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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정신과에 가야 하는가

정말 가야할 사람은 “가해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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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이 3주에 10만원이야"

오랜만에 A를 신촌서 만났다. 조곤조곤 말하던 말투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약은 3주 이상은 그 이상은 처방도 안 해. :

"왜긴, 한꺼번에 다 먹고 죽는 사람들이 있어서.”


A는 중학교 2학년부터 시에서 주관하는 정신 센터에 다녔다. 친구들의 따돌림이 이유였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나 싶어 찾아갔다. 이름은 가명을 썼다. 자세한 신원을 알리지 않아도 상담이 가능했다.


간헐적으로 가던 정신과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부터라고 했다. 3주에 한 번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병명은 경계성 인격 장애와 약간의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 약이 없으면 불안한 감정이 계속 들었다.


A가 먹는 점심 약은 각성제고 저녁약은 수면제다. 약 그 자체로 인한 고통도 크지만 약을 끊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집에 있는 물건들이 커져서 자신을 삼킬 것이라는 공포에 늘 떨었다.

'나를 주체적으로 포기하는 것’

A는 자신이 앓고 있는 경계성 인격 장애라는 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회전초밥집을 가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 어떤 초밥이 맛이 있고 없는지를 다 알고 있지만, 먹고 나서 맛이 없다면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남의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다 보니 남이 먹는 초밥만 먹게 되는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받기 싫어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놓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수가 틀리는 행동을 하면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A는 그러다 보면 심장 언저리가 언제나 시리다고 말했다.

A는 가정 폭력 피해자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어린 A는 옆방에서 어머니가 맞는 소리를 들었다. 술을 마신 아버지는 A 옆으로 접시를 던지고 “씨발놈들아” 혹은 “개새끼들아”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숨었어. 아빠는 화장실 문고리를 미친 듯이 돌리기 시작했어."

"이미 내 방문 고리는 고장 났어. 온몸으로 문고리를 붙잡고 버텼어."

"아빠가 제 풀에 지쳐 잠들었을 때쯤 몰래 집을 나와서 엄마랑 차 안에 들어갔어."


스무 살까지는 어떤 집이던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랑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벗어나려고 해도 원인은 그대로인걸

만나기 시작한 친구들은 아버지와는 달랐다. A와 함께 전시를 본 다음에는 맛있는 식사를 하기도 했다.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즐거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계는 언젠가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지 않던가. 하지만 A는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사귐의 끝에 남은 상처들이 더해져 A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너무도 버거웠다.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많은 관계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마셨고, 술이 깬 다음날에는 사과하지 않았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술이 취하지 않은 날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변함없었다. 언젠가 한번, 진로에 대한 고민을 아버지께 털어놨을 때도 아버지는 A가 하는 것은 하찮게 여겼다.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의 직무에 관련된 공부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A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서 무기력했다고 고백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도, 여전히 원인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아빠를 사랑해."

A는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성공해야만 했다. 집안을 일으켜야 했다. 그런 성격이 성취욕을 강한 사람으로, 목표에 대해 몰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배출구가 없던 아버지는 그렇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이 됐을 수도 있겠다고. A는 이해하려고 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밉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멀리 떨어지고 난 후에도 그의 모습이 자신에게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혐오스럽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빠가 없으면 속상하고 슬플 거야."


A가 씁쓸하게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정에서의 전체 부부간의 가해 비율은 남성 11.6%, 여성 9.1%로 나타났다. 자녀학대율은 27.6%였다. 3년 전인 2013년에 비하면 크게 줄은 수치다.


그러나 여전히 10가구 중 3가구에 가까운 비율로 자녀들은 학대를 당하고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은 가정폭력의 울타리. 피해 자녀가 가정 폭력의 결과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정신과를 다녀야 하고 약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는 결과는 그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만약 가해 부모가 이를 인지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정신과에 보내는 대신 먼저 치료를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피해자가 이렇게나 길고 지루한 치료와 깊고 아픈 상처를 들고 있을 필요가 있었을까.


A와 상담을 하던 의사는 독립하라고 말했다. 무조건 집에서 나오라고. 본가에서 이십 수년간을 살아오던 A는 그렇게 최근에 집을 나왔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하고 하지 않던 알바를 시작했다. 어머니도 그런 A를 도와줬다.


여전히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뛴다고 말한다. 일이 많아지니 몸은 지치고 일상은 바빠졌다. 그럼에도 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A는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의 자취 이야기를 시작하며 A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 미소에 나 역시 덩달아 웃었다. A와 나는 조금 남은 잔을 다 비우고 일어섰다.


나는 진정, 진정으로 A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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