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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빅데이터

조회수 2016. 10. 15. 23: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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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빅데이터

8월 12일은 홈플러스 형사재판 2심 선고가 있던 날이다. 방청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오는데 머리가 멍했다. 지난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워서 밤마다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판사님의 판결 내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무죄, 포인트는 ‘나도 모르는 새’ 

홈플러스는 무죄다. 경품응모권은 건당 1천9백8십 원, 온라인 회원정보는 2천8백 원씩 받고 팔아 총 231억 원을 벌었다. 소비자들은 자기 정보가 팔리는지 몰랐다. 하지만 무죄다. 보험사도 무죄다.


개인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가는 것을 소비자들이 몰랐다는 사실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소비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나머지 소비자들이 “알고 동의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당신 개인정보를 돈 받고 팔았소”라는 얘기를 소비자가 듣지 못했다는 것은 판사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법에 ‘유상판매 여부’를 알리고 동의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정보가 팔렸다니!” 소비자들이 홈플러스 사건에 분통이 터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고 맡긴 자신의 개인정보를 홈플러스와 보험사, 자기들끼리 사고팔았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포인트는 ‘나 모르는 새’에 있다.

  • 도둑 장려하는 국가, 법 비웃는 기업. 이렇게 남는 장사를 누가 그만 둘까?

한국 빅데이터 시대의 개막  

한국의 빅데이터 시대는 소비자들에게 이런 풍경으로 시작되었다. 빅데이터는 가능성도 크다. 특히 서울시 심야버스처럼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노선을 짜면 시민들을 위한 훌륭한 공공서비스가 가능하다. 문제는 기업들이 소비자 모르는 새 자기들끼리 마구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빅데이터이다.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춤 표적으로 삼는 마케팅이 횡행하고, 급기야 경제력과 건강 상태에 따라 소비자를 차별하는 빅데이터이다. 빅데이터가 홈플러스 사건의 우울한 확대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소비자 보호와 함께 갈 것인가.


한국 소비자들이 만나는 빅데이터는 우울할 가능성이 더 높다. 홈플러스와 다른 법정에서는 IMS헬스코리아 형사재판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전국 약국과 병원에서 수년간 환자 처방정보가 팔렸다. 환자들은 몰랐다. IMS헬스코리아라는 다국적기업이 약국과 병원에 설치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들의 정보를 샀다. 우리나라 4천4백만 명 국민 질병정보를 사는 데 19억3천만 원을 지불하고 미국 본사에서 빅데이터 처리를 한 뒤, 국내 제약회사에 70억 원을 받고 되팔았다. 최소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약국·병원에 들른 적이 있는 국민 대개가 피해를 보았다.

  • ⓒSBS 관련 보도 캡처

그리고 지난해 9월, 하버드대 연구진이 IMS헬스에 팔린 것과 동일한 한국인 주민등록번호 암호를 풀어서 논문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국제적인 망신이다. 이 지경인데 대한민국 정부 어느 누구도 IMS헬스에서 사간 4천4백만 국민 개인정보를 회수해 오지 않았다. 이 미국 빅데이터 업체는 하버드대에서 풀은 한국인 주민번호는 물론 이와 묶여 있는 처방정보 등 민감한 우리 국민 개인정보를 지금도 팔고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 + 박근혜 = 망했어요

빅데이터 시대 한국 소비자를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박근혜 정부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정보 5조 건을 다 팔아버릴 기세다. 어지간히 마음이 급하다.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체 모를 창조경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당선되었는데 정권 말기에 이를 때까지 성과가 오리무중이다.

  • 박근혜 공식앨범, 창조경제 정책발표, 2012년 10월 18일. (CC BY NC SA)

빅데이터 하나라도 성과를 내겠다고, 청와대 지휘하에 정부 부처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 5월 대통령이 직접 주무한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는 빅데이터 산업을 위해 개인정보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업들이 소비자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사전에 동의를 받는 것이 대표적인 규제로 지목되었다.


문제는 그 개인정보 규제라는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와 이용자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는 것이다. 2014년 카드 3사에서 1억 4백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박근혜 정부는 빅데이터 창조경제를 위해 이제 보호 장치들을 우회하거나 뜯어고칠 요량이다. 


지난 6월 30일, 정부는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명 처리 등 비식별화 처리를 하면 개인정보를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해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고, 판매도 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바다 건너 IMS헬스가 4천4백만 전 국민 주민번호와 처방정보를 다 풀어서 가지고 있는데 가명 처리로 개인정보가 보호될 것이라고 약을 친다. 사실은 보호에 관심이 없다.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면’ 정보주체의 동의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은 소비자 동의절차가 너무 지나쳐서 빅데이터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열불나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미 지나치게 소비자 개인정보를 팔고 있다. 사건이 커지지 않은 것은 홈플러스와 약학정보원 등이 개인정보 판매 사실을 당사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 2011년부터 보험사에 개인정보가 팔린 홈플러스 고객 정보가 2천4백만 건이고 미국 빅데이터 기업에 개인정보가 팔린 처방정보가 47억 건인데 대다수 마트 고객들과 환자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팔린 지 모른다.

얼마 전에는 롯데홈쇼핑이 고객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판 사실이 드러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물렸다(관련 기사).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 개인정보를 사고팔고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확실한 사실은 대단히 많은 개인정보를 자기들끼리 오래전부터 사고팔아 왔다는 것이다.

박근혜식 빅데이터 시대

이것이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박근혜식 빅데이터 시대이다. 빅데이터는 그냥 덩치가 큰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차량에 설치된 빅데이터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은 소비자의 평소 운전습관은 어떤지, 급정거를 하는지 급커브를 트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정보를 수집한다. 보험사는 그 정보를 사서 소비자를 자동으로 분류한 후 보험료를 차등 청구한다. 혹은 병원에서 사 온 질병정보를 토대로 누군가의 보험금 청구를 거절할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그 과정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정보로 자신이 분석되고 분류되고 차별받는데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선택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세계 여러 전문가들이 빅데이터 시대에 소비자 권리가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내 보험료가 갑자기 올랐는데 어떤 로봇이 어떤 근거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반박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 말이다.


빅데이터 산업과 소비자 보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는 없을까? 해결책은 소비자 알 권리와 선택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빅데이터 시대를 앞서가는 유럽과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기로 한 듯하다. 유럽연합은 올 4월 14일 새로운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통과시켰다. 소비자들은 자신을 ‘싱글족’인지 ‘가임여성’인지 분류하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게 했다.

  • 유럽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미국은 통신이용자에 대해 사상 첫 옵트인(opt-in; 사전동의) 도입을 앞두고 있다. 올 4월 1일 연방통신위원회가, 통신이용자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쓰려는 기업들은 소비자 동의를 사전에 받아야 하는 ‘옵트인’을 명시한 규칙안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 통신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빅데이터 시대 소비자 권리 역시 놓치지 않으려는 제도적 변화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 우리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 역시 알 권리와 선택권의 보장이다.


아직까지는 참으로 열불나는 시절이다. 판사님도, 대통령도 소비자 편은 아니었다. 빅데이터 시대 한국 소비자들이 편안히 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소비자를 빼놓고 자기들끼리 달려가는 박근혜식 빅데이터가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빅데이터 시대, 중헌 것은 개인정보의 주체인 소비자의 권리 보장 아니겠는가.

이 글은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리포트]에 기고한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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