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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

한국에는 인종차별, 성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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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작성일자2018.01.10. | 10,706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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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모르는 남자가 내게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쇼핑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었다.


내가 돌아보자 그는 곧바로 예쁜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에는 깔끔한 흰색 바탕에 검은색 필기체로 “Marry Me”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갑작스러운 청혼에 놀란 나는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국의 한 결혼 정보회사에서 고객을 모으기 위해 나온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결혼정보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그는 자기 회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내 한국어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아, 저 외국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확 인상을 쓰더니 내 손에서 다시 명함을 뺏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 한국계 미국인 친구와 통화하던 중 그날 겪은 얘기를 들려줬다. 내 친구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그 사람이 네 스펙이 별로라고 생각했나 봐”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스펙은 영어 단어 Specifications의 준말로써, 한국에서는 개인의 능력과 배경에 따른 사회적 가치(사회학자들은 이를 ‘내재된 문화 자본’이라 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좋은 대학과 부유한 집안 출신에 준수한 외모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행에 맞는 겨울 패딩을 입는 것까지 스펙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스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국에서 나는 외모적으로 튀지 않는다. 검은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 노란 톤의 하얀 피부.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이 아닌지 잘 모른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에서 홍콩과 밴쿠버 출신의 중국계 캐나다 여성이라는 내 정체성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따라 대우는 달라진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공포증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이 최근 한국 성인 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61%에 육박하는 응답자가 “외국인 근로자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헌데 서양에서 온 백인의 경우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


성공회대학 사회학과 박경태 교수는 “한국인들은 서양 사람들, 영어를 하는 백인들이 ‘좋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민, 중국인, 심지어 중국에서 온 한국계 동포들은 ‘나쁜’ 외국인 취급을 당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가난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에서) 서양 국가 출신이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아시아 개도국 출신이면 차별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자면, 한국인들은 종종 내 배경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사소한 차별을 겪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나한테 “너 피부 진짜 하얗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겠어”라고 하더니 “중국인치고는 이가 정말 깨끗하고 고르다”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옷집에서 점원과 대화하는 도중 내가 어느 국가 출신인지 말하자 그녀는 “그쪽이 어딜 봐서 캐나다 사람이에요, 동양인 얼굴을 한 캐나다인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구사하는 언어 덕분에 누리는 특권도 분명 있다. 성난 택시 기사를 만나거나, 처음 만난 사람이 내 한국어 실력 때문에 화를 낼 것 같으면 바로 영어로 바꾼다. 나는 단숨에 다른 사람이 돼 버린다. 존중받는 서양인으로 변신하는 거다.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이 이런 모순적인 특권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산 지 2년 된 태국 유학생 와나파 꿈통은 “한국에서 저는 사람대접 못 받아요.”라고 했다. “(제가 동남아 사람이라고) 지하철에서 저를 만진 사람도 있어요. 한 번은 어떤 남자가 저한테 다가와서 몇 분간 대화했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그래서 (몸값은) 얼마에요?’라고 묻더군요.”

2016년 MBC가 보도한 인도인 유학생 마두 씨 사건. 마두 씨는 대학 내에서 갖은 인종차별과 성희롱에 시달렸다. ⓒMBC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태국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자주 맞닥뜨린다. “심지어 제 이성 (한국) 친구들마저 태국 여자들은 꼬시기 쉽고, 태국 매춘부들이 많다는 등 농담을 해요. 이런 말을 들은 제 기분은 어떨 것 같으세요?”


하지만 나처럼, 꿈통 역시 영어를 쓰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꿈통은 “영어를 써야지만 사람들의 대우가 나아져요.”라고 말하며, “영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학벌이 좋고 부유하다고 생각하니까요.”라고 덧붙였다.


1800년대 후반만 해도 ‘은둔의 나라’라고 일컬어진 한국은 다양성에 있어 많은 발전을 이뤘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했던 한국은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강제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해야 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다시 한번 문을 연 한국이지만, 국민이 직접 뽑은 대한민국 최초 민주 정부의 정책에 따라 외국인과 외래 문물, 시장 자본주의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한 건 불과 30년 전, 88서울올림픽을 개최했을 당시였다.


박경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은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속한다고 여기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2.8%가 외국인이고,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015년에 비해 3.5% 증가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143만 명 중 절반은 중국인이고, 그중 다수는 한국계 중국인이다. 나머지 국적을 살펴보면 베트남 9.4%, 태국 5.8%, 미국과 필리핀 각 3.7%이다.


단일민족, 단일문화 사회인 한국의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성의 확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태도부터 변화해야 한다.


박경태 교수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가 쉽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한국에는 인종차별, 성차별 및 다른 형태의 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경태 교수는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시민사회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며 외국인 공포증과 차별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노력을 언급했다.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극보수적인 기독교 세력 때문입니다. 성적 지향을 포함하는 차별금지법안에 심하게 반대한 거죠. 과거 세 차례 차별금지법안 제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민중의소리

외국에서 살거나 일하다 돌아온 한국인들도 이질성(foreignness)을 내면화한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여성은 특히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미국에서 자라고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현재 국내 금융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한 한국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는 일본에서 유학한 여학생들에 대한 몹시 나쁜 고정관념이 있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 간 여학생들이 거기서 지내는 동안 술집이나 사창가에서 일한다고 생각하죠.”


그녀는 “제가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직장 동료들한테) 제가 한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한국 회사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말 큰 불이익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여성인 데다 외국인이기까지 하면 훨씬 더 불리해지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대 사회학과의 마이클 허트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성별, 인종, 계급 모두 동일한 중요성을 지닙니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죠. 한국에서 외국인은 무조건 외국인이라는 딱지가 먼저 붙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고요.”

* 외부 필진 '뉴스페퍼민트'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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