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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파트너가 옴벌레였던 배우

조회수 2020. 10. 16. 12: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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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의 옴잡이를 아시나요?
출처: 넷플릭스

묘하다. 편안하고 따뜻한데 화면을 뚫고 날 보는 눈빛이 구슬프다. 그래서 궁금하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백혜민을 연기한 송희준이 그랬다.


출처: 넷플릭스

알려진 것보다 알아가야 할 것이 더 많은 풋풋한 신인 배우, 송희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해 말할 때면 그 잔잔하던 말투에 한층 흥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만큼 행복했고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나눈 백혜민, 그리고 사람 송희준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를 옮겨본다. 그의 은은한 매력이 활자에 담기길 바라며. 

# 혜민의 순간들

어디에서 뿅 하고 나타났나 했더니 단편영화 한 편과 독립 장편영화 한 편을 찍은 풋풋한 신인이었다.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출처: 에이스팩토리

처음으로 ‘영화’를 찍은 건 단편 ‘히스테리아’. ‘보건교사 안은영’과 인연도 이 영화에서 시작됐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본 이경미 감독이 ‘보건교사 안은영’ 오디션에 송희준도 포함시켜 달라고 했기 때문. 


혜민 역에 점찍어 두고 오디션을 본 건 아니었지만, 운명이었던 듯하다. 오디션을 위해 친구 동생에게 빌린 교복에 적혀있던 이름이 알고보니 ‘혜민’이었단다. 

오디션을 3차까지 봤어요. 저를 혜민으로 정해두고 보신 건 아니었어요.

인상 깊었던 게, 마지막 오디션을 볼 때 제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실 때가 있었어요. ‘희준씨, 평생 그리워하던,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운 무언가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서 눈을 감았다 떠줄 수 있겠어요?’라고 하셨어요.”
출처: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을 본 사람이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경미 감독은 바로 이 장면의 혜민을 보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송희준에게도 이 신은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는 이것이 연기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특별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출처: 에이스팩토리
촬영하는 날에도 상상하고 고민을 했어요. 감독님이 무전기로 ‘혜민아. 수없이 상상하고 바랐지만 절대 안될 것 같았던 순간을 처음으로 맞이한거야. 네 눈앞에 아름답고 눈부신, 너무 별거 아닌 동네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걸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가 떠줄수 있어?’라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스며들었어요. 행복하지만 너무 두려우면서도 서럽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오더라고요.

촬영이 끝났는데도 너무 눈물이 났어요. 진정이 되고 나서 ‘아까 느낀 마음이 뭘까. 무엇이 나를 동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죠. 그 순간이 제게 특별하고 값진 경험이었어요. 그 기억이 연기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출처: 넷플릭스

혜민에게 또 의미가 있었던 순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던 날이다. 수없이 많은 삶을 반복했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본 적이 없었던 혜민의 흥이 폭발한 순간. 실제로 이 신 촬영 전 배우들과 함께 연습도 해봤단다. 

친구들과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어요. 혜민이라면 보통 학생들처럼 탬버린을 흔들고 마이크를 능숙하게 잡지는 못할 것 같았어요. 조감독님이 소품으로 쓸만한 것을 생각해줄 수 있냐고 하셔서 혜민이는 백제시대때부터 살았으니 살풀이를 해보지 않았을까 했어요(웃음). 사실 상모돌리기를 했는데 담이 심하게 와서 휴지로 살풀이를 하는 걸로 했어요.”
출처: 넷플릭스

항상 외로웠던 혜민의 'NPC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 바로 이 목련고 사람들. 만약 송희준이 혜민이었다면 운명처럼 다가온 목련고 사람들 중 누구와 가장 가까워지고 싶었을까? 

혜민이라면 누군가와 가장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혜민이는 누군가와 친해지려 하기 보다는, 주변의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해주려고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오히려 은영 선생님이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혜민이와 은영선생님 사이엔 뭔가 말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달까요. 서로 마음에 의지도 될 것 같구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들 이잖아요."

# 옴을 먹는 소녀

출처: 넷플릭스

혜민에게 친구들 만큼이나 가까운(?) 존재가 있으니, 옴 벌레 젤리다. 엄청난 양의 옴 젤리를 먹어치우지만, 정작 촬영에서는 상상에 의존했었던 송희준에게 물었다. 


옴 젤리와의 호흡은? 

CG감독님이 늘 제가 연기할 때마다 옆에 계셨어요. ‘옴은 이 정도 사이즈고, 이런 질감을 가지고 있어’ 설명해주셨죠.

병 안에 있을 때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손으로 잡았을 때는 어떤 느낌인지, 입에 가져가고 씹는 건 어떤 느낌인지, 식감은 어떤지… 식감은 청포도와 미더덕이 합쳐진 식감일거라고 하셨어요(웃음).

회차가 갈수록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상상을 하는 게 익숙해질 쯤이면 끝나더라고요.”
출처: 넷플릭스

옴벌레를 먹기 위해 해야할 혜민만의 준비과정이 있다. 바로 위장에 음식을 채우는 것. 산더미처럼 쌓인 급식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간식을 양 손 가득 가지고 다닌다. 


송희준에게 목련고의 자랑을 물었더니 바로 ‘급식이 맛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와, 정말 백혜민답다.

저희 학교 급식 정말 맛있어요(웃음). 급식이 정말 맛있고,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다 이상하고, 좋고요.

감독님이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혜민아, 나는 네가 양볼 터지도록 가득 음식을 넣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엽고 잘 어울릴 것 같아. 네가 힘들겠지만 잘 해주었으면 좋겠어’라고요.

그 말 듣고 나서부터는 정말 맛있게, 사랑스럽게, 그렇지만 ‘내 운명이다’하는 설움도 담아서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 송살구, 익어가는 중

출처: 넷플릭스

혜민과 송희준이 100%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송희준 안에는 혜민과 같은 부분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것이 배우의 일이다. 


그럼에도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다. 친구들을 지키고 싶어서 수술을 거부했지만,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수술을 하고 싶기도 했던 혜민처럼 송희준의 삶에도 ‘내 사람들’은 큰 의미다. 

사람 송희준에게도 제 친구나 가족이 정말 크고 소중한 존재예요. 이 글을 읽으면 ‘나구나’하고 알만큼 친한 친구들이죠.

유독 마음이 가는 친구가 있어요. 저도 그 친구도 환경에 관심이 많고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아서 텃밭에서 같이 상추도 키우고, 루꼴라도 키워서 밥을 해먹기도 해요. 그 친구는 소프넛(세탁세제를 대체하는 열매) 브랜드를 하고 있어요. 저도 소프넛을 사용하고 있고요. 가치관도 잘 맞고, 의지가 돼요.”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삶을 가꿔간다는 점이 참 좋아보였다. 송희준의 SNS에도 그런 부분이 드러난다. 그가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어떤 문화를 향유하는지 담겨있다. 


송희준을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의 SNS를 보고 분위기가 남다르다, 패션 센스가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사복센스가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사실 유행을 알고 따라가는 편은 아니예요. 물건을 하나 골라도 취향에 맞게 고르고, 음악, 그림, 책, 음식 다 저에게 잘 맞는 걸 찾고 가꾸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제 취향에 맞는 것들인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자신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물었다. 송희준은 ‘살구’라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다.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살구라니, 이보다 더 완벽하게 송희준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살구 같은 사람 송희준은 배우로 익어가는 중이다. 살구처럼 은은한 색과 향이 있는 배우, 송희준의 또 다른 얼굴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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