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를 통해 본 우버의 미래

조회수 2016. 6. 21. 14: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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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입제: 화물연대를 통해 본 우버의 미래

슬로우뉴스는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공유경제, 자본의 진화인가 대안인가

1. 공유경제, 자본주의의 진화인가 새로운 대안인가
2. 에어비앤비와 불평등
3. → 디지털 지입제: 화물연대를 통해 본 우버의 미래

‘지입제’

지입제라는 용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등록됐다. 이 단어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화물연대를 떠올리면 된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A 씨는 트럭이나 택시 등 영업용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차량을 B라는 운송업체에 소유권을 위탁한다.


B라는 운송업체는 차량을 실제 구매하지 않았지만 소유하는 효과를 얻게 되고 운송업체로서 수익 행위를 할 수 있다. 


A 씨는 독립 운송업체를 설립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어서 좋고 B사는 차량 구매 비용을 아껴서 좋다.


그야말로 윈-윈이다. 이를 지입제라고 한다.

지입제, 유래와 장단점

지입제는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운송사업이 성장하면서 등장한 비합법적 시스템이다. 1960년대 이전 군소 차주들이 소자본으로 운송사업에 진출하려는 방편으로 고안된 것이 지입제다. 화물자동차로 예를 들면, 2004년 허가제로 전환되기 전까지 운송사업을 하려면 화물차량 최소보유 대수가 필요했다. 그 조건은 대략 20대 내외로 유지돼왔다(정승주 외, 2008).


면허 운전자와 화물차량 20대를 구비하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했다.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바로 지입제였다. 차와 면허를 가진 운전사로부터 소유권을 위탁받으면 소자본으로도 운송사업 창업이 가능해진다. 단순히 진입만 유리한 것이 아니다. 사업자 입장에선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일거에 덜 수 있다. 노무관리에서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4대 보험과 같은 추가적인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사업자 입장에선 하등 나쁠 게 없는 계약모델이다.




요컨대, 지입제는 운송업체가 차량을 단 한 대도 소유하지 않고도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도왔다. 차량 소유주는 소유권을 위탁하는 대신, 운송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두 주체 간의 윈윈 게임은 경제가 이상적인 상황일 때만 작동할 수 있다. 분명 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어디까지나 한정된 조건에서만 그랬다. 


단점도 분명했다. 일단 법적 근거가 모호해 지입 차주에 불리한 상황에 발생했을 때 정책적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운송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차량 소유주에게 불합리한 계약을 강제할 가능성도 높았다(정승주 외, 2008). 만약 불합리한 계약에 저항해 해지될 경우에도 구제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단점이 응축돼 폭발한 사건이 바로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이다.

우버, 지입제의 디지털 재현

우버는 비유하자면 지입제도의 디지털적 재현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택시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우버는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입제도를 닮아가고 있다. 우버도 한국의 운송사업체처럼 차량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운전자들이 자신들의 차량을 자발적으로 운행용으로 내놓고 영업을 한다.




우버는 운송 수요를 알고리즘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기사와 고객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조합을 찾는 과정을 우버의 알고리즘이 수행한다. 이 탁월한 알고리즘이 우버가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 기술적 모태다. 


또한, 수요에 따라 요금이 탄력적으로 변동되는 할증요금 알고리즘(surge pricing algorithm)은 노동의 위치별 공급을 통제하고 우버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버가 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기업가치를 불과 6~7년 만에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같은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우버는 그 속성상 지입제의 장점을 그대로 승계한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지입제처럼 골치 아픈 노무 관리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모바일 앱과 알고리즘만으로 택시 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를 타 운송 사업 시장에 응용하면 시장 범위도 확장할 수 있다.

닮은꼴, 화물연대 조합원과 우버 운전자

우버는 지입제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품어야 하는 숙명이다. 이를 위해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3년 5월은 건국 이래 최초로 국가 물류 체계가 올스톱한 사건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화물연대의 핵심 요구 사항 가운데 주목해야 할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지입제 폐지와 표준운임제, 노동자성 인정(노동기본권 보장) 등이다. 이 요구 사항은 우버의 현재 시스템이 지속한다면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될 이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부는 이미 우버 운전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출처: 2003년 5월 이후 화물연대의 요구는 변함없다. ‘표준운임제’, ‘운송료 인상’, ‘노동기본권 보장’. 사진은 2012년 6월 25일 총파업 개시의 일환으로 줄지어 선 조합원들의 화물차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기본적으로 지입제는 진입 문턱이 낮다. 일단 차량만 소유하고 있으면 화물운송이든 택시든 수익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권력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진입 문턱이 낮아 차주의 과잉 공급이 일상화된다. 자연스럽게 플랫폼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나타나게 된다. 어느 쪽에 물류 수요가 증가하는지 플랫폼이 데이터 분석으로 파악하게 되고 알고리즘은 자원의 배분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권력의 비대칭성으로 전환되는 기점이다.


화물연대 파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물차주의 과잉 공급과 경쟁으로 차주의 수익은 지속해서 하락했다. 운송료가 낮아져 생계유지가 어려워졌지만, 운송업체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하기도 어려웠다. 왜냐하면 (지입) 차주는 독립적인 개인사업자이지 노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섭할 수 없는 모호한 지위로 인해 차주는 끊임없이 한계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버 운전자는 노동자인가?

우버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화물연대와 유사한 현상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노동자성이다. 지난 2015년 캘리포니아 노동위원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 운전사로 일한 바바라 버윅을 우버의 피고용인으로 봐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5년 12월 워싱턴주 시애틀시 의회도 우버 운전자들에게 집단협상권(교섭권)을 부여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판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버 운전사가 노동자성을 요구하게 되는 이유는 지입제 시스템과 거의 흡사하다. 안정적인 사회보장이나 소득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올해 3월 우버의 피고용인으로 인정받은 샌디에이고의 패트릭 엘리 씨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샌디에이고 우버 운전사였던 엘리 씨는 주 60~7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주간 소득이 한때 1,10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우버 앱이 요청하는 탑승 요구를 일부 거부하자(우버는 탑승 요청의 90% 이상을 수용할 것을 권고했다) 같은 근무 시간 기준 소득이 500달러대로 떨어졌다. 우버 쪽에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출처: 엘리 씨의 우버 시스템(알고리즘)에 대한 저항과 거부는 ‘수입 급감’으로 이어졌다.

엘리 씨는 동료 운전사 30명과 공동으로 2016년 2월 3일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우버는 과거 교통 위반 전력을 이유로 엘리 씨의 서비스 행위를 중단시켰다. 소송은 공방 끝에 엘리 씨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패트릭 엘리 씨의 사례는 화물연대 지입제 차주가 겪었던 사례와 맥락적으로 닮아있다. 화물연대 차주들도 다단계 알선과 과잉 공급, 유가 인상 등으로 수익이 줄어들면서 운송업체에 파업이라는 수단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지입제 자체가 지닌 고용의 불안정성과 플랫폼 사업자(운송사업자)와의 비대칭적 관계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출처: 2015년 2월 미국 시카코 도로 위에서 우버X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Scott L, CC BY SA)

우버에서 공유경제라는 훈장을 떼어내라

우버는 지입제를 통해 인간 운전사를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차량의 직접 소유로 기계를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개발 및 구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더는 골치 아픈 우버 운전사의 노동자성 여부 따위와 다툴 필요가 없어진다. 지입제가 지닌 한계 그리고 제도적 갈등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현재 우버의 디지털 지입제는 어쩌면 대량의 자율주행차를 구매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비용 절감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엘리 씨와 같은 우버 운전자들은 디지털 착취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물론 자율주행차 기반으로 우버 비즈니스가 재편된다 하더라도 인간 운전사의 역할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일부 주에서는 자율주행차에 반드시 운전자가 탑승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인간 운전사의 공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우버 운전사는 높은 소득을 보장받지도 운전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 행위도 요구되지 않는다.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그저 차 안에 앉아서 승객에 시중을 드는 수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버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인간의 탑승마저 배제할 수 있도록 정치적 로비를 성공시키는 그림일 것이다. 그것이 투자자들이 바라는 우버의 미래 모습일지 모른다. 


우버는 승객과 차주를 매개하는 탁월하고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해내는 등 혁신을 이뤄냈다. 수요와 공급을 시장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매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증명해냈다. 그것이 차량 소비를 줄이고 협력적 소비를 북돋는 효과를 일부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버의 모습은 공유경제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엑스체인지(XChange)를 통해 수만 대의 리스 차량을 공급하는 모습에서 과잉생산을 줄여 자원을 절약하는 등의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중세적 시스템을 동원해 근대적 지입제를 현대적 알고리즘으로 재현한 복합적 초자본인 우버. 이제 우버에서 공유경제라는 ‘선한’ 훈장을 회수할 때가 됐다.

참고 문헌

정승주·이태형·권혁구·임동민·허진수. (2008). 화물운송산업 지입제도 개선방안 연구. 한국교통연구원.

Rosenblat, A., & Stark, L. (2015). Uber’s Drivers: Information Asymmetries and Control in Dynamic Work. Available at SSRN 268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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