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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왜 다리가 없을까?

조회수 2017. 5. 28. 1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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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출처: <sciencemag.org>
뭘보냐. 물려볼래?

뱀은 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육상 척추 동물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다리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약 1억 5천만년 전 뱀의 조상에게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비단뱀과 보아뱀은 몸 속에 작은 다리뼈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출처: <phenomena.nationalgeographic>
뱀 조상의 뼈
출처: < guam.net/pub/sshs>
남아있는 작은 다리 뼈
다리 발달 조절하는 유전자

뱀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다리가 없고 몸을 구불구불거리며 움직입니다. 과학자들은 1999년 처음으로 그 이유를 밝힐 단서를 찾았습니다. 플로리다 대학의 생물학자 마틴 콘(Martin Cohn)은 뱀의 배아에 주목했는데요. 몇몇 유전자의 발현 패턴이 다른 파충류와는 달랐습니다. 성장 인자를 처리하면 뱀 배아에게서 다리를 자라게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유전자를 더 깊이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이어서 그 이상의 진척은 없었습니다. 

출처: <geneticdisorders>

4년 뒤 또 다른 힌트가 등장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발달생물학 교수 제임스 헨켄(James Hanken)과 동료 연구자들은 마틴 콘이 발견한 유전자들 중 하나가 도마뱀의 다리 길이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유전자를 유명 게임 캐릭터 이름을 따 ‘소닉 헤지호그’로 이름 붙였습니다. 그들은 이 ‘소닉’ 유전자를 연구하면 뱀의 다리가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전자의 스위치, 인핸서

비단뱀은 태어나기 전 배아 발달 과정 중에 다리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리는 완전한 다리가 되진 않고 끝내 완성되지도 못합니다. 마틴 콘 박사는 이 비단뱀의 다리 형성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다행히 1999년과 다르게 2016년 현재 생명공학 기술이 상당 부분 진보했습니다. 발생 과정에서도 유전자를 관찰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유전자에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를 ‘인핸서(enhancer)’ 라고 부릅니다.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마틴 콘과 대학원생 프란시스카 릴(Francisca Leal)은 다리의 발달을 제어하는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의 인핸서 부위에서 세 군데의 DNA 손상을 찾아냈습니다.  

출처: <igtrcn.org/finding-enhancers-in-mosquitoes-and-beyond>
인핸서의 작용

인핸서에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이 붙게 됩니다. 그런데 뱀의 경우처럼 인핸서가 부분적으로 손상된 DNA에는 이 단백질이 붙기 힘듭니다.


결과적으로 이 유전자는 한시적으로 배아 상태에서만 잠깐 발현하고 맙니다. 다리 뼈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다른 뱀들은 이 인핸서 부분이 더 많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유전자는 처음부터 스위치가 켜지지도 않습니다. 마틴 콘의 의 이 연구 결과는 올해 10월 <Current biology>에 게재되었습니다. 

마틴 콘 박사만 뱀이 다리가 사라진 이유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닙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국립 연구소 유전학자 악셀 비젤(Axel Visel) 또한 보아뱀과 비단뱀에서 다리가 없어지게 만드는 유전자를 추적했죠. 보아뱀과 비단뱀은 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반면, 독사와 코브라와 같은 뱀들은 다리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지도록 진화했습니다.  

악셀은 다리의 흔적이 있는 뱀과 완전히 사라진 뱀들간의 유전체를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다리가 완전히 사라진 뱀들의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 인핸서 부위에 더 많은 DNA 결손과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핸서를 바꾸면 유전자를 켜고 끌 수 있다

악셀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쥐를 이용해서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의 인핸서 부위 돌연변이가 정말로 다리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CRISPR-Cas9 유전자 편집 도구를 이용해 설치류 쥐의 인핸서 부분을 뱀의 인핸서 부분으로 바꿨습니다. 물고기나 사람의 인핸서와도 교체해 봤습니다.  

출처: <cell.com>

물고기나 사람처럼 아예 다른 종의 인핸서 부분을 사용해도 쥐의 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뱀의 인핸서 부분으로 교체하자 쥐의 다리는 조그만 혹으로 변했습니다. 위 사진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뱀의 인핸서에서 삭제된 DNA를 다시 넣어서 수정한 뒤 쥐에게 넣어 주자 다리가 정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2016년 10월 <Cell>에 게재되었습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뱀이 다리를 포기하고 구불구불한 형태로 진화한 게 단순히 이 인핸서의 변화만으로 모두 설명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뱀이 다리를 잃어버리는 진화 과정 중에 이번 돌연변이가 첫 번째 단계가 아닐지도 모르죠. 다른 유전자가 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헨켄 박사는 분명히 이 유전자의 변화가 뱀이 다리를 잃어버리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다시 다리를 갖게 할 수도?

지금까지 다리를 가진 뱀 화석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가 그 논쟁을 끝내는 데에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고생물학자들은 다리가 있는 뱀들 가운데서 다리가 없는 모든 뱀의 조상이 출현했다고 가정하고 계통수를 그려 왔습니다. 즉, 뱀의 다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단 한 번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리가 사라지는 게 이렇게 간단한 변화로 초래될 수 있는 거라면 다리가 다시 생기는 진화도 그렇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Richardson은 “멸종한 뱀들 중에 다리가 있는 몇몇 화석들은 다리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합니다. 수백년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은 퇴화해서 사라진 어떤 기관이 다시 진화적으로 생겨날 수는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헨켄이 보여준 이번 연구에 따르면 그것이 발생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방증합니다. 

그런데 도마뱀은?
출처: <Wikipedia>
살려줘

참고로 '도마뱀은 다리가 있는 거 아닌가?' 궁금해 하실 분들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마뱀은 뱀이 아닙니다. 뱀과 도마뱀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 친척입니다. 뱀은 약 1억 5천만년 전에 이미 도마뱀처럼 생긴 공통 조상에서 진화해 나와 독립적인 진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뱀에게서 다리가 생긴다고 해도 도마뱀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이 침팬지와 분리되어 나온 지는 700만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참고하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분류학적으로 도마뱀과 뱀 모두 뱀목(有鱗目, Squamata)에 속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뱀’들은 모두 뱀아목(Serpentes)에 속합니다 일반적으로 뱀은 다리가 없습니다. 눈꺼풀 대신 얇은 막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마뱀과 구분됩니다. 또 뱀은 대부분 귀가 퇴화했지만 도마뱀은 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1억년 넘게 진화해 왔기 때문에 다리가 퇴화해 버린 도마뱀도 있습니다. 따라서 분류학자들은 도마뱀과 뱀을 외형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유전학적인 방법이나 해부학적인 구조의 차이로 분류합니다.


출처: <ecolinc.vic.edu.au>
다리 없는 도마뱀

참고로 delma impar 라고 불리는 다리 없는 도마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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