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병원 신생아 사망사고는 왜 일어났을까?

조회수 2018. 1. 19. 20: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목동 이대병원 의료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연합뉴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만 정리하면 이렇다. 100mL짜리 지질영양제를 개봉해서 미숙아 여러 명에게 20mL씩 투여하는 과정 어디에선가 오염(contamination)이 발생했다. 이 오염된 영양제를 맞은 신생아들이 사망했다.


애초 제조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한 것인지, 혹은 이를 20mL씩 소분(subdivision)하는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한 것인지, 혹은 이를 주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의료기기가 멸균되지 않았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제조 공정에서의 오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으므로, 소분이나 주사 등 의료인의 행위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될 따름이다. 그래서 관련된 의료진들을 일벌백계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만 짚어보자. 병원에서 주사 한 번이라도 맞아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사 맞기 전에 간호사가 주사액을 나눠 담는 다던가 주사액 병에서 일부만 뽑아내고 나머지는 보관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거 보신 분 없을 거다. 용량의 조절 측면에서도 그렇고, 오염 가능성을 비롯한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필요한 소량만을 담은 소형 앰플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대용량의 약품을 보다 적은 용량의 앰플에 나눠 담을 때 이를 소분이라 한다. ⓒHMC 메디컬

숙련된 의료인이 99%의 확률로 오염 없이 소분을 할 수 있다고 해보자. 실제로는 외부 환경의 요인으로 인해 더 낮겠지만, 그 정도로 완벽하다고 해도 횟수가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99% 확률 그대로 횟수가 600번을 넘어가면, 대략 650번 즈음에는 (0.99)^650=0.001, 다시 말해 1%다. 한 번이라도 오염이 발생했을 확률은 99%에 육박한다.


소분 횟수가 올라갈수록 실패확률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분하는 것 자체가 이 정도의 위험성은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거다.

 

그러면 이제 더 화가 나실 거다. 신생아 중환자실이라는 엄중한 공간에서 도대체 왜 저런 소분을 한 거냔 말이다. 오염이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저걸 왜 했냐면, 그게 훨씬 싸기 때문이다. 헐. 의사들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 걸까?

ⓒSBS

사실 이건 정부에서 그만큼 돈을 안 주기 때문이다. 여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한국에서는 의약품 가격을 국가에서 정한다. 국가가 가격 올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도 아니고 아예 가격을 정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지만, 진짜 국가가 정한다.


일반의약품의 경우야 뭐 별 상관이 없지만, 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처방을 받아야 쓸 수 있는 의약품은 다 국가에서 가격을 정한다. (엄밀히 말하면 건강보험공단이 정하는 것이지만 그게 그거다) 그런데 이 양반들이 아주 비상한 생각을 하신다. 일종의 벌크 제품(?)을 우대하기 시작하신 거다.

대표적인 벌크 제품 대용량 누네X네. 이런 벌크 제품들은 보통 인간사료라고 불린다.

인간 사료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누네×네 같은 과자를 kg 단위로 봉지에 담아서 파는 건데, 기존의 소량 판매 과자랑은 다르게 가성비가 무지막지하게 좋다. 개별 소량 포장재의 가격도 빠지고, 포장 공정에 쓰는 기계 비용도 빠지고, 추가적인 인건비도 빠지니까 얼마나 싼가.


그래서 의약품도 벌크형 제품을 용량 대비 가격을 조금 더 쳐주고, 소량제품은 용량 대비 가격을 덜 쳐주는 식으로 가격 우대 정책을 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벌크 제품이 더 유리하니 벌크 제품만 생산했다. 그래서 20mL짜리 지질영양제가 아니라 100mL짜리 지질영양제만 시중에 나온거고, 그걸 소분해서 20mL씩 줄 수밖에 없던 거다.

 

두 번째. 그래도 혹시 모르니 100mL짜리 사 쓰고, 신생아는 감염 위험이 크니까 20mL만 쓰고 남은 건 폐기한 다음 100mL 값을 국가에 청구할 수도 있다. 들끓는 여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생아 중환자실 아닌가?


물론 국가에서는 이를 묵살했고, 100mL짜리를 소분해서 쓰라고 20mL 비용만 병원에 지불했다. 돈 아끼자고 벌크 우대를 하던 일관성을 신생아 중환자실에도 똑같이 적용한 거다. 그래서 100mL짜리 영양제를 20mL씩 나눠서 줬고, 그러다 이번에 한 번 일이 크게 터진 거다.


보건의료계에서는 이를 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는 입장이고, 이를 시스템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수가(=가격)를 인상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각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 대한 상시 감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번에 문제가 된 이대 목동병원의 병원 등급을 낮추고, 관련 의료인들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과연 의료인들만의 잘못일까? ⓒKBS1

이번 지질영양제만이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의료기기를 소독해서 계속 쓰라는 식의 간접적 지침을 내렸던 사람들이 누군가. 그럼에도 본질적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개별 의료인들만 처벌하겠다는 것은 납득이 힘든 일이다.

 

물론 해당 의료인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정황을 볼 때, 이들에게 과실이 없다고 보긴 힘들어 보이기는 하니까. 다른 의료인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대 목동병원이 다른 대학 병원들에 비해서 유독 구조적으로 취약한 점이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그렇지만 이런 인적 과실만으로도 발생하는 것이 의료사고인데, 구조적이고 정책적인 원인이 겹치면 의료사고는 훨씬 더 빈발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개별 의료인만 교도소에 보내다 보면, 나중엔 신생아 중환자실을 교도소에 개원해야 할 거다. 구조적 원인 개선에 조금 더 방점을 두는 방식의 대처가 나왔으면 하여 무척이나 아쉽다.


* 외부 필진 '한설'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한설

가상뉴스로 미리 보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나리오.jpg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