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예능 <착하게살자>가 모순인 이유

조회수 2018. 1. 25. 2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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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들을 다루면서 일반인들이 평소에 인지하지 못 했던 상식을 제공하고, 처벌받는 과정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죄를 짓지 말자'는 공익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jtbc

교도소 예능이 나왔다. 예능의 오지랖에 새삼 놀라고 그 친화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교도소라니. 물론 영화에서는 이미 수없이 다뤄졌고 드라마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방영돼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에도 끊임없이 미화 논란이 제기됐다만)와 달리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예능에서 교도소를 다룬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논란은 불가피했고 그로부터 발화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군대마저 정복한 예능이니까. 일종의 성역처럼 취급되는 군대에 발을 내디뎠는데, 교도소라는 금도를 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 어떤 소재도 용맹함(혹은 무모함)을 뽐내며 소화해온 예능의 도전 정신을 생각한다면 JTBC <착하게 살자>의 탄생은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착하게 살자>가 군대 예능 <진짜 사나이>를 연출했던 김민종 PD와 <무한도전> 출신의 제영재 PD의 합작품이라 건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jtbc

2018년의 포문을 연 문제적 예능, JTBC <착하게 살자>는 '본격 사법 리얼리티'를 표방한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다시 말해서 출연자(김보성, 박건형, 김종민, 돈스파이크, 유병재, 위너 김진우, JBJ 권현빈)들이 (가상의) 죄를 짓고 사법적 처벌을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이들은 죄를 짓고, 용의자가 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수용자로서 구치소에 수감된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피고인의 자격으로 재판도 받는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상으로 예능의 일부다.


일련의 과정이 단순한 체험으로 회화화되지 않도록 제작진은 리얼리티를 강조하려 애썼다. 범죄 행위 전문가들과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 출연자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박건형은 뺑소니 사고를 낸 절친 임형준에게 차를 빌려줘 범인도피죄에 연루됐고, 유병재는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쥐불놀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하다 산불을 낸 혐의로 실화죄를 뒤집어썼다. 김보성의 경우에는 그의 취약점인 의리를 이용해 절도죄를 저지르게 했다. (물론 좀 억지스럽긴 하다)


또한 법무부의 협조를 받아 실제 경찰서, 법원, 구치소, 교도소에서 촬영함으로써 현실감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현직에 있는 경찰관, 교도관 및 법조인이 참여했다.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분명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jtbc

누구나 연루될 수 있는 범죄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거나(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지만), 구속된 후 교도소에서 겪게 되는 과정들은 기존의 매체들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라 궁금증을 충족시켜줬다. 사법 시스템을 제법 충실히 담아냈다. 그러나 제작발표회에서 유병재가 쏟아낸 촌철살인은 <착하게 살자>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왜 이렇게 교도소에 직접 가면서까지 촬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YG에서 연예인들을 감옥을 보내는 건데 왜 나랑 진우가 가야 하는 거지. 나 말고도 감옥 갈만한 사람들이 더 있는데 왜 제가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장 크게 들었다."


모순의 시발점은 역시 <착하게 살자>의 제작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다. YG 소속 일부 연예인들은 지금까지 마약 등 수많은 사건사고를 저질렀고, 그때마다 YG는 늦장 대응으로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그런 YG가 느닷없이 ‘착하게 살자'라고 외치는 건 마치 MB의 가훈이 '정직하자'라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착하게 살자>의 가장 큰 맹점은 “왜 이렇게 교도소에 직접 가면서까지 촬영을 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죄를 짓지 않은 연예인들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실험 카메라나, 자신의 죄를 납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교도소에 수감되는 연예인들은 프로그램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했다. 상황극에 불과한 이 프로그램이 '죄를 짓지 말자'는 공익적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억울함을 연출하고 있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효과를 가져오진 않을까?

ⓒjtbc

김민종 PD는 "첫 방송이 가장 설명할 것도 많고,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해서 재미적인 요소가 가장 덜한 회차"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어떤 소재든 예능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려면 재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희화화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제작진은 출연진의 깨달음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과 죄수복을 입고 있는 처지, 그 상황극과 역할극을 통해 출연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라도 할 모양인가 보다.


가상의 사건으로 회개는 무슨 회개냐 싶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는 평범했던 학생들이 수감자와 교도관 역할에 얼마나 충실히 빠져드는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이른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영화 <엑스페리먼트>로도 제작됐다)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 적응, 몰입하기 마련이다. 애초부터 <착하게 살자> 제작진은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실험이라 밝혔다. 만약 제대로 된 실험이라면, 출연자들은 죄수가 된 자신의 처지를 내면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이다. 출연자들은 짓지도 않은 죄로 겪지 않아도 될 교소도 생활을 경험하는 거니까 말이다.


이 경우 출연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는 필수적인 조치가 돼야 한다. 만약 그럴 필요까진 없다면 어떨까? 그럼 이 예능이 그저 가벼운 체험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니 시청자에 대한 우롱일 뿐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착하게 살자> 제작진은 3.487%의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 이 뜨거운 관심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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