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검찰 내 성추행', 들끓는 분노가 새삼스러운 이유

조회수 2018. 2. 13. 12: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한샘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 서지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이후 언론은 앞다투어 과거의 #MeToo 운동을 재조명했다. 2016년 #00계_내_성폭력 운동의 주인공들이 근 며칠 새 다시 얼굴을 비췄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이후 #MeToo 운동이 뒤늦게 관심의 대상이 되자 그들은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미국의) 미투 운동 전, 한국에도 이미 용기 있는 고백이 있었다" 20여 년 동안 여성운동을 지속해온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지난 1월 31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정 의원은 용기 있는 고발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고,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때부터 축적돼”왔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은 그만큼 일상적인 일이고, 그에 맞서 싸워온 여성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얘기다.


“검사님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지만 “한 편으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사회적 공감을 얻는 서 검사님이 부럽기도” 하다는 ㄱ 씨도 있다. ‘김기덕 사건’을 폭로하며 #영화계_내_성폭력 운동에 불을 지핀 ㄱ 씨는 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 검사의 사례완 달리,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꽃뱀 논란 때문에 나온 말이다.

ㄱ 씨의 폭로는 김기덕 감독이 촬영 중 예고 없던 성적 연출을 요구하고 배우를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YTN

두 이야기는 성폭력 이슈에 접근하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검사라는 직업의 영향력과 JTBC 뉴스라는 스피커가 있기 전에 우리는 정작 우리 주변의 목소리들을 외면해 오지 않았나 서 검사의 폭로 이후 각계각층에서 쏟아낸 격앙된 반응들은 그래서 위화감을 준다. 거칠게 말해서 그 분노는 새삼스럽다.

#2 한샘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지난해 10월의 ‘한샘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서 세 명의 가해자에게 세 차례 연쇄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회사는 사건을 덮으려 했고 경찰의 조사는 미흡했다. 피해자는 사연을 갈무리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여기까지 정황은 검찰 내 성추행과 유사하다. 그런데 폭로의 과정과 이후의 분위기가 지금과 조금 달랐다.


한샘의 피해자는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대중의 손가락질과 사회적 고립을 염려했을 테다. 염려는 현실이었다. 일각에서 피해자를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한샘녀’ ‘한샘 여직원 얼굴’ 등 신상털기 류의 검색어가 포털의 연관이슈로 떠올랐다. 일부 언론은 피-가해자 간 카카오톡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빌미로 ‘피해자가 꽃뱀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연이어 보도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피해자를 둘러싼 꽃뱀 논란에 대해 사람들이 “가해자는 아주 독특한 괴물”로, “피해자는 아주 순수한 피해자”로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공론화 이전 사내에서 “한 여자에게만 같은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소문에 시달린 피해자였지만, 공론화 이후 피해자를 압박한 시선도 그와 같았다. 작년 11월 깨 언론에선 피해자의 퇴사 소식이 들렸다. 아무도 책임지진 않았다.


지금 우리는 특별한 사건에 특별하게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이만큼 특별하지 못했던 과거 사건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의 이슈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다면 이 사건은 해결될 수 있을까. 성폭력은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고, 일상에서 계속해서 일어날 텐데 말이다.

#3 이정미

8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로 게재했다. 글의 제목은 “정의당의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그 자신이 반성문이라 칭한 이 글에서 그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각 정당이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후로는 지금까지 파악한 정의당 내 성폭력 사건들을 공개하는 한편 사회의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향해 “기다리게 해서, 먼저 용기 내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검찰을 비판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성찰했다. ⓒ뉴스1

이정미 대표는 더 먼저, 더 많이 외쳐온 누군가를 향해 사죄했다. 듣지 못해온 지난날의 책임을 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사죄가 우리에게도 지난 일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목소리를 내오던 이들이 우리 주변 사방에 있었고, 목소리를 들어오지 않은 건 우리 자신이었다. 검찰 내 성폭력이라는 빅 이벤트를 넘어 일상의 성폭력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는 그 과거를 직면해야 한다.


이 대표의 반성문에 보태 스스로의 반성 없는 정의감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정작 우리 주변의 목소리들을 외면해 오지 않았나. 그것이 문제라고 누군가 계속해서 외쳐왔음에도 그러지 않았나.

가상뉴스로 미리 보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나리오.jpg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