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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학생들, 전공을 때려 치고 개발팀을 만들다

조회수 2018. 6. 12. 18: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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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게임' 만든 5바이트 팀 인터뷰

지난해 겨울 출시된 <Life is a game: 인생게임>(이하 인생게임)은 내가 살면서 가장 감명깊게 플레이 한 런 게임이었다. 

 

<인생게임>은 이름처럼 한 사람의 아이 시절부터 학생, 청년, 장년, 노년, 그리고 이후 죽음까지를 그린 '엔딩'이 있는 런 게임이다. 유저는 게임 중 획득한 토큰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게 되고, 엔딩 이후 자신의 삶을 주마등처럼 돌아보게 된다. 게임의 이런 독특한 구성은 많은 유저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 관련기사: 런게임이 감동을 줬다고? 인디게임 '인생게임'이 성공한 이유

 

이 게임을 만든 주인공은 대구 대학생들이 주축인 인디 개발사 '5바이트'(5 byte)다. 게임을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는 독특한 구성의 팀. 대구의 대학생들은 이처럼 모바일 게임이 포화가 된 시기에 개발팀을 꾸렸을까? 그리고 어떤 계기로 <인생게임>을 만들게 됐을까? 5바이트의 구성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왼쪽부터 박민규, 남중헌, 이진규, 윤효준 (5바이트는 이들 외에도 4명의 구성원들이 더 있다)


#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학생들, 전공을 때려 치고 개발팀을 만들다

 

이날 만난 5바이트 구성원들은 2016년 대구의 한 게임 개발 학원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이다. 구성원들 평균 연령은 25세. 최고령자(?)도 28세에 불과하다.

 

만난 장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 중 게임 개발과 관련된 것을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날 만난 이진규 팀장은 경영학을 배웠고 음악을 만드는 남중헌 아티스트는 법학을, 박민규·윤효준 아트 디자이너는 전자공학을 배웠다. 모두 게임을 즐기고 좋아했지만, 학력이나 부모님의 강권, 현실적인 문제 등으로 이런 전공을 선택한 이들이다. 

 

하지만 흘러가다가, 떠밀려 선택한 결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전공과 무관하게 테스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게임을 '직업'으로 삼자고 결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군대에서 게임 개발을 꿈꿨다. 게임이 좋아, 내 음악과 내 그림을 게임에 넣고 싶어 각각, 무작정 대구의 게임 개발 학원에 들어갔다.

전공까지 뒤로 하고 게임 개발을 결심했지만, 학생 생활은 이들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들이 학원에서 원하는 것은 '게임 개발'을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임 개발 학원은 개발을 가르치기 보단 수강생들을 게임 회사에 '취직'시키는 것에 더 무게를 뒀다. 지금이야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는 것을 이해하고 다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당시엔 이 간극이 5바이트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간극에 힘들어 하던 이들은 학원을 뛰쳐나왔다. 그 때 이진규 팀장이 제안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꼬드겼다)

 

"야, 어차피 우리 실력에 개발사에 취직 못하는 건 팩트아니냐. 차라리 스터디 한다고 생각하고 개발팀 하나 만드는 건 어때? 결과 좋으면 인디팀 되는 거고, 못해도 포폴(포트폴리오)은 남지 않겠냐."

 

그렇게 5명이 모여 무작정 개발팀을 차렸다. 팀 이름인 5바이트도 그렇게 나왔다. 다들 게임 개발 초보다 보니 '개발이 토 나오게 어렵다'라는 의미로.

 

급히 꾸려진 팀이지만, 열정 만은 철철 흘러 넘쳤다. 다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 팀에서 꼭 완성시키고 싶은 '어떤 게임'이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프로그래머 하나 없는 팀이 '보드게임'을 만들며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기획자 중에 한 명이 보드게임 공모전에서 상 받은 친구에요. '이거다!' 싶어서 프로그래머 구하기 전까지 보드게임 만들며 버텼죠. 덕분에 기획은 원 없이 했어요. 모바일은 프로토타입 만드는데 3달은 걸리는데, 보드게임은 3일이면 끝나거든요. 물론 그만큼 프로그래머를 구하는데 오래 걸린 탓도 있고요. 지방은 프로그래머도, 프로그래밍 배울 기회도 귀하거든요. 2016년에 유니티 강좌도 하나 없었을 정도니까요."


# 인생게임? 유저가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제 몫 한 것

 

화제의 타이틀 <인생게임>은 5바이트가 처음 만든 모바일게임이자, 팀에서 처음 프로그래밍한 게임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처음 만드는 게임이니 간단한(?) 런 게임을 만들어보자. 이후 누군가 던전 '인생은 마라톤이야'라는 말 한마디가 '인생게임'이라는 테마를 확정했다. 이런 가벼운 시작 때문에 5바이트 사람들은 <인생게임>에 호평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처음엔 3개월짜리 프로젝트였거든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 우리끼리 별칭이 'X망게임'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유저 분들이 재밌게 하시고 좋은 얘기 많이 해주니 부담스럽죠. 아마 게임이 반향을 일으킨 까닭은 저희가 잘 만들어서라기 보단, '인생'이라는 소재가 많은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서였을 거에요. 솔직히 테마 자체가 치트키였죠." 5바이트 이진규 팀장의 이야기다.

물론 <인생게임>이 3개월만에 뚝딱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얘긴 아니다. 시험 삼아 시작한 작품이긴 하지만, 개발진 누구도 게임이 묻히는 것을 원친 않았다. 하지만 신생 팀이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5바이트가 선택한 것은 '참신함'이었다. 기존 런 게임에 없는 <인생게임>만의 무언가. 

 

3개월이 다 될 무렵 '회상 모드'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회상을 하려면 하이라이트가 있어야 했고, 하일라이트를 꼽으려면 유저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해야 했고 이에 대한 감상이 있어야 했다. 회상 모드를 넣자는 아이디어가 유저에게 선택지를 주자, 선택에 대한 캐릭터의 평가를 넣자라는 기획으로 확대됐다. 회상 모드 덕에 <인생게임>의 뼈대가 세워졌다. 3개월짜리 프로젝트가 1년짜리 프로젝트로 바뀐 시점이다.

회상 모드에서 캐릭터들이 분기점과 자신의 선택을 떠올리는 대사는 5바이트 팀원들이 가장 신경쓴 파트였다. 

 

학창시절 친구와 만화책을 봤을 때의 감정, 누군가에게 사랑이 받아들여졌을 때, 거절당했을 때의 감정,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의 감정 등. 5바이트 팀원들이 경험하고 느낀 감정이 날 것으로 담겼다.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분야와 직업, 경험하지 못한 연령대 등에 대한 감정은 부모님이나 다른 직업 사람들을 찾아가 들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렇게 쓴 텍스트만 1만 4천 줄이다.

 

"고민도 많았죠. <인생게임>이니만큼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겪지 못한 것도 많잖아요? 그걸 우리가 임의로 연출하고 써도 돼나. 물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럼에도 흡연, 자살, 죽음 등은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주제니까요. 아마 정신적으로는 여기가 가장 힘들었을 거에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했어야 하니까요."

 

"어…, 하고 싶었던 말이요? 굳이 꼽자면 인생에 '트루 엔딩'은 없다? 다시 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웃음) 그냥 유저들이 게임을 하고 지금을 돌아봐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 '한국' 청소년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다룬, 페르소나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

 

5바이트 팀의 꿈은 '페르소나' 시리즈 같은 RPG를 만드는 것이다. 단, 한국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10대, 20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이왕이면 <인생게임>보다 더 깊고 치열하게 이들의 감정과 이들이 겪는 사회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작품을.

 

"'페르소나' 시리즈가 이런 것을 정말 잘하죠. 그런데 아무래도 일본 배경이다 보니 와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서울 도심을 도트로 찍고, 한국의 10대, 2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죠. 시나리오에 힘 바짝 줘서요. 기획은 팀을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짬짬이 하고 있어요. 이게 5바이트의 최종 목표까진 아니어도, 시즌1 엔딩정도는 되겠죠."

5바이트의 차기작 중 하나인 <신수서기>의 메인 아트. 게임은 5바이트가 꿈꾸는 RPG의 프리퀄격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콘셉트긴 한데, 솔직히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기자의 눈치 없는 말에 5바이트 팀원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살 정도만 나와주면 만족이죠. 그래서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이 중요해요. 만들고 있는 작품이 잘 돼 여기서 체력을 만들어 놔야,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테니까요"

 

5바이트 개발진 8명은 현재 두 팀으로 나눠 두 게임을 개발 중이다. 하나는 고대 한국을 테마로 한 로그라이크 슈팅게임 <신수서기>, 다른 하나는 도시의 야경을 테마로 한 힐링 감성 방치형 게임 <선리스시티>.

 

<신수서기>는 <엔터 더 건전> 등과 유사한 로그라이크 탄막 슈팅 게임이다. 로그라이크긴 하지만, 주인공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마법이나 장비 등 전리품) 풀을 미리 세팅할 수 있어, 유저가 이후 진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특징. 또한 고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기에, 5바이트 개발진이 경복궁·하회마을 등을 찾아다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모바일과 PC.

 

<선리스시티>는 도트로 만들어진 도심의 야경을 유저가 직접 배치하고 연출할 수 있는 방치형 게임이다. 사람들이 우울할 때 야경을 보러 가는데서 착안해, 현대 도심의 야경과 빗소리, 라디오 등으로 사람들을 '힐링'하는 게임이 목표다. 또한 방치형 게임으로선 독특하게도 시나리오 모드가 따로 있어, SF 도시를 경영하고 '해가 뜨지 않는'(sunless) 세상에 대한 비밀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도 특징.

5바이트의 차기작 중 하나인 <선리스시티>의 시나리오 모드 스크린샷. 방치 모드일 때는 (SF 배경인 시나리오 모드와 달리) 현대적인 도시의 야경을 직접 꾸밀 수 있다.

사실 5바이트에게 두 게임은 단순히 후속작 전 체력 만들기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그들이 꿈꾸는 게임을 만들기 전 거쳐가는 예행연습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예를 들어 고대 한국 배경 탄막 로그라이크 <신수서기>는 그들이 만들고 싶은 RPG의 '프리퀄' 격인 작품이다. 도심의 야경을 도트로 구현한 <선리스시티>는 그들이 서울 도심을 도트로 만들기 전 하는 예행연습과 같다.

 

"2년 전부터 기획했을 정도면 말 다했죠. 저희끼리만 아는 얘기지만, <인생게임>에 <신수서기> 주인공이 카메오로 등장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그 게임을 꿈꿨어요. 팀에선 지금도 그 게임을 소재로 웹툰도 그리고, 기획도 하고 있죠. 빨리 안정돼 그 게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로 그 RPG를 만들고 싶은가봐요?'란 기자의 물음에 5바이트 팀원들이 답한 말이다.

 

결성 당시엔 게임 개발 스터디,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정도로 생각했던 5바이트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른 목표가 추가됐다.

 

유저들에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재미를 선사하고 싶다. 내가 이끈 인생이지만 회상에서 다른 감정을 줬던 <인생게임>처럼, 한국의 10·20대들이 겪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렇기에 그 때 기억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은 미래의 RPG처럼. 그렇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유저들이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것.

 

"지금 저희 기술력으론 굉장히 힘들고 먼 일이겠죠. 그래도 자신있어요. 효율이 최악이라 남들은 건들지 않는 것을 저희는 무작정 건들고 언젠가 끝내거든요. (웃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계속 벌면, 방망이 깎는 노인같이 계속 만들어 가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개발 중인 신작 <신수서기>의 플레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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