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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관계자들, "게임 장애 질병 분류 아직 성급하다"

조회수 2018. 3. 12. 14: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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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의 국제 질병 분류 개정안에 대한 토론에서 밝힌 의견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 국제 회의실에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게임 과몰입 현상을 질병인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로 분류하려는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토론회에는 의학과 인문·사회학 분야를 비롯해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참석해 해당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행사에 참석한 주요 연사들의 메시지를 정리했다.



# "게임 과몰입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불완전하다"  

 

토론회는 한덕현 중앙대 정신의학과 교수의 발제로 시작됐다. 한 교수의 발제는 인터넷과 게임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게임 장애'까지 흘러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게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인터넷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1996년 ​발표된 킴벌리 영의 연구가 인터넷 문화와 관련된 첫 '중독' 보고 사례라는 것이다. 해당 연구에 등장하는 사례는 6개월간 60시간 정도를 인터넷 채팅에 사용한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과거 약물 중독이나 정신 질환 진단 병력은 없었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당시 미국 정신 의학계에는 킴벌리 영 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이 보고됐다. 학계는 이를 인터넷 중독 증상으로 규정짓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에 이용된 인터넷 사용 진단 문항은 약물 중독자에게 주어지는 설문지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한덕현 교수는 "만약 약물 중독 진단 문항이 아닌, 불안장애 설문지를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됐다면, 게임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취급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게임과 인터넷에 대한 연구에 불완전한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각 연구 별로 기준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자는 중독의 기준을 7시간으로 뒀고, 어떤 연구자는 50시간으로 두기도 했다. 인터넷 사용 목적에 대한 구분도 충분치 못했다. 인터넷, SNS, 쇼핑 등 이용자 패턴은 다양했지만, 일부 연구는 이를 하나로 묶여 진행했다.

 

또한, 인터넷 게임 과몰입 연구 대상자가 된 사람은 다양한 정신 질환 증상을 함께 보인다. 10명 중 7명은 우울증 증상을 함께 보이며, 60% 대상자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증상도 함께 보였다. 한덕현 교수는 연구 대상자의 증상이 다양한 질병을 같이 앓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순수하게 ‘게임이 문제' 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게임 장애'는 다양한 이유로 정식 질환으로 분류되지 못했다

한 교수는 특정 요소가 중독의 원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성'과 '금단증상'에 의학적 기준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경우 '내성'은 지속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져 더 큰 자극이 필요한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은 반복적으로 플레이 할 경우 그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 내성의 개념과 크게 다르다는 설명이다. 

 

금단증상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금단 증상으로 회자되는 '코드 뽑아버리면 화낸다' 같은 논리는 어떤 취미 활동에도 해당하는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러한 부분 때문에 이번에 등재되는 국제 질병 분류 개정안 초안에는 '내성'과 '금단증상' 부분이 빠진채 등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교수는 WHO의 '게임 장애' 질병 등재의 근거가 되는 논문은 현재 학계에서 반박 논문이 제기 됐으며,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인 상태라고 전했다.

 

 

# 사람들이 게임을 무서워하는 이유

 

두 번째 연사는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였다. 자신을 '미디어 학자'로 소개한 윤 교수는, "게임은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며 접하는 자연스러운 매체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윤 교수는 정치와 언론,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의사들이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에 게임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만화와 TV를 공격하던 논리를, 뉴미디어인 게임으로 옮겨와 손쉽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는 게임을 두려워하는 현상을 '게임포비아'​라고 설명하며 이에 해당하는 4가지 논리를 설명했다. 각각 '주변화', '미성숙', '신체 훼손', '현실적 유용성'이다.  

 

먼저 '주변화'는 게임과 게이머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성이 부족해 게임에 빠지게 된 사람이 있더라도, 선후를 바꿔 '모자란 사회성의 원인이 바로 게임'이라는 논리로 게임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게임에 관련된 사람이 집단에서 배제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미성숙'은 게임이 교육과 자기계발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다. 이는 게임의 주 이용층을 '청소년' 또는 '중고생'으로 전제하고, 게임을 교육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만든다. 이러한 논리는 게임이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뇌를 비정상적으로 발달시킨다는 연구들을 근거로, 게임에 노출된 청소년이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날 수 없다는 공포심을 심는다. 

 

'신체 훼손'은 게임이 건강을 해친다는 논리다. 주로 기성 언론과 과학이 쓰는 방식이며 게임을 건강한 신체 발달과 무병장수를 위협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이러한 논리가 힘을 얻는 이유는 게임을 할 때 건강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찾기 어려워서다. 해당 논리 앞에 게임은 때리기 좋은 허수아비가 된다.

 

마지막은 '현실적 유용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게임을 현실에 도움 될 것이 없는 행위이자, 허무한 행위로 취급하는 논리다. 윤 교수는 영화와 소설 같은 문화도 허구 속 세계를 체험하는 '예술'이지만 유독 게임만이 빠져나와야 할 나쁜 세계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공포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연구, '도덕적 공황 이론'

그는 이러한 게임에 대한 공포 담론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된다고 주장했다. 2017년 발표된 해외연구 '도덕적 공황 이론(Moral Panic Theory)'의 내용처럼 "선정적 보도에 의해 만들어진 공포가 대중에게 확산되고, 나아가 정치권에 인용되며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언론이 과장한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이, 공포에 휩싸인 여론과 정책, 학계 연구를 통해 '게임은 유해물질'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출된 결론은 다시 선정적 보도에 인용돼 게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새로운 연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그는 "게임포비아는 20년 전 게임이 처음 유행했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개념"이라고 말했다. 우려와 비난이 계속됐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부 중독 증세를 가진 게이머도 있지만, 이들의 숫자가 증가했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 성급한 '게임 장애' 분류가 진짜 질병 만든다

 

세 번째 연사는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이 맡았다. 이 소장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성급한 게임 장애 질병 분류는 혼란만 초래할 뿐"이라며, WHO의 일방적인 결정이 예상치 못한 진짜 환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게임 장애'라는 구분이 단순한 이름 짓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불리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환자로 규정지으면, 어느 순간 진짜 병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또한, 이 소장은 게임 장애의 질병 분류로 인한 부작용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장애가 정신 잘환으로 분류되면, 이를 통해 군 면제를 받으려는 사람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특정 범죄자가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게임 중독을 원인으로 돌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게임 장애가 정식 질병으로 등재되면, 나아가 사람들에게 진짜 질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악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소장은 "정신 질환에는 완치가 없다"며, 게임 과몰입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과도한 의료비 지출과, 사회 활동의 제약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 장애'가 일종의 사회적 낙인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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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주 소장은 WHO의 움직임이 게임 산업 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적당히 해서는 창의성이 나올 수 없다"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며, 창작자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밌게 만들되, 너무 오래 즐기게 만들지 말라"는 요구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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