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 남은 아쉬움

조회수 2018. 8. 29. 17: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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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이치 소프트웨어의 2D 어드벤처 게임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 리뷰

어렸을 때 받았던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책장을 펼치면 그림이 수직으로 세워지는 '팝업북'. 그저 그림이 책에서 튀어나올 뿐인데 그땐 그것이 왜 그렇게 신기하고 즐거웠을까요?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곱씹어볼수록 팝업 그림책과 많이 닮은 게임입니다. 게임을 체험해 본 소감을 정리했습니다.


# 늑대와 인간, 게임과 그림책을 오가다


옛날 어느 숲에,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늑대가 눈먼 왕자를 데리고 나타납니다. 늑대는 자신의 실수로 눈과 지위를 잃은 왕자를 위해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마녀의 집으로 가는 중. 두 사람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이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의 이야기이자 게임 내용입니다. 


동화책을 떠올려 보세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납니다.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저 두 문구 가운데에 각종 장애물이 가득한 스테이지를 배치합니다. 게임은 나긋나긋한 구연과 귀엽고도 암울한 그림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즐기다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스테이지는 튜토리얼을 포함해 24개입니다. '레이맨'이나 '마리오'처럼 시작 지점에서 캐릭터를 움직여 골 지점까지 가는 방식으로, 맵 곳곳을 살피며 괴물을 피하거나 장치를 조작해 골 지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맵에 설치된 함정이나 장치의 기믹은 특별한 것이 없지만, 상황에 맞춰 변신하며 퍼즐을 풀거나 왕자를 보호하고 데려오는 과정이 이야기와 어울려 독특한 인상을 줍니다.

 

왕자는 앞을 못 보고, 늑대와 공주는 목소리가 같으니 변신에는 별다른 제약이 걸리지 않습니다. 늑대는 괴물을 쉽게 쓰러뜨리거나 공격받지 않고, 높이 뛸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모습이 훨씬 유리합니다. 하지만 맵 곳곳에 설치된 장치를 조작하거나 왕자를 이끌고 오려면 결국 약점이 많은 공주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은 조금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금세 괴물의 밥이 되어버리고, 이는 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못 보는 왕자를 안전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공주와 늑대 모습을 번갈아 사용하고, 부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왕자를 움직여 퍼즐을 풀어야 합니다. 게임에서는 변신 전후의 무게나 점프력, 물체를 사용하는 퍼즐 등으로 변신과 2인 기믹을 활용하도록 유도합니다.


#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아트와 이야기의 협업


인간 공주인 척하며 괴로워하는 늑대, 가련하면서도 마냥 의존적이지는 않은 왕자가 손을 꼭 붙잡고 마녀의 숲을 위태위태하게 건너가는 이야기.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의 이야기는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전달됩니다. '빨간 모자'나 '인어공주' 등 많은 사람들이 잘 알법한 동화에서 소재를 빌려와 이해도 쉽고, 길어야 10분 내로 끝나는 스테이지 구성 덕분에 앞 이야기나 캐릭터를 잊어버리는 불상사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림책에서 막 오려낸 듯하면서도, 찬찬히 살펴보면 무섭게 표현된 아트는 이야기 전달의 MVP입니다.  


한 예로 인간 모습의 두 주인공은 작고 둥글둥글하지만 스테이지에서 표현되는 마녀의 숲은 뾰족하고 불길한 색채와 괴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공주는 작고 위태로운 인간 모습, 크고 불길하고 압도적인 늑대 모습을 오갑니다. 그 과정에서 공주/늑대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다른 존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되죠.

앞 못 보는 왕자를 공주가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는 콘셉트 덕분에 스테이지의 퍼즐과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두 캐릭터가 손을 붙잡고 걷다가 나동그라지고, 손을 놓친 왕자가 불안에 떨거나 위태롭게 걷는 모습은 귀엽기도 합니다. 스테이지 진행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쓰러지면 다른 쪽이 충격을 받아 주저앉거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 덩그러니 서 있기도 하죠. 훌륭한 아트와 애니메이션은 이들이 짧은 시간 어떻게 유대를 쌓아오는지 보여주고, 이 과정에 플레이어를 참여시킵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처음부터 이해하기 쉬운 배경과 캐릭터를 제시하고,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스테이지 진행을 통하여 행동을 보여줍니다. 귀여우면서도 거칠고 암울한 아트는 알고 보면 무서운 뒷설정을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면서 서사에 설득력을 강하게 부여합니다.


# 이야기는 훌륭, 스테이지는 무난, 성취감은 '글쎄'


퍼즐의 비중이 큰 게임에서 성취감을 얻으려면, 그 게임만의 독특한 기믹을 잘 살리면서 합리적으로 퍼즐이 풀려야 합니다. 기발한 구성으로 의외성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앞으로 어떤 퍼즐이 나올지 설렌다면 완벽하겠죠.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게임 속에서 만나는 퍼즐은 플레이어를 즐겁게 약 올리는 도전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난이도는 부차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의 스테이지 파트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부 빠른 컨트롤을 요구하는 파트를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퍼즐 난이도는 평이하고, 어디서 본 듯한 장치나 타이밍 퍼즐이 대부분입니다. 하다못해 장치가 의외의 곳에 숨겨져 있거나 예측을 벗어나는 작동 형태를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무난하고 평범하게 진행할 수 있고, 퍼즐을 풀었다고 달리 큰 성취감이 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게임의 퍼즐은 도전거리라기보다는 장애물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디선가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눈에 띕니다. 플레이하면서 마지막까지 난감했던 것은 캐릭터가 대미지를 입는 지점과 높이였습니다. 분명히 공격했고 몸체에 닿았는데 타격을 입지 않거나, 무난한 높이에서 점프했는데 낙사로 처리되는 등 '왜?' 싶은 순간이 퍽 잦았습니다. 낙사를 방지해주는 버섯(쿠션)의 범위도 생각 이상으로 좁아서, 똑같이 뛰었는데 한 명은 낙사로 처리되는 일도 빈번합니다. 오브젝트 사이에 끼는 일도 많아 만듦새가 좀 더 깔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달콤 씁쓸하다 사르르 녹는 초콜릿처럼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에는 독특한 기능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퍼즐을 풀지 못하거나 계속 낙사하는 등, 정체가 10분 이상 지속되면 그 스테이지 자체를 그냥 건너뛸 수 있는 스킵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 시스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특정 구간이 너무 어려워서 플레이를 포기하는 현상을 개발진이 문제로 봤다는 것, 그리고 게임의 주된 목표가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트레일러를 보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이야기였고 그런 마무리를 짓습니다. 적절한 아트가 여운을 한껏 살려냈고 음악도 잘 어울렸습니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귀여움을 넘어 잔망스럽고 애틋하기까지 하죠. 적어도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소기의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한 것 같습니다. 곱씹어볼수록 씁쓸한 맛이 있긴 하지만 깔끔하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스테이지 파트의 지루한 퍼즐 구성과 만듦새는 다시 생각해봐도 아쉽기만 합니다. 해당 파트가 특히나 플레이어에게 깊은 관심과 조작을 요구하는 부분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수집 요소나 도전과제를 신경 쓰지 않고 플레이했다면 엔딩까지 약 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게임은 경험재니까 플레이타임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건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의 이야기가, 무난하기만 한 24개의 스테이지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가 묻는다면 다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호불호가 정말로 크게 가릴 '차순위' 게임입니다. 만약 이야기에 비중을 두는 플레이어라면 '이것저것 다 취향이긴 한데 지금 당장 꼭 플레이하고 싶진 않은' 게임이 될 것이고, 게임의 성취감을 높이 보는 플레이어라면 '가격 대비 성취감이 너무 낮은' 게임이 되겠죠. 공식 영상 몇 개를 보고 분위기와 아트가 마음에 든다면 기억해뒀다가 좋은 기회가 닿았을 때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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