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선 60~70대가 에이스?제2의 인생 찾은 5070세대

조회수 2017. 12. 29. 0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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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몰아친 12월의 어느날, 서울 용산구 청파동 골목 주택에서는 철거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열 명 남짓으로 기자 출신, 고위 공무원이었던 사람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구성원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실버 세대였습니다. 제2의 인생을 찾은 5070세대의 노동 찬가 함께 들어보실래요? 


오전 9시 30분, 시멘트벽 깨지는 소리가 골목을 뒤덮었습니다. 공사 중인 주택의 2층으로 올라가니 드릴로 벽을 깨는 사람, 시멘트포를 나르는 사람, 물을 뿌려 먼지를 쓰다듬는 사람 등 여러명이 저마다 본인의 역할에 맞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모두 가벼운 옷차림인데 그마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열기로 공사장의 온도가 바깥보다 높은 것 같습니다.


“제가 올해 쉰다섯인데 여기선 막내 급이에요. 60대부터 70대가 가장 일 잘하는 에이스 그룹이에요. 저기 계단에서 작업하시는 분은 올해 여든을 넘기셨어요. 정정하시죠? 이곳에 오면 나이의 개념을 잊게 됩니다.”


공감지기를 이곳으로 안내한 성리현 씨의 말입니다. 그는 공사장 인부가 된 지 1년 정도 된 신참입니다. 언론사 편집기자 출신인 그는 40대 중반 명예퇴직 이후 각종 새로운 일을 하다가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생전 처음 와본 노동 현장에서 그는 두 번 놀랐다고 합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것에, 그리고 이들 저마다 가진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서였는데요.

사진=오전 작업을 끝내고 땀에 흠뻑 젖은 성실엔지니어링 소속 인부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l C영상미디어

무거운 돌덩이를 가볍게 들어 옮기던 김명준(70) 씨는 경력 54년 차 베테랑입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연령은 아직 5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제가 이 일을 열일곱에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54년이 됐어요. 제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라시는데, 보시다시피 아직 건강합니다. 평생 해온 일이니까 별로 힘들지 않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에 이왕이면 웃으면서 일하려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그.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음을 터트리니 현장 분위기가 절로 좋아집니다.


“일 끝나고 막걸리 한 잔 마시는 재미가 이 일의 매력이에요. 땀 흘리고 막걸리 한 잔 ‘촤~’ 마시면 기분이 끝내줘요. 이게 사는 재미죠.”

사진=막노동판 현장에는 60~70대가 가장 많다. 사진 속 주인공은 71세 인 이현복 씨. l C영상미디어

익숙하게 드릴을 다루던 이현복(71) 씨가 말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즐겁다고 했습니다.

 

“저도 올해 일흔이 넘었는데,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할 수 있어요. 불러만 주면 그 이상도 해야죠. 제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하겠어요. 이렇게 일하고 하루 일당을 벌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하루 일하면 일당이 12만 원이에요. 인건비가 높은 편이라 잘하면 제가 번 돈으로 한 달 살 수도 있어요.”  


위험한 일이라 가족들이 항상 걱정하지만, 그는 손자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기쁨이 커서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씨가 2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러 나오면 아이들이 ‘아빠, 그만 하세요. 쉬어가면서 하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워요. 그만큼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일은 계속할 거예요. 나이가 들었다고 자식들에게 손 벌릴 수는 없잖아요. 제 힘으로 돈을 벌어 손자들에게 과자 값도 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자식들 생일이 되면 여행 가라고 용돈을 쥐어주기도 해요. 저는 아직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것보다 용돈을 주는 게 더 행복하고 좋습니다.” 

사진=60~70대의 에너지는 청년들 못지않게 뜨겁고 열정적이다. l C영상미디어

이들은 철거 전문 회사인 성실엔지니어링 소속입니다. 매일 새벽 강남의 사무실에 모여 그날그날의 일정을 배당 받은 다음, 다 함께 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해서 일합니다. 매일 스케줄을 관리하는 작업반장, 인부들 사이에서 ‘오야지’라 불리는 김기중(66) 씨는 이 업종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일을 28년 전에 시작했어요. 그때 현장에는 30대가 많았어요. 지금은 대부분 60~70대예요. 예전이었으면 은퇴할 나이가 지금은 가장 전성기예요.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안 하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실제로 이분들의 기술이 좋기도 합니다. 일을 진행하는 관리자 입장에서, 현장에서 일 잘하는 능률 좋은 사람을 위주로 쓰다 보니까 젊은 사람보단 나이 든 사람을 찾게 돼요. 젊은 사람 써도 실제로 일을 해보면 60, 70대 베테랑 인부들이 훨씬 일을 잘하거든요.” 


김 씨는 현실적으로 이런 현상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도전할 가능성 있는 분야라고 말했습니다.

 

“선진국은 기술자들이 교수보다 돈을 더 버는 기술자 우대 사회예요. 여기서도 본인이 미장이나 배관 전문가가 되면 보수가 상당히 좋아요. 우리나라도 시간이 흐르면 기술자들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사진= ‘기자출신 중년 잡부’ 성리현 씨 가 펴낸 <땀방울이 살아있네>에는 우리시대 막노동판의 소소한 풍경 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l C영상미디어

최근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한 권 출간됐습니다. <땀방울이 살아있네>라는 제목의 책은 이곳의 인부인 성리현 씨가 썼습니다. 덕분에 그는 인부들 사이에서 ‘성 작가’로 불리우는데요. 생전 처음 발을 디뎌본 분야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고 합니다.

 

“기자생활 하다 40대 중반 명퇴를 했는데, 나와 보니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고요. 벼랑에 몰린 심정으로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신문광고를 통한 상품 판매도 해봤고, 친척 형님이 운영하는 반도체 회사에 들어갔다가 낙하산이라 눈총만 받고 나오기도 했어요. 월 20% 수익을 보장한다는 주식 선물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한 적도 있고요. 이래저래 할 게 없었는데,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분이 이 일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렇게 그는 난생처음 육체노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 작업복을 입고 일하던 작년 겨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처음 한 일이 시멘트 포를 드는 일이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드는 순간 핑 돌더라고요. 회사 다닐 때 보도블록에서 공사하는 인부들을 보면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 사람이 되니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어요. 유치한 연민에 빠지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작업을 했어요.”

사진=주택의 실내 철거 작업을 하는 중 이다. 철거 후 생긴 각종 작업물과 바닥을 정리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다. l C영상미디어

그가 마음을 다잡게 된 데는 함께 일하는 고령의 동료들이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본인보다 훨씬 많은 나이에도 매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더라고. 매일 함께 땀을 흘리고 막걸리 한잔을 나눠 마시면서 그들의 삶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됐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됐습니다.

 

“땀을 흘리고 사니까 이런 인생이 있구나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흘린 땀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노인들의 땀방울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편안하게 살았구나, 책상머리에 앉아서 글만 주물럭대면서 살았구나, 이런 다채로운 인생이 있구나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땀에서 배우는 작은 행복을 강조하고 싶다


성 씨는 땀이 본인의 삶의 태도를 달라지게 한 만큼, 본인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세대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지는 모르겠어요. 이 풍경을 한 번 담아보고 싶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준비 없이 퇴직에 몰린 베이비붐 세대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회사 나오면 할 게 없거든요. 굉장히 힘든데, 이런 삶의 현장에 나와 보면 내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돈벌이가 아쉬운 상황에서 땀을 흘리면서 사는 삶도 한 번 주목해보신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1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두고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할 수 없겠지만, 이것으로 땀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본인의 일에 대한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같이 땀을 흘리며 끈끈한 동료애가 생긴 인부들과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러 떠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치열한 삶과 애착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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