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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로듀스 101의 김재환을 죽어라 영업했던 이유

조회수 2017. 9. 26. 14: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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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가족들에게 너무 쉬운 데뷔, 개인연습생에겐..

대놓고 경쟁사회를 부추긴다고 궁시렁하면서도 금요일 11시만 되면 어김없이 TV앞에 앉았다. 101명의 청년들이 쓰는 성장서사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우는 모습이 안쓰러운 한 청년에게 눈길이 갔다. 유일하게 소속사가 없는 개인연습생 김재환이었다.


그에게 Mnet<프로듀스101 시즌2>는 가수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은 아니었다. 때로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각종 방송에 출연했다. SBS의 <신의목소리>에서는 윤도현을 꺾으며 출중한 실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뷔의 기회는 찾아오지 쉽게 않았다. 하지만 김재환은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기회를 잡기위해 101명과의 경쟁을 선택했다. 그리고 화려한 소속사 연습생들 사이에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어깨에 메고 아델의 'Skyfall'을 불렀다.

짧은 소절이었지만 덤덤하면서도 날카로운 보컬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일평생 기타를 만져온 그에게 방송국은 갑자기 춤을 요구했다. 서울 시내 중국집의 하루 판매량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는 황당한 면접질문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김재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섹시한 표정까지 지어가며 막춤을 선보였다.


그를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101명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데뷔를 하겠다는 ‘비현실적’인 꿈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취업을 준비하는 내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누구보다 그가 11명 데뷔조에 들기를 바랐다. 그가 데뷔를 하지 못한다면, 마치 내가 꿈꾸는 미래도 사라질 것 같았다. 


김재환은 마지막 방송에서 최종 4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11인에 들어갔다. 나는 엉엉 울면서 기뻐했다. 앞으로 내게 펼쳐질 취업이라는 '데뷔'도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듀>가 성황리에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돌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예쁜 소녀들이, 아이돌 맞춤형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쁘고 실력 있는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중에 특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학생이 한명 있었다. 김흥국의 딸이었다.


<아이돌학교> 일반 참가자들의 불만이 터졌다. 알고보니 출연자의 절반 가까이가 연예기획사 연습생 출신이거나 연예 활동을 했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이미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에 대한 항의가 빗발쳤지만 방송에서는 ‘붕어빵 아빠와 딸의 환상 콜라보!’나 ‘부전여전’과 같은 방송 자막을 걸고 있었다.

김흥국의 딸이 <아이돌학교>에서 아빠의 히트곡 '호랑나비'를 부르는 장면

연예인 2세의 '데뷔 하이패스'는 사실 흔한 일이다. SBS <아빠를 부탁해> 출연 이후 배우 조재현의 딸은 드라마 <상상고양이>의 주연을 맡았다. 최민수의 장남도 비슷하다. TV조선 <나를 돌아봐>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배우가 꿈인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말했다. 그리고 최민수의 아역으로 출연하였다. 이들이 쌓은 방송 커리어에서 부모들이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다.


가족 관찰 예능을 찍고 얼굴을 알린 뒤, 자신이 꿈꾸는 분야로 진출한다. 최근 연예인 2세들의 공식 같은 코스다. 물론 과정이 쉽다고 해서 그들의 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예인의 딸 아들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가능했을까?

연예인 지망생 100만 명 시대, 데뷔를 향한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사실 이런 하이패스는 연예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최근 시사인은 언론계가 삼성 장충기 전 차장에게 자녀 인사 청탁을 부탁한 문자를 공개했다. 그중 가장 뜨거웠던 문자는 CBS의 전 간부가 보낸 문자였다. 자신의 아들이 삼성전자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아들의 이름과 수험번호, 출신 대학과 학과를 자세히 적은 것이다.


인턴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감독원 특혜 채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변호사 임 모 씨는 일반 대학생은 한차례 경험하기도 힘든 금감원의 사무보조원 즉, 인턴을 재학 중에 세 차례나 했다. 전직 국회의원인 임 씨의 아버지가 당시 금융감독원장과 행정고시 동기라 이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출처: 시사in

이 땅을 살아가는 이상 '흙수저 출신'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한국행정연구원이 조사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력을 통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 상승이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은 2013년 61%에서 2016년 48.5%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과 마주할 수록 평생 춤의 ‘ㅊ’자도 모르던, 기타만 치던 김재환이 미친 듯이 안무를 숙지하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데뷔를 위해 잔인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101명의 연습생들의 모습에서, 취준을 위해 밤새 자소서를 지웠다 고치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소속사도 없는 개인 연습생에서 최종 데뷔까지. 언론은 김재환을 ‘흙수저의 반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째서 반전이라고 설명되야 하는가. 목표만큼 노력하고, 실력이 있다면 인정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언제쯤 당연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뉴스가 되는 사회에서, 오늘도 나는 끝나지 않는 자소서를 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 20timeline 님의 기고 글입니다.


원문: http://20timeline.com/8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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