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빠진 브라질 민주주의
브라질. 나무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나라. 정확히는 이름만 남고 멸종한 나무의 이름을 가진 나라.
브라질은 군벌에 의해 공화국이 선포됐다. 그리고 기나긴 독재의 시기를 지나 21년 만에 민주 정부를 세웠다.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에서 시작됐다. 그 선봉에는 금속노동자이자 노조지도자였던 33세의 룰라가 있었다.
민주화의 상징이었지만 감옥에 투옥되는 결말을 맞이한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말이다.
룰라의 취임부터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많은 이들이 브라질은 어렵게 되찾은 민주주의에 위기를 맞이했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부터 탄핵까지'의 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이것은 아슬아슬한 브라질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록이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룰라는 대선에서 여러차례 고배를 마신 후 2002년 선거에서 61%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룰라가 취임하며 시민들은 브라질의 고질적인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룰라는 8년의 임기를 끝으로 퇴임했다. 퇴임 당시에도 그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룰라에 이어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 못지 않은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2013년 대대적인 시위가 시작되며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우마 호세프는 반부패 법안들을 발표했고, 그 중에는 대형 수사를 가능하게 한 자백 감형 제도 개선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혼란의 와중에 연방법원 판사 세르지우 모루는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세차작전'이라 불리는 이 수사를 통해 건설회사와 주요 정당 의원들의 결탁이 드러났다.
정치인들이 줄줄이 체포됐고, 설상가상으로 경제위기까지 덮치며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자릿수까지 하락했다. 언론은 연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뉴스를 쏟아냈다.
세차작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부터 모루는 룰라를 구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룰라가 심문을 거부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 시기에 지지율 하락 등으로 고전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를 장관으로 임명했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나눈 통화 내용이 공개되며 파장은 더욱 커졌다.
대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도움이 될 만한 문건을 보내드릴게요. 필요할 때만 쓰세요. 임명장 사본이에요." (지우마 호세프)
나라가 완전히 분열된 상황에서 하원은 지우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탄핵 사유로 지적한 것은 사실 부정부패가 아닌 정부 회계법 위반 혐의였다. 회계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탄핵 절차를 밟을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에 대해 비판했다.
그럼에도 9개월 후 지우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가결됐다. 물론 그 순간까지 지우마 호세프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우마 대통령이 탄핵된 후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게 됐지만, 머지 않아 비리로 퇴임하게 됐다.
다시 시작된 대선에서 보수파의 후보로 나온 사람은 현 브라질 대통령인 자이르 메시아스 보르소나루. 육군 대위 출신으로, 과거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인물이다.
이에 맞서 룰라가 다시 한 번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 후, 검찰은 룰라를 세차 작전으로 밝혀진 부패의 주동자로 지목하며 기소했다.
"저는 이 재판이 불법이고 기소 자체가 웃음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률과 헌법을 존중해서 이 자리에 나오긴 했으나 '세차작전' 검사들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있습니다."
"저는 거짓에 근거한 파워포인트 한 장 때문에 재판 받고 있어요. 이런 심리에서는 검찰청이 좀 제대로 올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요. '룰라는 자기 소유가 아니라고 하지만 돈을 지불했다는 법적 서류가 있으니까 사실이야!'
제가 원하는 건 빈정거림은 그만두고 내가 저지른 범죄가 뭔지 알려달라는 겁니다!"
두 달 후, 잘 알려진 대로 법원은 룰라에게 9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2심에서 그의 형량은 12년 1개월로 늘어났다.
결국 브라질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룰라는 무너졌다. 물론 혐의가 사실이라면 벌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만, 수많은 정황들이 이것이 표적수사라는 의심을 접을 수 없게 만들었다.
"룰라에 대한 기소 건은 영국이나 유럽에서라면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브라질의 사법 시스템이 특이한 건 검사가 판결까지 한다는 거죠. 모루 판사 같은 수사 판사는 용의자를 지목해 도청을 지시할 수도 있고 가택 수사를 할 수도 있어요. 그 다음 용의자를 기소해서 공판 판사에게 넘기죠. 피고인이 가장 중요한 권리는 공정한 판사에게 재판 받는 겁니다." (제프리 로버슨, 룰라의 변호사)
한 대통령의 탄핵과 또 다른 전임 대통령의 구속 과정에 대한 언론이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에 담겨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브라질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전임 대통령이 무너지는 과정이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치관에 따라 수많은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