이 적어, 문을 뚫는 게 쉽지 않다. ‘예스코’(LS그룹 소속 옛 극동도시가스)에 기술자로 입사한 농구 선수 출신이 있다. 농구 선수에서 기술자로 변신한 이찬양(25)씨를 만나 취업 비결을 들었다.

◇프로 향한 꿈 좌절과 방황

어려서 달리기가 빠르고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코치 눈에 들어 농구를 시작했다. 제법 잠재력과 가능성을 평가받았다. 농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현재 이찬양씨(왼쪽)와 고교 농구선수 시절 이찬양씨 /본인 제공

문제는 키였다. 키가 작은 선수가 하는 포인트가드를 맡았는데, 가드들 중에서도 키가 작았다. “초등학교 때는 또래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어요. 나이 먹을수록 격차가 벌어지더니, 결국 170㎝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았습니다.”

작은 키를 극복하려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훈련에 투자했다. 밤 11~12시까지 홀로 훈련을 했다. 그러나 키 때문에 늘 2% 부족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하지만 달리 뭘 할 수 있는 상황은 안됐다. “농구 하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았거든요. 수업에 들어가도 엎드려 자느라, 제대로 들은 수업이 없었습니다.”

농구로 대학에 진학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농구부 있는 대학이 실력에 따라 1부와 2부로 나뉘어요. 1부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하고,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2부 대학에 갔어요.” 전남 무안에 있는 초당대였다. “그곳에서도 프로 진출에 성공한 선배가 있긴 했어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 마음을 다 잡았죠. 하지만 농구부 분위기가 기대 만큼 치열하지 않았어요. 계속 다녀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출처군대 시절 이찬양 씨 /본인 제공

첫 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육군 공병부대에 배치받아 처음으로 농구선수가 아닌 일반인들과 어울렸다. “곧 농구를 잊었어요. 전역하고 나면 다른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영어를 잘하는 동료한테는 영어를 배웠고, 컴퓨터를 잘하는 동료한테는 워드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 전역하면서 다시 농구공에 손길이 갔다. “프로에서 잘 안되다가 실업팀에 가서 잘 풀린 선배가 있어요. 실업팀에서 맹활약하면서 TV 뉴스까지 나왔죠. 그 선배 보니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바로 그 선배한테 연락했습니다. ‘형 보니까 다시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요.”

선배가 있는 실업팀 ‘놀레벤트 이글스’를 찾아가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다. “감독님 모셔놓고 테스트를 받았는데, 사실 테스트라고 하기도 어려웠어요. 실업팀은 선수 수급이 워낙 어려워서 웬만큼만 실력이 있으면 다 받아줬으니까요. 그래도 일단은 됐다는 사실이 기뻤고, 다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제 사연도 TV에 소개됐죠.”

출처TV뉴스에 출연한 이찬양 씨 /본인 제공

하지만 이번에도 농구코트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군대 있을 동안 몸이 굳은 것이다. “실업팀은 따로 적응할 여유가 없었어요. 바로 실전에 투입됐죠. 당장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만 있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입단 6개월 만에 팀을 나왔다. 농구와 영원히 이별한 것이다.

-은퇴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쨌든 최선을 다해 봤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된 거니, 어쩔 수 없는 거죠.”

◇‘취업 잘된다’ 부모님 권유에 폴리텍대 진학

후회는 없지만, 뭘 할지 막막했다. “부모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이 적성에 맞을 것 같지 않았어요. 뭔가 답답해 보였으니까요. 술집이나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고, 막노동도 하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처폴리텍대 재학시절 공부하는 모습 /본인 제공

방황한지 1년 정도 되던 날 부모님이 폴리텍대학을 권했다. “가서 기술 배우면 취업이 잘된다면서 어떠냐고 하셨어요. 평생 운동만 했던 내가 기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지만 뭐라도 도전해보자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수시 모집에서 불합격하고, 정시 모집에서 간신히 ‘산업설비 자동화 학과’에 추가로 합격했다.

-입학하니 어떻던가요.

“이미 여러 기술 자격증을 가진 공고 출신 친구가 많았습니다. 저는 운전면허증밖에 없었죠. 다른 친구들 보니 대충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지금부터라도 더 하자는 생각이었죠.”

운동만 하던 몸이라 책상만 앉으면 졸음이 쏟아졌다. “공부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 조차 잡기 어려웠습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는 말만 믿고 졸린 눈 비벼가며 어떻게든 오래 버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계속 자리에 붙어서 공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출처이찬양 씨 /본인 제공

처음 설비보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에너지관리기능사, 지게차기능사, 가스산업기사, 산업안전산업기사, 용접산업기사, 위험물산업기사 등을 잇따라 취득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도 취득했다. 자격증이 쌓일수록 자신감도 늘었다. “학교가 자격증 따기 참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돈 안들이고 마음껏 실습장 쓸 수 있었거든요.”

◇7번째 원서 만에 대기업 합격

열심히 딴 자격증이 바탕이 돼 작년 7월 예스코에 합격했다. 7번째 원서 만이었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수백개 원서를 내야 하는 것과 비교된다.

입사 후 각 가정에 공급되는 가스의 압력을 조절하는 ‘정압기’ 시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주변 반응이 어땠나요.

“모두가 놀라워 했습니다. 운동하다가 관두고 이렇게 좋은 직장에 가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예스코에서도 제가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고 하더라고요.”

출처이찬양 씨 /본인 제공

농구는 지금이 더 좋다. “정말 맘 편하게 농구 합니다. 농구 동아리를 하고요. 프로 경기도 즐기면서 봅니다. 저도 이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 프로에서 뛰는 친구들 부럽지 않습니다.”

다음 목표는 결혼이다. “3년 사귄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계획입니다. 제가 돈 없을 때 책 사주고, 어떻게 공부 해야 하는지도 알려준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야간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해야 겠다는 꿈도 있습니다. 폴리텍대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처음 알았는데, 시간이 짧아 아쉬웠거든요. 틈나는대로 자격증도 계속 취득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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