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문재인이 '민폐 의전'을 피하는 방법

조회수 2017. 11. 30.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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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초 연설 박원순, 바닥에 앉은 문재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주관 행사에서 20분으로 예정된 연설을 48초 만에 끝냈습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광장에서는 ‘서울복지박람회’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서울시는 미리 준비한 방석, 무릎담요, 목도리, 핫팩을 제공했습니다. 난로까지 설치했지만,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급격히 떨어진 기온 탓에 추위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막식 특별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늘은 시민들을 추위에서 해방시키는 게 가장 큰 복지인 것 같아요. 제 연설은 생략하고 앞으로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서울을 위대한 복지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말하고 연설을 끝냈습니다.


이날 행사는 박원순 시장이 추진해온 대표적인 복지 정책을 되짚어 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박 시장은 새벽 2시까지 연설문을 쓸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준비했지만, 추운 날씨에 벌벌 떠는 시민들 때문에 연설을 포기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에 졸도했던 학생들


박원순 시장은 연설을 취소한 이유에 대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입니다. 왜 학창시절 교장 선생님은 훈화 말씀을 짧게 하지 못했던 걸까요? 

1970년대 초등학교 애국조회 모습과 조회가 끝난 후 학생들이 졸도했다는 신문 기사

애국 조회, 아침 조회, 운동회 등 각종 학교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학생들에게 공포와 짜증을 유발했습니다.


아무리 춥고 더워도 끝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학생들은 바닥에 고꾸라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78년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 45명이 졸도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항상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이라 말하지만, 졸리고 다리 아픈 학생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라는 말에 ‘이제는 끝나겠지’ 생각하지만, 수사에 불과했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지자체·정부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설은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시작되지만, 모든 행사의 시작과 끝은 철저히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합니다.

행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과잉 의전

지자체 및 정부 주관 행사, 정치인 방문 행사 등을 보면 의전을 핑계로 시민들의 편의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6년 황교안 총리는 구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행사 관계자들은 총리 방문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정지해 놓아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총리를 위한 과잉 의전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계단을 걸어 내려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전남 순천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관계자들은 지도부가 행여 비를 맞을까 건물 입구부터 우산을 들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때는 앉을 의자를 청소한다며 비번인 소방관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휴가 부족한 소방관의 금쪽같은 휴식을 대통령 행사 동원으로 소진해버린 셈입니다. 


지난 7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충북 수해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행사 관계자는 허리를 숙여 홍 대표에게 장화를 신겨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수해 복구하러 가서 봉사 받고 왔다며 홍 대표를 비난했습니다.  


의전 탓에 일부 시민들은 정치인이 재난 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합니다. 겨우 1~2시간 머물다 가는 정치인을 위해 정작 중요한 피해 수습이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체육관 바닥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

출처: 청와대
포항 지진 현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바닥에 앉아 피해 보고를 받는 모습

지난 1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한 포항에 방문했습니다.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인 흥해실내체육관을 찾은 문 대통령은 이강덕 포항시장으로부터 피해 상황과 수습대책에 대해 보고받았습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재난 현장에 가면 별도로 브리핑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시민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주민들 말씀부터 들어봅시다”라며 자신의 발언권을 뒤로 미루기도 했습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시민과 함께 보고를 받고 자신보다 주민의 발언권을 우선시한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제는 주인공이 대통령이나 시장,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일입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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