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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조회수 2018. 5. 23. 10: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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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다.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가 발전하고 변화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뇌물을 받은 파렴치한’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당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였다.

출처: 오마이뉴스
▲2008년 서울시청과 광화문 광장에 모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들어선 이명박 정권 집권 1년차였던 2008년,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전국을 강타했고, 이명박 정권은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이 25%까지 떨어지는 가장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때 청와대에서는 촛불의 배후가 노무현 대통령 쪽이고, 이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가 돌았습니다.


실제로 이명박은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에서 “일각에서는 17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대선 불복 세력이 집회를 주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라며 “대선 불복 세력이 건강을 염려하는 순수한 국민들의 뜻에 편승해 대통령과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 세력들이 집회에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노무현 죽이기였습니다.



노무현 죽이기: 대통령 기록물 유출 사건

▲촛불집회가 열리던 2008년 6월 12일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 정권 말기 조직적으로 내부 자료를 불법으로 유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미이관 자료나 폐기된 자료는 없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2008년 6월, 갑자기 조선일보는 ‘노 정권 청와대 직원들, 내부자료 불법 유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냅니다. 조선일보는 ‘정권 말기, 조직적으로 200만 건 이상 컴퓨터 복사’라며 의도적으로 ‘정권 말기’, ‘조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7월 11일 동아일보도 “노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자료 중 상당 부분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고, 봉하마을로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청와대 측 주장”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주장만 보도합니다.


그러나 10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국가기록원에 반납하지 않고 추가로 유출한 자료나 복제돼 나간 자료는 없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폐기한 것도 아니고 모두 국가에 이관했고, 열람을 위한 정당한 행사였습니다.


결국, 촛불집회 기간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 유출 사건은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나온 정치 공작과 언론의 합작품이었습니다.



노무현 죽이기: 바다이야기


출처: 연합뉴스 화면 캡쳐
▲이명박정권 국정원은 조직적으로 대북공작비를 사용해 노무현 대통령의 풍문을 조사했다. 그러나 대부분 사실무근이었다.

아직도 사행성 도박게임이었던 ‘바다이야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루됐고 금품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여전히 ‘바다이야기를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정말일까요?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은 ‘바다이야기’ 사건에 연루됐던 A씨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에 금품을 제공했다는 풍문을 듣고 8천만 원의 대북 공작비를 사용해 그를 국내로 압송합니다. 그러나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습니다.


2018년 5월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선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승연 전 대북공작국장의 재판에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종명 전 차장은 검찰이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흠집을 찾아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것인가”라고 묻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경찰 인터폴 협조를 구할 수 있었는데도 굳이 원장이 그렇게 지시한 처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목에 칼날을 겨누다: 검찰 소환 조사

출처: 조선일보 pdf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다음날인 2009년 5월1일 조선일보 1면, 의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묘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2009년 5월 1일 조선일보 1면 제목은 “아니다… 모른다… 생각 안난다”였습니다. 동아일보도 ‘아니다, 모른다… 박연차와 대질도 거부’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묘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당시 검찰 소환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무리한 조사인지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박연차 회장 말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대통령과 박 회장의 말이 서로 다른데, 박 회장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통화기록이 없다는 것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의 운명 중에서)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고도 23일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1억원 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왜곡보도가 난무했습니다.


이 당시 조선,중앙,동아일보만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보 언론들도 노무현 대통령의 살점을 후벼 파는 칼럼과 사설을 대거 쏟아냈습니다. 언론의 왜곡보도가 계속되면서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셈이었습니다.

출처: 노무현재단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주제는 ‘평화가 온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정의한다면 이명박의 정적 죽이기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명박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 공작으로 제거하려고 했을 때 언론이 제대로 보도했다면 죽음까지 내몰렸을까요?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제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알고 있었다면, 언론의 왜곡 보도를 그대로 믿지 않고 진실을 찾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곁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합니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언론이 먼저 선진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 노무현 대통령)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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