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괴담의 진실
전자레인지 괴담의 진실
전자레인지의 고향은 당연히 패스트푸드의 나라 미국이다. (…중략…) 미국에서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는 가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빈곤 때문이 아닐 터이다. 그들은 오히려 고소득층일 가능성이 크다. 지식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이 전자레인지 제작을 반대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훗날 미국의 과학자인 윌리엄 코프가 해준다.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면 우선 발암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각종 성분들이 비정상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죠. 또 여러 유용한 영양분들이 파괴되고 음식으로서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 병약한 체질로 변하게 되죠. 굳이 음식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기계를 부엌에 놓고 돌리는 건 재고해야 합니다. 새어나오는 전자파에 의해 인체 세포가 직접 손상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경종을 울리는 학자들은 그 밖에도 많다. 스위스의 한스 허텔 박사는 “전자레인지로 가열한 음식을 먹으면 혈액의 헤모글로빈이 감소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증가 한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전자레인지에 의해 인체 면역력이 약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중략…)
이유는 가열 방식을 알면 납득이 간다. 전자레인지는 열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일반 가열 방식과 전혀 다르다. 1초에 수십억 회 운동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전자파를 발생시킴으로써 음식의 구성분자들을 마구 뒤흔든다. 이때 순간적으로 열이 발생하고 온도가 빠르게 오르는 것이다. 음식이 만일 생명체라면 난데없이 몰매를 맞고 화병에 걸려 있는 꼴이라고 할까. 그런 것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자연의 섭리에 위배되는 행위다.
-한겨레21, 안병수,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화나게 한다’ 중에서
이런 글은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강화되어 인터넷을 떠다닌다.
- 뇌 기능을 파괴한다.
- 남성/여성 호르몬의 분비를 멈추게 한다.
- 미네랄, 비타민 등 영양소들이 변형되거나, 몸에 해로운 성분으로 변질된다.
- 암을 유발하는 괴물질을 만든다.
- 위암 또는 소장암을 유발시킨다.
- 혈액암 유발물질을 만든다.
-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집중력이 떨어지게 한다.
- 정서불안을 야기하고 지적 능력을 감퇴시킨다.
- 우리 몸은 전자레인지에 의해 생겨난 알 수 없는 부산물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 우리 몸이 분해할 수 없는 상태로 흡수된다.
- 전자레인지를 통과한 물은 화분의 식물을 열흘도 안 되어 죽게 만든다.
내가 식품 이야기도 아닌 전자레인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가장 전형적인 괴담의 패턴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바로 건강의 반대를 연상시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 전문가가 등장하지만, 그런 논문도 없고, 그냥 낯선 사람이지 진짜 전문가인 경우는 거의 없다.
단지 일반적인 가열 방식과는 낯선 가열 방식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온갖 거짓말을 뒤섞어 멀쩡한 전자레인지를 내다 버리게 선동한다. 사실 전자레인지 괴담에서 알아야 봐야 할 유일한 것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가열이 과연 자연에 없는 특이한 현상이고, 위험한 것인가’일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현란한 말장난일 뿐이다.
전자레인지의 장점
1. 안전한 파장인 마이크로파를 사용한다
음식을 뜨겁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열’을 가해줘야 한다. 우리가 열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전통적으로는 나무나 석탄을 이용했고 현대는 석유, 가스 전기를 사용한다. 우리가 전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부터였다. 그런데 전기가 발생하는 열기는 전통적인 연료를 연소시킬 때의 불과 전혀 달라 보인다. 특히 전자레인지가 그렇다.
전자레인지 역시 열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우리에게 낯선 ‘마이크로파’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마이크로파는 빛이 내는 파장 중에서 상당이 파장은 길고 진동수는 적은 편에 속한다. 그래도 진동수가 2.45기가헤르츠(㎓) 이니 초당 무려 24억 5천만 번이나 진동한다.
사람들은 이 숫자에 놀라겠지만, 가시광선은 이것의 10만 배, X선은 10억 배, 방사선은 1조 배 이상 많이 진동한다. 마이크로파는 자외선이나 가시광선 심지어 적외선보다 진동이 적은 안전한 파장인 것이다.
2. 기존의 가열 방식보다 식품 성분의 변화가 적다
가열은 분자 운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품온(material temperature)이 올라가는 만큼 분자 운동이 활발해지고 성분 변화가 심해진다. 원래 있었던 성분이 분해되거나 없었던 성분이 만들어진다. 이런 변화는 높은 온도의 열기에 직접 노출될수록 심하다.
식품안전을 말하는 사람들이 노상 고기를 굽기는 것보다 삶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고기를 구우면 표면 온도가 160도 이상 올라가고 이때 마이야르, 캐러멜 반응, 지방의 분해 등에 의해 노릇노릇한 색소 물질과 고소한 맛의 향기 물질들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벤조피렌이나 아크릴아마이드 같은 원하지 않는 위험한 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헤테로사이클아민(heterocyclic amines; HACs)은 조리온도가 높을수록, 조리시간이 길수록 여러 종류가 생기고 생성량도 많아진다. 따라서 돼지고기나 생선의 경우 불에 직접 굽는 조리법에 비해, 삶거나 찌거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조리하면 헤테로고리아민은 70~97%를 감소시킬 수 있다.
다진 쇠고기로 만든 패티를 굽기 전에 전자레인지로 미리 익힌 후 육즙을 버리고 조리하면 헤테로고리아민의 생성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른 육류와 생선도 마찬가지다. 물이 끓는 섭씨 100도 내외, 튀김은 180도 내외, 기름에 볶는 것은 200도 내외, 오븐에 굽는 것도 200도 이상, 숯불 온도는 270도 이상이다. 전자레인지는 보통 100도 이하이므로 당연히 유해한 물질의 생성이 적다.
3. 기존의 가열 방식에 비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다
결국 전자레인지가 기존의 가열방식에 비해 훨씬 적은 열과 에너지로 음식을 덥히고, 품온을 100도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므로 가장 영양 손실이나 유해한 성분의 생성이 적은 안전한 가열법인 것이다. ‘콜레스테롤을 더 많이 만든다’. ‘발암물질을 만든다.’ ‘전자레인지로 덥힌 물을 사용하면 식물이 죽는다’ 등은 검토의 가치조차 없는 유치한 주장이지만, 워낙 괴담이 심하여 사실로 믿는 이들도 있다. 물론 실험 결과 모두 거짓으로 판명이 난 것들이다.
전자레인지는 그릇이나 주변의 온도를 덥혀서 열을 전달하지 않고, 음식에 직접 열을 전달한다. 아무리 요리한다고 전자레인지 자체가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만큼 열 손실이 없는 친환경적인 조리기구라는 뜻이다. 예열도 필요 없고 단지 몇 십초의 작동만으로 음식이라 여러 가지 물품을 덥힐 수 있다. 더구나 조작이 무조건 타이머 방식이다. 부주의로 음식을 태우고 쫄일 염려도 없고, 화재의 염려도 전혀 없다.
건강의 측면이나 환경의 측면에서 전자레인지보다 안전한 열기구는 없는데, 이렇게 안전한 전자레인지마저 건강전도사는 낯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비과학을 과학으로 포장하고, 존재하지 않는 연구기관이나 연구결과를 창작하여 괴담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전자레인지의 문제는 안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 특성에 있다.
전자레인지의 단점
1. 안전성은 최고지만 최고의 요리 기구는 아니다
우리가 익숙한 요리는 겉면을 고온으로 가열하여 바삭하게 익고, 마일라드 반응에 의해 색은 황금색이 되면서 고소한 로스팅 향이 풍성하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속은 열이 별로 많이 전달되지 않아 단단해지도록 익지 않아 부드러운 상태의 것이다. 전자레인지는 2~3cm 안으로 침투하여 속부터 익히기 때문에 품온이 10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겉면의 바삭함이나 마일라드 반응에 의한 로스팅 향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속에서부터 익기 때문에 상태의 변화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그리고 속에서부터 증기가 발생하여 고압이 발생하여 터지는 수도 있다. 달걀을 전자레인지로 가열하면 내부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압력이 높아져서 폭발이 일어난다. 전기 전도성이 있는 알루미늄 호일이나 금속 성분이 포함된 그릇을 넣어도 문제가 된다.
2. 부분적으로 가열된다
전자레인지의 또 다른 단점은 부분별로 온도 편차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레인지는 제품의 모든 성분을 가열하는 것이 아니고 마이크로파와 공명하는 분자만 온도를 높이므로 이런 분자의 분포가 균일하지 못하면 온도도 편차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고체나 유동성이 없는 여러 식재료를 사용한 식품의 경우 이런 문제가 심각해진다. 전자레인지의 경우 흔히 수분만이 가열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방과 당분도 가열이 된다.
그래서 건포도가 박힌 머핀을 가열할 경우 머핀은 수분도 별로 없고 건포도에는 당분이 많아서 머핀은 아직 미지근한데 건포도는 혀를 델 정도로 뜨거워질 수 있다. 그리고 물은 잘 가열되지만, 얼음은 물 상태와는 전혀 다른 분자상태를 가지고 있어서 마이크로파에 의해 잘 가열되지 않는다.
3. 너무 빨리 가열된다
전자레인지는 마그네트론으로 발생시킨 엄청난 양의 마이크로파가 음식 내부에 직접 침투하여 가열되므로 가장 빨리 온도로 올릴 수 있다. 요리 시간의 단축을 단축해주는 것은 장점이지만 가끔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자레인지로 요리한 고구마는 단맛이 적어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너무 빨리 익혔기 때문이다.
고구마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당화 효소가 있는데 50도 전후에서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고구마의 전분을 달콤한 당으로 바꾸어준다. 온도가 낮으면 효소가 잘 활동하지 못하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효소가 변성되어 활동이 중지된다. 고구마를 맛있게 익히려면 50도 전후 온도를 얼마나 충분히 유지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4. 너무 만만하게 보고 쉽게 쓴다
어떤 사람도 불 위에 플라스틱 용기를 놓고 가열하지 않는다. 금방 타거나 변형되거나 유해한 물질이 나오는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레인지는 작동한다고 자체가 뜨거워지지도 않고 겉보기에 빨간 불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너무 함부로 쓴다.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은 고온에서 환경물질이 나오는 것들이다. 재질과 가열온도에 관계된 것이지 전자레인지로 가열한다고 나오지 않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편리하다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않고 마구 사용하면서 마치 그것이 전자레인지가 만들어낸 유해성 성분인 양 호도한다. 정말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불에 대한 두려움은 아주 오래된 것
지난 수천 년의 요리는 형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불을 이용한 로스팅이었다. 그런데 그 불의 형태는 많이 바뀌었고 불과 차츰 격리되고 있다. 바로 편의성과 안전 때문이다. 요리의 공간은 부엌이지만 한 번도 지금처럼 쾌적한 적이 없었다. 지나치게 더웠고, 환기를 위한 굴뚝 등에서 외풍이 스몄고, 무엇보다 타고 있는 나무나 연탄 등에서 유독한 발산물이 나와 공기는 항상 매캐하였다.
Copyright © 슬로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