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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부부관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지선우, 페르소나가 내가 되어버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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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누구나 한 번쯤 흔들린다고 하는 때, 유난히 크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는 그렇게 ‘크게 흔들리는’ 전형적인 예이다. 사춘기 때 부모님을 잃고 나서도 무너지지 않고 악착같이 의사가 되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좋은 배우자 고마운 줄 모르는 배은망덕하고 찌질한 남편 때문일까?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사람은 또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마음 때문이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살면 이렇게 크게 흔들린다. 흔들리면 참으라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흔들리는 마음을 꼭 들여다봐야 한다.   

능력 있는 의사, 아름다운 아내, 지혜로운 엄마, 이런 모습은 인정받고 성공하려고 만든 가면 같은 거다. 이 가면을 나라고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일부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가면이 내가 될 수 없다. 페르소나를 나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마흔 즈음에 크게 흔들린다.

출처칼 구스타브 카를 융 (Carl Gustav Jung)

왜 이런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일까?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심리 용어로 완성한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마음을 여러 층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삶은 달걀 껍데기 안에 흰자가 있고, 또 그 안에 노른자가 있듯이 마음을 여러 개 층으로 나누었다. 바깥층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안으로 갈수록 그 속이 어떤지 모른다. 융은 가장 바깥층에 있는 마음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나다. 어울려 살려고, 기대에 맞추려고 만들어졌다. 어울려서 잘 살려는 것은 좋지만, 남이 보는 모습과 진짜 내 모습 사이에 차이가 크면 문제가 생긴다. 남에게 맞추느라 진짜 나 (융은 이것을 자기, self라고 불렀다)를 돌보지 않으면, 진짜 나는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면 삶이 흔들린다. 우울증이 찾아오거나 집 안에 누군가가 말썽을 부린다. 융은 마흔 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함께 있다. 내가 선한 모습으로 산다고 내 속에 악한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면서 신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 지선우가 치르고 있는 희생이 바로 그런 것이다. 차라리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고, 나도 찌질하고 모자랄 수 있음을 인정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안에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시끄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빛으로 가득 찰수록 그만큼 짙어진 그림자가 자기 가까운 사람들에게 드리워지기도 한다. 가족들이 말썽을 부리고 기가 막히고 억울한 일들이 생긴다.

마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보통은 말썽을 부리고 있는 가족을 원망하고 손가락질하게 된다. 하지만 이래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흔들리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진짜 자기가 보인다. 선하고 지혜롭고 완벽한 모습 뒤에 숨겨진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못난 내가 있다. 그렇게 되기 싫어서 버티다 지쳐 혼자 울고 있는 나도 있다.

출처아니마와 아니무스(anima & aimus)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전, 그림자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나를 만나려면 페르소나 안쪽에 있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이름의 반대 성의 특성을 가진 무의식을 만나야 한다. 여자라면, 남성성을 가진 무의식, 아니무스를 만나야 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해 온 지선우의 아니무스는 잔인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니무스는 용맹하고 듬직할 수도 있지만, 외면당한 아니무스는 반갑지 않은 모습으로 현실에 나타난다. 원망과 복수심에 사로잡힌 지선우가 이 모든 일이 남편 때문이라고 믿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내가 의롭다고 믿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지고 어두워진다. 내 마음 안에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알 때, 나의 의로움이 온전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그림자는 힘을 잃는다. 페르소나 뒤에 숨어있는 진짜 나도 만날 수 있다.

나이 마흔 즈음, 나의 마음에도 반갑지 않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우울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쯤이야 하고 모른 척했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편으로 멘탈갑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에 버티다 보면 지나가겠거니 했다. 멘탈갑, 이 얼마나 모순되는 말인가. 강하다는 말이지만 또 얼마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는 말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를 봐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자 삶은 더 크게 흔들렸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다 서둘러 손을 쓰려고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병원에서 주는 약도, 저명한 상담사와의 심리치료도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흔들리는 마음처럼 흔들거리며 길을 걷다 우연히 보게 된 간판,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쓰인 ‘주짓수’. 이 세 글자에 홀린 듯 체육관을 찾게 되었다. 체육관으로 올라가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속세에서 상처받고 출가하는 협객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미쳐가는구나 싶기도 했다. 무술은 호전적이거나 철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두근거림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설레고 기대도 된다. 아직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리저리 따져보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뛰어들지 않던 내가, 운동신경이 둔하기로는 전국구 탑이 될 만한 내가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무술학원으로 발걸음을 한 것이다.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예전의 나라면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난 내가 이끈 발걸음을 믿어보기로 했다.  

 

체육관 문 앞에서 세차게 뛰는 심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 믿음이 지각변동 후, 마음속 잔해에 묻혀버린 나의 남성성, 아니무스를 찾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는 “설마….”라고 했지만, 체육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힘이 실렸다.



안블루

 

심리상담전문가.

직장인 정신건강 전문가로 스트레스가 많은

특수직 종사자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우울증, 번아웃으로 고생하는 자신과 같은 이들을 위해

심리상담의 이론과 실제사례,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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