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예능을 관통하는 키워드 '꼰대 없음'

조회수 2017. 12. 19.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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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 포함 2017년 최고의 예능 4편

“정치가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어?”라는 물음이 우문 중의 우문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치는 모든 곳에 닿아 있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7년의 세월의 거치면서 공영방송은 처참히 붕괴됐다. 견디다 못한 인재들이 앞다퉈 떠났고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은 그 특수를 확실히 누렸다. 지상파가 패권을 움켜쥐고 있던 시절은 지났다. 주도권이 넘어갔다. KBS와 MBC(의 경우는 일단락됐지만)의 총파업은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예능으로 범위를 국한시켜 봤을 때 2017년 한 해 동안 지상파는 주춤하다 못해 퇴보했다. KBS와 MBC가 애초에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SBS는 가족 예능의 덫에 갖혀 허우적댔다. 반면, tvN과 JTBC의 활약상이 빛났다. 나영석 월드를 구축한 tvN은 뚜렷한 강세를 보였고 다양한 예능을 선보였던 JTBC도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또한, 개국 10주년을 맞은 MBC every1의 활약도 눈에 띠었다. 올해 어떤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순서는 방영 순이다.

1. tvN <윤식당> 


- 방송 기간: 2017년 3월 24일 ~ 5월 19일
- 최고 시청률: 14.141%

“나는 노을 지는 게 너무 싫은 거 있지? 싫어, 노을 지면 너무 슬퍼. 꼭 울어야 될 거 같아. 난 노을 질 때 굉장히 슬퍼, 아무튼. 혼자 있을 때는 운 적도 많아. 노을 지는 거 보면서. 그만, 그만 울어 버렸네. 아니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구. 이제 꼴깍 넘어가지? 저러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석양이 싫은 건가?"


귀감이 되는 어른이 사라진 시대, 어느새 ‘꼰대’들만 잔뜩 남아 버린 시대. 그런 와중에 <윤식당>은 해갈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진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제공했고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이상향을 제시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졌고 누구보다 따뜻한 배려를 보여줬던 윤여정은 시대의 워너비로 자리 잡았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도전에 주저함이 없는 신구와 함께 단순히 나이가 늙음을 규정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윤식당>은 '은퇴 후 (가족이 함께하는) 자영업'이라는 판타지를 이상적으로 구현했는데 이 설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두 명의 어른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상무’ 이서진과 ‘윰블리’ 정유미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하며 프로그램을 빛냈다. <윤식당>은 콘셉트와 캐스팅,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나영석 PD의 걸작이었다.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윤식당>을 2017년 최고의 예능이라 꼽아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 방송 기간: 2017년 6월 2일 ~ 7월 28일 (현재 시즌 2 방영 중)
- 최고 시청률: 7.192%

"정말 빛나는 것들은 대화를 통해서 나와요. 이야기하는 중에 더 빛나는 것들이 많이 나왔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살다 살다 ‘아재’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될 줄이야. 혹시라도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했다. <알쓸신잡>은 그만큼 충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아재들의 대화가 유익할 수 있다’를 넘어 ‘아재들의 대화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다섯 사람, 작가 유시민·맛칼럼니스트 황교익·소설가 김영하·뇌과학자 정재승·가수 유희열은 여행하면서 지치지 않는 무한 수다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그들의 수다가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아재들의 그것과 달리) 유익하고 재미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에 있었다. 네 명의 잡학박사들은 각자의 여행을 계획할 뿐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정답이라 말하지 않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수긍하는 자세는 곧 수다의 지속성을 보장했다. 물론 <알쓸신잡>은 모든 아재들의 대화가 저들의 것과 같지 않다는 현실도 분명히 깨닫게 해줬다.

3. JTBC <효리네 민박> 


- 방송 기간: 2017년 6월 25일 ~ 9월 24일  
- 최고 시청률: 9.995%

“파도 소리가 기억나? 난 파도라고 하면 철썩철썩을 생각했는데 너한테 설명을 하려고 자세히 들어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파도를 그냥 마음으로 느낀다고 해야 하나? 안 들려도 들리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효리네 민박>은 제주도에 정착한 이효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싫은 스타의 욕망이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최고의 스타인 이효리가 자신의 집을 일반인에게 민박집으로 제공한다는 설정은 매우 기발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엄청난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아이유를 직원으로 캐스팅한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효리네 민박>이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효리네 민박> 성공의 핵심 포인트는 소통이었다. 이효리는 스타가 자연인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고 그 수더분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들이 더할 나위 없이 보기 좋았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은 남편 이상순의 존재도 큰 버팀목이었다. 이효리는 민박집 손님들과 세대를 초월한 소통 능력을 보여줬다. 그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보는 사람도 자연스레 힐링이 되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듣는 데 인색하지 않고 웃음에 머뭇거리지 않는 이효리의 교감 능력은 2017년 최고의 발견이었다.

4 .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 방송 기간: 2017년 7월 27일 ~
- 최고 시청률: 4.805%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은 외면하고 있어.” (마리오)


“일본이 사과해야지.” (다니엘)


“그걸 다뤄서 얻는 게 없으니까 일본은 사과하지 않는 거야.” (페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외국인과 여행은 예능에서 그동안 숱하게 활용했던 낡은 소재였다. 그런데 두 가지를 한데 모아놓았더니 전혀 다른 성격의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어서와>는 여행의 주인공으로 외국인을 내세우고 그들이 자유롭게 대한민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국내를 바라보자 익숙했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타자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험, 이른바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분단을 경험했던 독일 친구들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DMZ와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기도 했다. 우리조차 외면하고 있던 역사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듣게 되다니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또, <어서와>는 ‘독일 사람은 어떻다더라’, ‘프랑스 사람은 그렇지 않아?’와 같이 우리가 외국인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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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예능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예능적 재미를 넘어 다양한 가치(힐링, 지적 만족, 문화적 다양성)까지 함께 전달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가장 사랑받았던 예능을 뽑아놓고 보니 관통하는 특성이자 공통점이 보인다. 그건 ‘타자를 향한 열린 자세’가 아닐까. 그건 곧 ‘꼰대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꼰대들을 목격하고 저들처럼 늙지(살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곤 하는 사람들에게 ‘꼰대 없음’을 보여준 예능들이 사랑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은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지상파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알쓸신잡>은 시즌2를 시작해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여전히 멈추지 않는 수다를 과시 중이다. <윤식당>은 시즌2 촬영을 마쳤고 1월 5일부터 방송될 예정이라 한다. <효리네 민박>도 시즌2 촬영에 들어간다. 이들의 인기는 2017년을 넘어 2018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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