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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은 이제 겨우 국민, 사회복무요원은 아직 국민 아님

조회수 2017. 4. 4. 21: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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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은 '이제 겨우' 국민자격을 얻었지만, 사회복무요원은 '아직' 국민이 아니다. 선거운동이라는 참정권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구성원인 국민이 정치적 자아를 차별 없이 실현하는 국가이다. 국가의 최고권력인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이 위임하는 것이다.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정치공무원을 뽑는 선거는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가운데 적임자를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선거가 국가권력에 의해 규제되거나 사회적 유력자에 의해 방해될 때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은 왜곡되고 민주공화국은 ‘불완전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유통이 자유로울 때라야 선거는 본래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깜깜이 선거”나 맹목적 “인기투표”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선거운동의 자유는 선거권을 의미있게 만드는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주권자 국민의 핵심적 기본권이다. 선거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선거권이 없다는 것에 버금가는 억압이고, 주권자의 자격이 없거나 행사할 능력이 없다는 것, 한마디로, 국민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전근대적 ‘제한선거’의 유령과 공직선거법

전근대적 신분제 사회를 타파하고 국민주권을 성취한 이후의 서구에서도 100여 년 넘게 ‘제한선거’ 원칙이 기본으로 여겨졌다.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거나 충실한 시민 교양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노동자, 농어민, 여성, 청소년 등은 선거권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오랜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들 ‘국민 아닌 국민’들이 차례차례 선거권을 획득하면서 오늘날의 ‘보통선거’원칙을 쟁취해 내었다. 이러한 쟁취의 역사에 둔감한 국민들이 선거권을 가볍게 여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참여를 소홀히 한다. 그 결과는 국민을 주권자로 여기지 않는 ‘그들만의 공화국’이다.

선거인의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보통선거’는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쟁취한 헌법상의 권리, 국민의 권리다.

정치 과정을 주권자가 주도하지 못하는 ‘불완전 공화국’은 자발적 주권포기자에 의해서만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선거의 자유, 특히 후보자를 자유롭게 평가하고 자신의 판단을 동료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전파하는 자유선거가 억압될 때에도 민주공화국은 미완성이다.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에는 전근대적 ‘제한선거’의 유령이 다양한 선거운동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배회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과 교원 등 다른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기 쉬운 지위에 있는 국민은 ‘무늬만 국민’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모르게 투표할 권리만이 보장되고 누가 국민을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인지 말하고 설득할 자유는 없다. 공무원과 교원처럼 공공성을 겸비한 국민의 의견을 공유하지 못하는 선거는 ‘깜깜이 선거’로 전락하는 원인이 된다.

사회복무요원은 국민이 아닌가?

사회복무요원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부정한 '사회복무요원 사건'(2016헌마252)은 아직도 ‘제한선거’의 유령에 사로잡힌 6인 헌법재판관의 전근대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공무원이 아닌 사회복무요원도 공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 전념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선거에서 공무원의 국민자격을 박탈한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정책결정의 재량은 없고 오로지 행정 및 사회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단순하고 기능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사회적 영향력을 높게 볼 수 없는 사회복무요원마저도 국민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다수의견이 이유로 든 정치적 중립성은 오히려 사회복무요원의 기본적인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 논거여야 한다. 헌법 제7조 제2항이 직업공무원에게 보장하는 정치적 중립성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부당한 상급자의 영향력으로부터 지켜주는 데 기본목적이 있다는 점을 오해하고 있는 헌재의 시대착오적 입장이 직업공무원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에게도 부당하게 유추적용된 것이다.

관권선거가 걱정된다면 선거법을 위반하는 상급자를 규제하면 될 것이지 사회복무요원의 국민 자격을 제한할 일이 아니다. 업무 전념성을 근무시간이 아닌 일상적인 국민생활의 영역까지 확대한 인식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임은 물론이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적인 기본권을 이처럼 막연한 우려만으로 부정하는 입법자나 이를 옹호하는 헌법재판관은 민주공화국 국민이 가지는 자격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한다.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일부의 부작용을 염려하여 외견상 일반 국민과 구별되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에게 일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이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는 판단에는 민주공화국 선거에서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예외여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헌법적 가치 기준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선거에 대한 규제는 오로지 선거의 자유가 오남용되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예외적 경우에만 정당화되어야 한다. 불분명한 공정의 효과를 위해 국민의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예외를 원칙으로 만드는 주객을 전도시킨 것이다.

그래도 언론인은 국민이다?

사회복무요원의 국민 자격 박탈을 추인한 헌재가 비슷한 시기에 언론인의 국민 자격을 복원시키는 결정(2013헌가1)을 내린 것은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심정을 숨길 수 없다.

비주류 언론계의 슈퍼스타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를 5년 동안 피고인 신분에 묶어 두었던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5호 위헌제청사건에서 헌재는 7대2 위헌결정을 내렸다. 사회복무요원 사건에서 합헌의견을 낸 박한철, 이정미, 이진성, 서기석 재판관이 위헌결정에 가담한 것이 변수였다.

이들 4인의 재판관은 법치주의의 핵심요소인 명확성을 결여하여 행정입법에 처벌 대상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는 점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또한, 언론인은 언론매체를 통할 경우에만 그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특별한 구별사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클 수 있는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도 공무를 수행한다는 형식적 요인만을 내세워 사회복무요원의 선거운동제한을 허용한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보통선거와 자유선거의 원칙이 가지는 근본적 의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선거운동의 자유가 왜 국민주권을 구성하는 선거권의 전제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 왜 공무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지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원칙적 사유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국회는 물론 헌재에 필요한 이유다.

언론인은 ‘이제 겨우’ 국민자격을 얻었지만, 사회복무요원은 ‘아직’ 국민이 아니다. 선거운동이라는 참정권의 관점에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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