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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3개월, '듀랑고 2018 로드맵' 발표한 왓스튜디오의 고민

조회수 2018. 5. 16. 12: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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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일으켜 다 부숴달라는 유저도 있다"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가 2018년 업데이트 로드맵을 발표했다. 6년의 터널을 지나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들이다. 물론 <듀랑고>는 계속 화제가 되어왔다. 지난 3개월을 숨가쁘게 달려왔다. 논란도 있었고, 경사도 있었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스토리팩이 추가된다. 서버가 하나로 통합되고 여러 개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사실 업데이트 내용보다는 그 배경이 궁금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변화를. 업데이트를 내놓은 왓스튜디오의 속내는, 고민은 무엇일까. 

 

많은 게임이 서버를 하나로 합친다. 보통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줄어든 유저 수다. 하지만 왓스튜디오는 처음부터 하나의 서버로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제서야 판이 제대로 깔린 것에 가깝다. 지난 14일, 그 내막을 설명해 줄 세 사람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왼쪽부터 양승명 왓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은석 PD, 김주용 게임 디자이너


디스이즈게임: 업데이트 로드맵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직접 출연도 했는데. 

 

이은석: 맞다. 빠르게 적용될 부분부터 시간이 좀 걸리는 내용도 담겨 있다. 게임의 방향을 일찍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영상으로 공개했는데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일단 커뮤니티 의견이나 건의사항은 다 보고 있다.

 

 

유저 간담회 같은 건 아닐 것 같다.

 

이은석: 유저 간담회를 하면 소수 유저분들 의견만 듣게 된다. 편향없이 대부분의 유저분들 의견을 듣고 싶다. 아직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들은 게임 론칭 전부터 계획된 것인가.


이은석: 단일 서버는 개발 초창기부터 계획됐던 거다. 스토리팩이 구상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스토리팩은 어떤 콘텐츠인가.


이은석: 지금까지 게임에서 스토리를 볼 수 있는 형태의 플레이가 거의 없었다. <듀랑고>의 스토리를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한 콘텐츠다. 중, 저레벨때부터 만렙까지 차근차근 진행되는 스토리를 볼 수 있다.

 

 

콘솔 게임같은 방식인가. 싱글 모드를 진행하고 시네마틱 영상같은 게 나오는.

 

양승명: 그 정도 볼륨은 아니다. 스토리에 따라 좀 더 개연성 있는 임무가 주어지고, 임무를 해결하면 새로운 스토리를 알게 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스토리 콘텐츠가 지금 추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스토리는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나. 

 

양승명: 게임을 하던 유저분들이 NPC 설정 같은 걸 궁금해 하시더라. 캐릭터의 매력이나 인기 같은 걸 이용해서 스토리를 전달하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풀어놓기 보다는 이런 방식들을 찾으려 한다.​

 

이은석: 아직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 준비된 스토리가 많다. 이걸 NPC가 주절주절하면 유저들이 안 읽는다. 궁금하면 볼 수 있도록 블로그에 소설 같은 걸로 공개하는 이유다. 스토리팩은 기간 한정제로 몇 달 동안 열려 있을 것이다. 기간 내 스토리팩을 클리어하면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스토리팩은 계속 만들 예정이다. 

 

양승명:​ 좀 다른 얘긴데, 성향에 따라 게임에서 동기 부여가 잘 되는 분이 있고 잘 안 되는 분이 있다.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분들에게는 스토리를 따라가게 하면서 ‘지금은 이런 걸 하면 재밌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듀랑고> 의 여러 지원단체 중 ‘회사’소속의 K. 유저들에게 인기가 높은 NPC다.


게임에서의 동기부여? 좀 더 설명해 달라.


이은석: 음식에 비유하면 부페같은 거다. 이것저것 찾아서 집어먹을 수 있다. 근데 좀 귀찮다. 우리 게임에는 그런 수고로움이 좀 있다. 액티브하게 움직여서 본인에게 맞는 걸 찾아야 하는. 대신 맞는 걸 찾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출시 전부터 그런 콘셉트긴 했었다. 출시하고 나니 어떤가. 그런 그림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나. 

 

김주용: 그런 걸 좋아하는 분들에게 잘 맞는 것 같긴 하다. 방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예를 들어 나는 밖에서 운동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근데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재밌는거다. 운동을 싫어하는 분들께 ‘이런 것 한 번 해 보면 어떠냐, 막상 해 보면 생각보다 재밌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처음부터 <듀랑고>같은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다. 근데 혹시나 해서 들어와 본 분들이 ‘아 이런 것도 재밌네’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스토리팩도 그런 취지다. 게임의 정체성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혼자든, 함께든 재밌어 보이는 걸 찾아서 재밌게 노세요.’ 하지만 그런 게 잘 안 맞는 분들도 게임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만드는거다.

 

양승명: <듀랑고>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내재적 특징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누구든 시켜서 하는 걸 재밌게 느끼진 않는다. 유저에게 이걸 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내가 이걸 할 필요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좀 더 오래, 재미있게 플레이한다. 결국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어떤 가이드라인, 이번 업데이트에선 스토리팩 같은 걸 만든거다. 

 

이은석: 부페에 갔을 때, 최소한의 어떤 큐레이션을 해 준다고 보면 된다. “해산물 부페에 오셨나요? 쭈꾸미 철이니까 쭈꾸미 제맛 감상, 이번 철에 선보이는 스토리팩” 이런 느낌.


지금 <듀랑고> 세계에는 무엇이 있나. 유저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것들 말이다. 


이은석: 레벨업을 하면서 쭉 계속 올라가는 일자진행형 게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이런 표현이 있지 않나. <와우>는 만렙부터라고. 만렙이 되고 원하는 스킬들을 가지면 그걸 갖고 노는거다. 레벨업 과정은 학습 과정이었던거고. 

 

<마인크래프트>같은 게임에서도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고 한다. 우리는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추구했다. 듀랑고 맵스를 보면 그런 변화들이 잘 보인다. 사람들이 이주해왔다가 큰 마을을 만들었다가, 마을이 쇠퇴했다가, 또 다른 사람들이 오고. 그런 게 <듀랑고>가 지향하는 바였다.

 

 

계속 변화하고, 살아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가. 이은석 PD는 <듀랑고> 초창기부터 ‘창발성’을 얘기했다. 창발성을 키워드로 삼은 계기는 무엇인가. 


이은석: 늘 변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건 맞다.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창발성을 추구하게 된 순서다.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게임에 덜 질리게 하고 싶어서였다. 게임이 계속 변하면 덜 질릴 것 같았다. 

 

다시 순서를 정리하면 ‘덜 질리게 하고 싶어서 -> 변화하게 하고 싶었고 -> 창발성에 가치를 두게 됐고 -> 로우레벨로 디자인했다’ 가 맞다. <마비노기>나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할 때도 했던 생각이었고.  



참고 글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아미노산이라는 단위체가 서로 다른 순서와 배열로 연결되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들 다양한 단백질들이 세포 내 구성과 배열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세포를 만들어내고, 이들 세포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되고 상호 작용하면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매 단계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특성이 창발적으로 출현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 생물이 빚어지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된다는 상식적인 말이 창발성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반복플레이의 목적성이 잘 디자인돼 있는 <마비노기 영웅전>. 이은석PD가 <마영전>을 개발하며 했던 생각들은 <듀랑고>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로우레벨이 무엇인가.​

 

이은석: 게임 디자인 용어로 하이레벨(High Level), 로우레벨(Low Level)이라고 한다. 하이레벨 룰이 많을수록 창발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예를 들면 고수준언어, 저수준언어라고 한다. 고수준언어는 사람처럼 말하는, 자연어까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다. 굉장히 고도화 돼 있고 스마트한 언어다. 저수준 언어는 컴퓨터와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보면 된다.

  

아이템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날, 막대, 끈 속성을 가진 아이템을 조합하면 돌도끼를 만들 수 있다’ 이게 로우레벨 룰이다.  여기서 하이레벨 룰을 만든다면, ‘이미 완성된 도끼는 ‘날’의 속성을 갖더라도 다시 재료로 들어가지 않음’ 같은 게 된다.  ​ 

 

<듀랑고>는 로우레벨 위주로 디자인됐다. 의도적이었다. 인위적인 하이레벨 규칙들이 별로 없다. 생각치 못했던 조합이 나오거나, 의도치 않은 것들이 생겨난 이유다. 근데 온라인 게임이지 않나. 그런 의도치 못했던 것 때문에 공정성이나 밸런스가 무너질 때가 있다. 그래서 하이레벨 룰들을 만들어야 했다. 안전장치 같은거다. 

 

하이레벨 룰을 가급적 만들지 않고 로우레벨 위주로 게임을 디자인하다보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 많이 생겼다. 가공 횟수 제한이 없었을 때는 한 번 제련한 걸 계속 제련할 수 있었어서 오버플로우(연산 결과가 다룰 수 있는 수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가공횟수 제한은 2번으로 한다’라는 하이레벨 룰을 만들었다.


이은석이 생각하는 질린다는 건 뭔가. 더이상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건가.


이은석: 어떤 싱글 플레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똑같은 걸 하고 하고 또 하고, 무엇을 할 지 예상이 되는 상태. 그런 게 변화가 없는 상태일 거다. 바둑이나 PVP게임 같은 건 전략이나 전술이 계속 변한다. 늘 변하기 때문에 예상이 안 된다. 그래서 덜 질리는거다. 내가 예상한 일들이 뻔하게 벌어지지 않는 것. 

 

양승명: PVP 게임들은 매판 새롭지 않나. 똑같은 유닛으로 똑같은 맵에서 하는데 할 때마다 재밌다. 그건 매판 다르기 때문이고 다른 유저들로부터 오는 창발성 때문일거다. PVP게임은 창발성의 기초가 돼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PVE에서 계속 새로운 걸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니 창발성 개념이 나오는 것 같다. 

 

 

MMORPG에서 PVP게임처럼 매번 새롭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 창발성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 어려운 것 같다. 가능할까. 


이은석: 사실 듀랑고 맵스에서 시간 흐름에 따라 모습이 다이나믹하게 바뀌는 그런 부분에서는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법섬도 국경 자체가 계속해서 바뀌는 그런 모습을 원했는데, 몇 가지 문제때문에 원하는만큼 로우레벨식 디자인을 하지 못했다. 거점이라는 포인트를 두고, 거점을 점령할 수 있는 횟수도 제한하고. 창발성을 좀 제한한 부분이 있다. 밸런스를 위해 하이레벨 룰을 만든거다. 

<듀랑고>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듀랑고 맵스’


무법섬 얘기가 나왔으니 해 보자. 유저들 이야기가 많다. 일단 거점을 차지해야 할 당위와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김주용: 무법섬에서 경쟁이나 PVP를 더욱 부추기는 형태의 업데이트 계획은 현재 없다. 거점을 두 개 이상 획득하게 하면 하나의 부족이 거대한 세력이 될 수 있는데 현 상황에서는 그런 걸 좀 우려하고 있다.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장려할 일이다. 다만 혼자 하시는 분이나 소규모 부족은 지금 무법섬에 가는 걸 굉장히 꺼려하고 있다. 이런 분들이 무법섬에서 필요한 자원들을 잠깐잠깐 채집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시지 않는 것,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거점을 오래 점령했을 때 대단한 보상이 없는 것은 맞다. 열심히 하는 분들은 지금 ‘점령하면 좋고, 못 해도 상관없고’ 이런 상황이다. 가능하면 보상을 좀 더 강화하고 싶다. 보상이 아이템에 한정되지는 않을 것 같고. 거점을 오래 점령하고 있을 때 보상 강화하기, 세력이 작은 분들도 부담없이 무법섬에 들락거릴 수 있게 하기. 장기적으로는 이 방향으로 가려 한다. 사람이 많아야 재밌으니까 사람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 

업데이트 당시 공개된 부족전과 무법섬 콘셉트 이미지


<듀랑고>는 꽤 오래 개발했다. 지금 나오는 문제점들은 예상하지 못했나. 아니면 그런 문제점이나 불편함도 게임의 정체성인가. 예를 들어 이미 만들어 진 새끼줄이 또 새끼줄의 재료로 들어가는 UX같은 건 정말 불편했다.

 

양승명: 맞다. 불친절한 면이 있다. 제작 시스템에도 말한 것 같은 허점들이 있다. 새끼줄 말했는데, 당연히 새끼줄의 재료로 새끼줄을 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게임 곳곳에 그런 스마트한 하이레벨 룰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시간이나 리소스가 제한적이니까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약점과 강점 중 약점을 보완할 것인가, 강점을 강화할 것인가. 테스트 기간에는 강점을 강화하는데 좀 더 집중했다고 보면 된다. 이은석 디렉터 성향이기도 하다. 약점만 보완하다보면 결국 게임이 비슷비슷해 질 수 있다. 

 

물론 약점과 허점도 열심히 보완중이다. 다만, 우선순위가 있다. 빨리 보완할 수 있는 게 있고, 여러가지가 맞물려있어서 빠른 보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김주용: 5년 반 정도 <듀랑고> 팀에 있었다. 사실 개발 기간이 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통 템플릿이 존재하는 게임들이 있다. ‘이런 부분은 이렇게 디자인해야 해’라는 거다. 메뉴는 이렇게 배치하고, UI는 전체적으로 이렇게. 합의가 되어 있다. 개성을 아예 없앨 순 없으니까 몇 가지는 변형하는 식으로 디자인을 하는 경우인데, <듀랑고>는 그런 게임은 아니다. 

 

<와우>에는 5인 파티에 탱딜힐이 있고 공격대도 같은 구성이지 않나. <듀랑고>는 여러 직업들이 혼자서, 부족에서, 마을에서 플레이하는 것. 그게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파티플레이가 된다. 이것들은 모두 비동기화(서버, 클라이언트간 수많은 상호작용이 다른 쪽의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각자 작동하는 것)로 개발됐는데 그런 세계를 기반부터 만드는 것 자체가 일단 쉬운 건 아니었다. 

<듀랑고> 세계를 구성하는 부족. 그리고 그 부족을 구성하는 각 직업들.


이은석: 론칭 전보다 지금 개발팀 규모가 많이 커졌다. 유저분들의 요청들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보다 업데이트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 같다. 팀이 작을 때는 내가 여러 분야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팀이 커진 다음부터는 각 분야 방향성에 좀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거대한 파티플레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김주용: 개인적으로 <듀랑고>는 사회관계망에서 오는 재미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웃사람이랑 어떤 관계를 맺고, 부족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사회관계망이 움직이면 세상이 변화하는건데, 그런 망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한 장치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 

왓스튜디오는 혼자 <듀랑고>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고민중이다.


전체적인 파티플레이에서 역할(직업) 하나가 빠졌을 때 공동체가 무너지는 문제점이 있지 않나. 유저들 요청도 많이 들어올 것 같다.

 

이은석: 다같이 어긋나는 문제가 있는 것 인지하고 있다. 사람과 부딪히는게 피곤하니까 깊은 관계 맺지 않고 내가 할 일 하는 그런 거. 그게 요즘 트렌디한 RPG인데 우리 가치관은 그런 건 아니었다. 20세기 게임 같다는 말씀 주시는 분들 있는데, 맞다. 다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장터를 통해 교환을 한다거나 이런 것도 지금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업데이트되는 멀티 캐릭터 생성도 그런 취지다. 정말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면 서브 캐릭터를 한 번 이용해 보시라 이런 거. ​(김주용 디자이너에게) 부족 합병은 디자인 했나요?  

 

김주용: 디자인은 했는데... (웃음)

 

양승명: 누군가 빠졌을 때의 문제, 월드의 변화가 별로 재밌게 와 닿지 않는다는 문제를 MMO 측면에서 고민하고 있다. 부족 합병도 고려하고 있을 뿐 확정된 안은 아니다. 만약 요리사가 사라졌다면 요리사를 한 분 새로 모시거나 다른 부족의 요리사를 영입하거나 해야 한다. 근데 부족에 쌓인 경험치가 아까워서 못 나가는 분들이 있다. 이런 건 부족을 합병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준비 정도만 하고 있다. ​ 

부족에서 어느 한 직업이 이탈했을 때, 전체적인 생산 사이클이 무너지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매출이나 스토어 순위 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고 누누히 말해왔다. 그럼 내부에서 의미있게 보고 있는 지표나 유저들의 행동 패턴은 있나?

 

김주용: 지표는 양적인 것 아닌가. 나는 그런 걸 위주로 보진 않고, 우리가 운영하는 <듀랑고> 아카이브를 볼 때면 뿌듯하다. 사실 내가 <와우>를 십 몇 년 했다. <와우> 유저들은 본인이 겪은 일을 굉장히 많이 얘기한다. “내가 어떤 보스 잡을 때 부탱커를 했는데, 어그로를 놓쳐서 공대를 폭파시키고...” 뭐 이런 얘기들 말이다. 

 

얘기하는 거 좋다. 좋은데, 나는 이런 개인적 경험들도 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고 느꼈다. 유저들이 겪은 각자의 경험이 비슷한 기억으로 뇌리에 남는거다. <듀랑고>에서 초반에 언급된 케이스들은 뭔가 기괴한 시도나 참신한 ‘이상한 짓’에 치우쳐 있었다. 지금은 개인과 개인이 만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있다. 숫자로 나타나는 지표는 아니지만 이렇게 넓게 나타나는 경험의 스펙트럼들을 의미있게 보고 있다.

테마파크형 RPG 게임들의 경우, 업데이트에 따라 많은 유저들이 비슷한 경험을 동시에 하게 된다.


곧 단일 서버가 된다. 언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그런 넓은 경험적 스펙트럼도 예상하고 있나?

 

양승명: 글로벌 베타 테스트 때 각 국가 세력이 경쟁 양상으로 가는 그림이 이미 있었다. 사실 그런 양상이 되면 초기에 스트레스 받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초반에는 가급적 같은 언어를 쓰는 분들끼리 만나게, 도시섬까지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그 이상 고렙이 되면 불안정섬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도록 구상하고 있다.

 

이은석: 글로벌 베타 때는 ‘컬쳐샤드’라고 불렀다. 그때는 한국과 한국 외 나라들밖에 없었다. 해외 유저들 있는 섬 가 보면 막 전 세계 언어가 다 채팅창에 올라온다. 맨 처음 자기 사유지 한 칸 정하면 표지판 만들지 않나. 그 때 하는 게 바로 자기 나라 국기 그리는 거. 그리고 자기나라 사람 찾아서 친구 맺고 그런 거. 

 

그걸 보면서 되게 재밌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게임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 우리가 듀랑고 세계로 가도 비슷할 거다. 자기 나라 사람 찾고, 부족 만들고. 실제로 게임 디자인에 그런 부분이 반영되기도 했다. 

단일 서버가 되면 표지판의 역할이 더 다채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유저들의 가장 주요한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있다면?

 

양승명: 안정성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게임을 좀 더 쾌적하게 플레이하도록 하고 싶다. 의도했던 재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고민 중이다. 전투 시스템은 아예 제로 베이스에서 구상도 해 보고 있다. 

 

고민되는 건 ‘내구도’다. 사실 <듀랑고>의 내구도는 게임의 경제 시스템에 속하는 개념이다. 온라인게임에서 화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발사는 계속해서 화폐를 없애야 한다. <듀랑고>에서는 그게 가공품에까지 적용되는거다. 모든 아이템이 경제 시스템에 포함돼 있다. 가공 스킬 보유자가 계속 존재하려면 도구들이 계속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와 달리 게임의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내구도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밸런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중이다. 경제 시스템을 지키면서 유저분들이 내구도를 쾌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지점.

도구는 반드시 사라진다. <듀랑고>의 내구도는 도구 시스템 그 이상을 의미한다.


어려운 문제 같다. 내구도 문제는 복귀 유저들도 크게 느끼는 부분일 것 같은데.

 

양승명: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사유지를 영원히 보장해 주려면 세계를 무한히 확장시켜야 한다. 빈 땅들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도 너무 멀어질 거다. 만료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바구니나 상자에 있던 물건들도 사라지게 된다. 복귀 유저분들께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복귀를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복귀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혜택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시작으로 그 분들이 빨리 페이스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복귀 유저 전용 퀘스트 같은 것들도 지금 있고.

 

 

만렙 이후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양승명: 분명 게임을 하는 분들께 내 캐릭터, 나의 부족이 점점 나아지는 느낌을 줘야 하는 건 맞다. 사실 그건 게임을 왜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와우>는 장비를 얻어서 더 센 몬스터를 잡고, 거기서 또 장비를 얻어서 더 센 걸 잡고 이런 게임이다. <듀랑고>는 그런 게임은 아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고, 집과 마을을 꾸미고. 이런 것을 재미있게 하는 게임이지. 

 

레벨업때 하던 걸 만렙 이후에도 계속 반복해서 하는 건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 만렙 이후에 어떤 플레이를 하게 해 줄 것인가인데. 김주용 디자이너가 ‘이사’를 아이디어로 내기도 했다. 이건 유저분들이 실제로 보내준 제안이다. 처음에 터 잡고 구역 나누고 꾸미고 하는 게 너무 재밌으니 이사를 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달라고.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강제로 이사를 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웃음)

 

김주용: 그렇게 할 수 있다. (웃음)

 

양승명: 지금은 사유지를 넓게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돈도 많이 든다. 나 사는 집 정도 꾸미고 나면 뭔가 더 하기에 부담이 된다. 그럼 새로 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걸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사실 대안도 있는데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고. (웃음)

혼자 사유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은 개선될 예정이다.


‘유저들이 이렇게 놀았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 주면 유저들이 그걸 재밌게 할까’ 인건가.


양승명: 맞다. 만렙 확장 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다. 사실 확장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신규 유저들도 힘들어 하실 수 있고. 우리는 그런 수직적인 확장보다는 같은 볼륨에서 재밌을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한다. 

 

김주용: 실제로 자연재해를 일으켜 달라는 유저분도 계셨다. 자연재해를 일으켜서 내 사유지를 부숴달라. 다시 만들 수 있도록. (웃음)

 

 

자연재해 좋은 것 같다. 물론 실제로 적용되면 난 욕할거다. 

 

김주용: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아이디어는 많다. 페나코두스가 마을에 왕창 쳐들어와서 상자의 내용물을 다 섞어버리는 그런 거. (웃음) 근데 이건 부수는 것보다 유저분들이 더 싫어하실 거라는 의견이 있었다. 

윗줄 가운데 노랗고 귀여운 게 페나코두스다.


당연히 더 싫어할 것 같다. 메뚜기 떼 같은 건 어떤가. 쓸고 지나가면 건축물 내구도가 확 깎인다던가. 

 

김주용: 우스개 소리나 아이디어야 많은데, 당연히 엄청나게 고민이 된다. <듀랑고>는 캐릭터에 장비나 레벨 같은 게 누적되지 않고 사유지에 모든 게 누적되는 게임이다. 사유지가 파괴된다는 건 60레벨짜리 캐릭터를 순식간에 30레벨로 낮춰버리는 것과도 같다. 농담삼아 얘기하지만, 너무 파괴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적용하기는 좀 힘든 아이디어다. 그런 환경을 유저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고민은 하고 있다. 

 

이은석: 사실 그냥 우스개 소리로 하긴 재밌는 얘기들이지만, 많은 교훈을 얻기도 한다. 내구도 부분도 너무 고민이 되고 그 고민이 계속 이어지는 상태다. 

 

일반적인 온라인 MMORPG에서 내가 공격력 100의 칼을 가지고 있다 치자.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달을 보낸다면 사실상 뒤로 가는 게 된다. 계속 200, 300짜리 칼이 나와서 그게 표준이 되니까. 이걸 ‘붉은 여왕* 효과’라고 한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거다. 우리나라 게임들은 이것에 좀 강하게 포커싱이 돼 있는 경향이 있다.  



‘붉은 여왕’이라는 말은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주인공 앨리스에게 말하는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소설 속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끊임없이 달려야 겨우 한발 한발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위키백과

아무리 좋은 무기가 업데이트 돼도 언젠가는 사라지거나 잊혀진다.

가만히 있어도 뒤로 간다면 계속 200, 300짜리 칼을 업데이트 할 게 아니라 장비에 자연 수명을 부여하면 어떨까 싶었다. 도구가 사용되지 않는 것도 사라지는 걸로 본다면,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도구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같은 개념이니까.

 

근데 이걸 실제로 해 봤더니 사람 심리가 그렇더라. 심리학적으로도 있는 얘긴데, 100원을 버는 기쁨보다 100원을 잃는 상실감이 더 컸던거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데 내구도가 줄어든다는 것에 네거티브한 감정을 느끼는 거다. 이런 유저분들의 심리를 인지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고. 그런 심리적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여러 안들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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