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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18] 12년차 레벨 디자이너가 정의하는 '레벨 디자인'

조회수 2018. 4. 25. 17: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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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닉스 이용태, 레벨 디자인의 개념 정의

소프트닉스의 이용태 레벨 디자이너가 NDC 강단에 올랐다. 그는 레벨 디자인 경력만 12년에 달한다. <오버워치>나<리그오브레전드>의 닉네임도 ‘레벨디자이너’일 정도로, 레벨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크다.

 

레벨 디자인은 <팩맨>이나 <하프라이프2>같이, 출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게임들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 그러나 레벨 디자인이 무엇이고, 레벨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정의를 내려 주는 사람은 드물다.

 

이용태 디자이너 또한 과거에 “(레벨 디자이너로서)기획 팀에 소속되고 싶냐, 아트 팀에 소속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여러 회사에서 똑같은 ‘레벨 디자이너’ 직군을 달고도매번 다른 일을 해 왔었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그런 모호함을 해결하고자 강연을 준비했다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소프트닉스 이용태 레벨 디자이너


# 레벨 디자인은 '각종 선택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이용태 디자이너는 레벨 디자인 개념 설명에 앞서, 레벨 디자이너가 게임 개발 팀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개발 팀은 보통 프로그래밍, 아트, 기획의 세 분류로 나뉘어져 있고, 기획팀에서도 시스템 기획과 컨텐츠 기획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 중 컨텐츠 기획의 하위 분류로서 레벨 디자인이 존재한다.

레벨 디자인은 가장 작은 분류 중 하나이지만, 게임 제작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는 컨텐츠 기획에 속한 레벨 디자이너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청중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해 왔던 일을 예시로 들었다. 배경 모델링을 해야 할까? 기획서를 작성해야 할까? 밸런스를 조절해야 할까? 모두 이용태 디자이너가 지난 회사에서 해 왔던 일이지만, 그는 “모두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레벨 디자이너는 캐릭터나 아이템, 몬스터, 배경 등의 게임 시스템에, 지형이나 장애물 등의 환경 요소를 덧붙여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레벨 디자인을 정의했다. 굳이 장애물이나 지형이 아니더라도, 몬스터의 공격 패턴이나 플레이 패턴 등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든 레벨 디자이너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게임 플레이’란 무엇인가. 이용태 디자이너는 게임 플레이를 “유저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문명>시리즈를 제작한 시드마이어가 했던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유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많은 선택지와 직면하게 된다. 두 갈래 길을 마주치게 될 수도 있고, 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FPS에서는 엄폐물의 높낮이에 따라 공격을 이어 나갈지, 숨어있어야 할지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요점은, 그 선택지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한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선 안된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의미 있는 선택’의 조건을 네 가지로 정리해 조언했다.



1. 인지/ 플레이어가 선택지 앞에서 유불리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선택지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2. ​게임 플레이 결과/ 만약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두 선택지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야 한다. 위험하지만 보상이 큰 길 vs 안전하지만 보상이 작은 길 과 같은 유형이 그 예다. 두 선택지 모두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선택지의 의미가 없어진다.

 

3. 상기/ 레벨 디자이너는 한번 사용했던 패턴(선택지)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플레이어가 이전에 겪었던 패턴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억을 통해 이후의 패턴을 극복할 수 있도록.

 

4. 영속성/ 만약 패턴을 겪고 그것을 해결했다면, 그 보상은 유지되어야 한다. 만약 패턴을 해결한 보상이 날아가 버린다면, 그 패턴을 극복한 의미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정리하자면, 레벨 디자인은 캐릭터나 몬스터 같은 게임 시스템과, 엄폐물이나 발판 같은 환경 시스템을 결합해, 유저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의 의미에서 유저는 재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유저가 게임에 몰입하도록 하는 방법

 

그렇다면, 이런 의미 있는 선택(패턴)을 계속 넣으면 재밌고 좋은 게임이 될까? 이용태 디자이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선택 앞에서 한 가지 선택지를 고르는 과정은, 유저에게 있어서 ‘어려움’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슈퍼마리오>에서 발판 위에 올라설지, 몬스터를 밟고 지나갈지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선택의 과정이 쉴 새 없이 지속되면 유저는 큰 어려움을 느끼고, 금방 지쳐 떨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턴의 난이도를 유기적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 조절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칙센트의 ‘몰입이론’을 참고했다. 난이도와 플레이어의 실력 사이에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 몰입이론의 요점이다.

난이도는 높은데 유저의 실력은 낮으면 유저는 불안함을 느낀다.
반대로 난이도는 낮은데 유저의 실력이 높으면 유저는 지루함을 느낀다.

유저의 실력이 점차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게임의 난이도 또한 그에 발맞춰 점진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 몰입 이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각 패턴에 난이도 점수를 매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게임을 만드는 과정을 가정해 설명했다. 적을 밟고 죽일 수 있는 패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몬스터, 낭떠러지 패턴의 세 가지 패턴이 있을 때, 각 패턴의 난이도를 고려해 점수를 매긴다. 근접 공격 몬스터는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으니 2점, 원거리 공격 몬스터는 3점, 낭떠러지는 2점을 매기는 식이다.

 

이러한 패턴을 조합한다. 각 패턴을 A, B, C 패턴이라 가칭하고 AB(근접 공격 몬스터와 원거리 몬스터가 함께 나옴)패턴, AC(낭떠러지 끝에 근접 공격 몬스터가 있음)패턴을 만드는 식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조합에 따른 난이도를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유저에게 패턴을 한번씩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패턴을 인지시키고, 점점 더 복잡한 패턴을 내놓아야 한다. 이에 따라 유저의 실력이 점차 늘어날 때, 게임의 난이도도 발맞춰 점차 어려워 지게 된다.

 

난이도 점수를 통해, 조합된 패턴의 난이도를 통계적으로 산출할 수 있고, 이를 그래프로 만들어 난이도의 흐름을 보기 쉬워진다. 어려운 패턴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휴식’(혹은 보상)이 주어지게 되고, 따라서 이상적인 난이도의 흐름은 물결 모양(어려웠다가 휴식을 주고, 다시 어려웠다가 휴식을 주는 식)이 된다. 몰입 이론의 그래프 모양과 흡사한 모양이다.

몰입 이론 그래프 가운데에 있는 물결 모양과 비슷한 모양이 나타난다

다만 난이도 점수를 매길 때 주의사항이 있다. 팀 구성원의 난이도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  각 사람마다 느끼는 난이도는 다르고, 이는 개발자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 난이도 점수를 일종의 “규격”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는 “레벨 디자이너끼리 생각하는 난이도(밸런스)가 다르다. 토론을 통해 이 규격을 통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규격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맵을 만들어버리면, 수정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 알고 있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 '지식의 저주'

 

레벨 디자인의 개념을 잘 인지하고, 몰입 이론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도 잘 조절했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너무 어렵다”고 아우성친다. 왜 그런걸까?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와 같은 현상을 ‘지식의 저주’로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신입 레벨 디자이너들이 이 ‘지식의 저주’에 잘 빠져든다고 설명했다. 지식의 저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발생한다. 개발자들은 ‘초심자’를 잘 이해할 수 없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없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벨 디자이너들은 결코 ‘처음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처음 하는 상황이라 가정해도, 이미 개발자의 머릿속엔 게임의 지식이 들어가 있다. 게임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테스터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플레이 테스트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면 지식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다만, 그는 테스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몇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1. 테스터에게 아무런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2. 테스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표정, 감정, 손 움직임 등을 관찰한다.

3.  관찰 내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 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빠짐없이 작성해야 한다.

4. 관찰 이후 전체 피드백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테스터의 피드백을 직접 이야기로 듣는다. 이 때 적극적인 회의 문화를 공유하게 되면, 이후 테스터들이 피드백을 더 잘 준다.

5. 이 피드백 결과를 전문가 그룹(기획자, PD 등)이 검토한다. 어떤 피드백이 유용한지, 혹은 무의미 한지 걸러내야 한다.

6. 테스터의 플레이에 절대 개입해선 안된다.



이러한 테스트와 피드백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남은 작업은 그를 토대로 수정하는 작업이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평가가 좋지 않다 해서 당황하지 마라. 다양한 사람에 따른 다양한 피드백이 있다. 피드백은 나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할 만한 의견을 듣는 과정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또한 처음 기획했던 의도를 되돌아 볼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획은 난이도의 흐름을 발하는데, 테스터의 플레이를 보면 자신이 의도한 대로 난이도를 체감하는지 볼 수 있다.

 

만약 의도한 난이도와 다른 반응이 나온다면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패턴의 난이도를 낮추거나, 패턴의 조합을 바꾸던가, 기획 의도 자체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렇게 수정하다 보면 내 기획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내 기획에 확신이 없다면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가져라”라고 말하며, 피드백에 따른 수정을 겁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반대로 뿌듯한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조악하고 ‘별로인 것’ 같았던 맵이, 피드백을 거듭해 나가면서 좋은 맵으로 바뀌어 나가는 경우가 그런 경우다. 이용태 디자이너는 “이렇게 명과 암이 공존하는 것이 레벨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질문과 답변

 

다음은 강연이 끝난 후 이용태 디자이너에게 들어온 질문과 그 답변이다.

 

 

Q. 난이도 흐름 사이사이에 휴식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휴식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이용태 레벨 디자이너: 자신의 경험으로 파악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기획자는 ‘지식의 저주’때문에 휴식이 지나치게 길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래 쉬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 그러니 휴식 기간을 좀 넉넉히 준다는 느낌을 가지면 좋다.

 

 

Q.실제 게임 업계에서 레벨디자이너의 수요와 공급은 어떻게 되는가.

 

10여년간 일하면서 100명 정도의 레벨 디자이너를 본 것 같다. 기획과 레벨 디자인을 겸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은 힘들다. 그러나 레벨 디자이너의 역할이 뚜렷하고, 회사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다.

 

 

Q. 허술한 레벨 디자인이 오히려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게임의 재미를 명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하고, 그에 따라 재미도 다양한 부분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항아리 게임을 보면, 개발자는 레벨 디자인에 신경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화제가 됐다.

 

 

Q. 테스트 과정 중 피드백에 휘둘리는 것과 자신의 기획을 고집하는 것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는 노하우가 있는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질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중도를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핵심은, 피드백을 받을 때 본인의 의견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피드백에 대해 ‘변명’하지 마라.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 피드백에 대해 ‘이거는 이래서 이렇게 했다, 이렇게 할 예정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자신의 말에 휘둘리는 경우도 생기더라.  

"과거 받았던 질문에 지금 답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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