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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라는 백인 아재 디너쇼

조회수 2018. 2. 2.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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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음악 차별 논란 다시 한번 불거졌다.

브루노 마스의 수상 논란

힙합은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같은 스타일은 하물며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제가 올해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수상 결과를 보고 화가 났다는 건 그래미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올해 그래미는 가장 주목받는 3개의 상(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을 한 뮤지션에게 몰아줬습니다.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결과는 논쟁을 불렀습니다. 보탤 말도 뺄 말도 없이 그래미는 음악 시상식입니다. 한국의 방송사 가요대상과 달리 오직 음악성만을 본다는 신화 같은 얘기도 있습니다. 브루노 마스의 이번 앨범은 상업적으론 대성공을 거뒀습니다만 음악적으로 압도적인 성취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평단의 반응이 물론 음악성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요.

반면, 같은 부문에 후보로 오른 앨범과 노래 중에는 평단은 물론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찬사를 받은 작품들이 많았죠. 로드(Lorde)의 ‘Melodrama’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DAMN.’ 같은 작품들이 있었죠.

비욘세의 ‘Lemonade’

이 수상 결과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된 건 켄드릭 라마 때문일 겁니다. 그래미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흑인 차별, 흑인음악 차별이 또다시 불거진 것이죠.


이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특히 심각했습니다.

2016년 켄드릭 라마의 역대급 명반 ‘To Pimp A Butterfly’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1989’에 밀려 물을 먹었습니다.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이 별로라는 건 아닙니다. 훌륭한 팝 음악이었습니다. 다만 이게 그해 최고의 앨범인가 심지어 켄드릭 라마를 제칠 정도인가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2017년에는 또 한 장의 명반이 출시됩니다. 비욘세(Beyonce)의 ‘Lemonade’. 흑인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렬한 메시지와 음악 속에 녹여냈고 평단의 압도적인 박수갈채를 받았죠. 거의 모든 사람이 그해 최고의 대중음악 앨범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래미는 아델에게 상을 줬습니다. 그것도 잔뜩 표를 몰아줬죠.

아델의 앨범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비욘세의 것만큼 압도적이진 않았습니다.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러 나온 아델도 “내게 있어 최고의 앨범은 비욘세의 레모네이드”라며 레모네이드의 음악적 성취, 사회적 메시지를 상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아델의 성숙한 태도는 팬들을 감동시켰지만, 그래미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비판을 받았죠.

그래미는 정말 진보적인가?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왜 그래미가 이렇게 비난받는지 납득이 됩니다. 한 번은 참습니다. 두 번은 화를 내죠. 세 번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브루노 마스도 소수 인종입니다. 그래미는 “이걸 보라, 우리는 소수 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자화자찬할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사회적 문제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회적 메시지를 뚜렷하게 담은 흑인 음악들이 하나같이 물을 먹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그간 그래미 주요 부문에서 수상한 소수 인종 음악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르는 여전히 팝 등 ‘말랑말랑한’ 쪽에 치중돼 있었죠.

너무 비판적으로만 보는 건 잔혹한 처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미는 문화예술시상식답게 사회적 진보와 다양성을 포용합니다. 그들은 이미 수년 전에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and Ryan Lewis)에게 신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Same Love’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누구나 똑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죠. 이 노래를 배경으로 그래미는 이성/동성 커플을 모아 합동결혼식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마저도 말랑말랑한, 어쨌든 지금의 질서를 깨지 않는 선상에서의 포용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백인 남성 위주의 취향이 중심을 지키는 가운데 여성도, 동성애자도, 소수 인종도 그 옆에 있을 수는 있다는 정도. 소수자의 목소리는 다수가 허락한 가운데에서만 있을 수 있죠. 성 정체성, 인종적 정체성, 음악적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면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거고요. 비욘세가 ‘Single Lady’를 부르는 건 괜찮지만 ‘Formation’은 안 되는 이유. ‘Same Love’는 신인상을 받지만 ‘To Pimp A Butterfly’와 ‘XXX’는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물을 먹는 이유.


물론 그래미의 뒤에 흑인음악을 물 먹이려는 어둠의 결사대(?) 같은 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미는 대중 음악계의 기획자, PD, DJ 등 현업 종사자들이 모인 전미 레코드 예술과학 아카데미(NARAS)에서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므로 사실 과정 자체는 매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가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음악계 전반의, 나아가 사회 전반의 차별 의식이 그대로 수상 결과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장 공정한 민주주의적 투표로 박근혜나 트럼프가 뽑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미가 변화하려면 결국 우리가 모두 변하는 수밖에 없다는, 참 재미없고도 뻔한 결론이 나오죠. 물론 그래미같이 권위 있는 시상식엔 변화를 이끌 의무도 있는 법이고 우리는 그래미를 계속 비판해야 하겠지만요.

+ 여담

한편 이날 대상 3관왕의 영예를 안은 브루노 마스는 “오늘 밤엔 발라드가 너무 많네요”란 수상 소감으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날은 발라드 음악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Million Reasons’를 불렀고 핑크(Pink)는 ‘Wild Hearts Can’t Be Broken’을, 케샤(Kesha)는 ‘Praying’을 불렀죠. 이 음악인들과 이 음악은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그리고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날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고를 추모하는 공연도 있었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노래가 신난다는 점을 어필하려고 “오늘 밤엔 발라드가 너무 많네요”라는 말은 부적절하긴 했습니다.


한편, 이날 그래미에선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부적절한 언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화제가 된 책 <파이어 앤 퓨리(Fire and Fury)>를 여러 스타가 낭독한 건데요. 이들이 이 책의 오디오북 오디션을 본다는 설정으로 만든 영상이었죠. 당연히 트럼프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이었고요.


이 오디션(?)의 마지막에는 아마 이들 스타 이상으로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얼굴을 가리고 등장한 이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성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장내엔 여느 때 못지않은 환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정체는 아래 영상으로 직접 확인하세요.

* 외부 필진 '임예인'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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